목련과 팬티
딱 한 번 시를 써 본 적이 있다. 4학년 국어 시간에. '고추는 요술쟁이. 여름엔 초록, 가을엔 빨강.'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것 같다. 가끔 서점에서 유명 시집을 몇 장 넘겨 보다가는 이내 내려놓았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아무리 읽어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 같은 짧은 글이 긴 소설보다는 좀 시피 보이기도 했다. 작년 이맘때쯤 어디서 그랬는지 가물한데 글을 잘 쓰려면 시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이 속에 박혔지만 얼른 시가 읽어지지 않았다. 좀체 깊은 생각은 하기 싫게 뇌가 게으르기도 하지만 진한 것, 진실에 가까운 걸 마주하는 게 반갑지 않다. 왠지 시는 그런 것일 것 같기도 했다. 손도 발도 작은 여자가 시 얘기를 꺼냈다. 이 여자를 매주 볼 수 있다는 즐거움과 시는 읽기도 배우기도 싫지만 글은 나아지고 싶은 욕심이 시 수업 자리에 가 앉아 있게 했다. 시인 선생님은 직유를 많이 연습하라고 했다. ~처럼, ~같이. 나는 열심히 보았다. 이것저것 이 사람 저 사람 풀 꽃나무 자동차 전화기 컴퓨터 밥그릇 냉장고 식탁 책 의자 운동장 등등. 무엇을 보아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은 그냥 사람이고 풀은 풀이고 꽃은 꽃이고 그릇은 그릇이었다.
열심히 보아도 모든 게 무심하던 목요일, 사무실 밖 목련 나무에 맺힌 꽃봉오리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어제는 없었던 것 같은데 밤새 누가 붙여놓은 것은 아닌지. 봉오리는 가지 끝나마다 빠짐없이 솟아있었는데 수가 상당했다. 봄의 어느 날 갑자기 펴 있는 목련을 무심히 지나간 적만 있지 꽃봉오리를 대면한 적은 없다. 푸른 잎 하나 없이 메마른 나무에 지독하게 하얀, 커다란 꽃송이가 매달려 있는 게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꽃봉오리는 꽃과 달랐다. 앙다문 조신한 입술 같기도, 촛대 위에서 꼿꼿이 불타는 불 같기도 했다. 조물주를 갈망하는 듯한 몸짓으로 하나 같이 하늘을 우러르는 모양이 장엄하고 진지해 보였다.
금요일 출근하자마자 창문을 활짝 열고 목련부터 찾았다. 꽃봉오리는 어제보다 통통해졌다. 임박, 이라는 단어가 스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극지. 진행이 너무 빠른 것 같다. 꽃봉오리에게 가 '천천히, 천천히'라고 말하고 싶다. 어제의 장엄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돌아가 달라고. 이런 내 맘을 알턱이 없는 꽃봉오리는 종일 몸을 부풀렸다. 주말을 끝내고 월요일에 목련에게 가니 봉오리가 터졌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조신한 입술 같던, 촛대의 작고 단단한 불 같던 모습은 다 사라졌다. 작은 몸체에 어떻게 저런 큰 꽃잎을 가지고 있었는지 놀라웠다. 기품 있이 깊은 흰색 목련이다. 이렇게만 봄 내내 있어준다면 이 꽃을 사랑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누가 저를 힘들게 하였다고 이리 빨리 지쳐버렸을까. 이래서 기대하는 걸 참고, 되도록 정 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지. 꽃잎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나무 아래 흙바닥 사방에 하얀 꽃잎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기품 있던 하양은 온데간데없이 입다 벗은 팬티처럼 널브러져 있는 게 참 꼬질하다. 빨지 않은 팬티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추접한 것에게 정을 주어야 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