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벽에 들킨 것

기도와 손수건

by 황옹졸

이들이 방탈출 카페에 가자고 소원을 해도 한 번 들어주지 않았다. 탈출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엄청난 공포가 엄습한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이기에 탈출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나올 방법이 어렵지 않고 못 견디어 악을 지르면 직원이 와서 꺼내 줄 테지만 그래도 싫다. 겁내는 꼴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


사는 일은 아주 어려운 미로 찾기보다 더 꼬여 있고 벽에 부딪힐 때마다 울부짖어도 꺼내 줄 직원 같은 것도 없다. 다시 더듬더듬 길을 찾아 나서며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뾰족한 수가 없어 다시 주저앉아 다리 사이로 고개를 처박는다. 이 일을 수없이 반복해 온 다리에 힘이 빠져 일어설 수 없고 퉁퉁 부은 눈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떠오른다. 이건 저 먼 하늘에서 루돌프 타고 내려오는 산타할아버지를 보는 설렘이나 기대가 아니라 40년이나 몸에 붙어 있는 손발의 기능을 오늘에야 알게 된 것 같은 충격 같은 거다. 얕은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 발가락이 땅에 스쳐 살며시 발바닥을 땅에 조심스레 딛었을 때 그 민망함과 안도감. 이런 멍청한 사람.


다시 새벽에 일어 난다. 글 쓰는 일도 공부하는 것도 살림을 꾸려야 하는 주부의 책무도 모두 미루고 열 시면 잠자리에 든다. 이 모든 것보다 창조주 앞에 나가 어려워 죽겠다고 능력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많은 일을 벌였는데 수습을 못하겠다고 도와 달라는 부탁으로 시작했다, 생떼로 끝나는 기도를 하러 가는 일이 중요하다. 교회 2층 202호 예배실은 천장이 낮고 서향이라 늘 어둡고 차분하다. 나보다 일찍 나온 사람들이 앉아 있다. 이들은 앞은 없고 뒷모습만 가졌는데 모양과 표정이 거의 같다. 웃는 모양을 한 뒤는 없고 하나같이 뒤통수가 푹 꺼지고 어깨가 축 처졌다.


중간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간이 되자 목사님이 앞에 섰다. 새벽에 유일하게 앞을 보여 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도 빗어 넘긴 머리카락이 매끈하고 각 잡힌 양복엔 보푸라기 하나가 없다. 부드럽게 찬송을 시작하는 그의 얼굴 깊숙이 고단이 스쳤다. 짧은 말씀이 끝나자 누군가 일어나 모든 불을 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나 홀로 있는 듯하다. 무어라 말을 내놓기도 전에 눈물과 콧물이 앞다투어 쏟아진다. 미간이 아리도록 참아 보았으나 막을 수 없었다. 흐느끼는 걸 들키지 않으려 할수록 콧물이 많이 나왔다. 한 번 코물을 빨아 들이 때마다 8년 된 우리집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났다. 휴지를 가지러 일어나려는 순간 누군가 옆으로 와 내 손을 잡는다. 아주 얇게 밀어 야들야들하고 뜨겁디 뜨거운 수제비 반죽이 혀에 닿는 것 같은 뜨겁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그러고는 손수건을 내 손에 쥐어 주고 정확히 양손으로 내 양 팔뚝을 두 번 주무르고 등을 세 번 쓰다듬고 자리를 떠났다.


들켜버렸다. 겁 많은 초라한 인생과 내 두꺼운 팔뚝 사이즈, 그리고 이른 새벽엔 브레이저를 하지 않는 나의 내밀한 취향까지. 앞으론 울지를 말든지 안을 잘 챙겨 입든지 해야 할 것 같다.


쥐어준 손수건에 도저히 나의 눈물과 콧물을 묻힐 수 없어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곧장 화장실로 손티슈 한 장을 꺼내 코를 요란하게 풀었다. 여섯 시가 조금 넘었는데 밖이 환했다. 여름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새벽 해 아래에서 손수건을 꺼내 보았다. 네 변이 10cm쯤 되는 정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개어져 있다. 면 안에는 근심 걱정 없어 보이는 아기자기한 작은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단정하고 예쁜 손수건을 챙겨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눈물콧물 쏟을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이 손수건은 무슨 용도로 가지고 다니는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