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고마웠어
식장에 들어가니 신부와 그의 아버지가 입장하고 있었다. 여유 있고 자연스럽게 하객에게 눈인사를 한다. 행진 연습을 많이 했나 보다. 남편과 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식을 편히 볼 넉넉한 공간을 찾았다. 들어오는 문 근처는 사람이 바글바글 하더니 앞은 빈 의자가 여러 개 있다.
"헤이, 황."
뒤에서 어깨를 툭 치길래 고개를 돌렸다. 현수다. 나는 무척 반가워 신부가 지은 미소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내밀지도 않는 손을 먼저 가져와 맞잡았다. 길고 마른 몸, 가지런하지 못한 치아, 살짝만 웃어도 귀여운 반달이 되는 장난기 많은 눈과 턱 밑 점까지. 군데군데 흰 머리카락이 보이고 귀 아래 점이 좀 커진 것도 같지만 스무 살 적과 다르지 않고 여전하다. 현수와 닮은 여자가 내게 소리 없는 웃음 건넨다. 아, 현수 짝꿍. 나는 잡은 손을 황급히 놓고 고개를 푹 숙여 인사했다. 부부는 닮는다고는 하지만 이 경우는 거의 쌍둥이가 아닌가. 하도 신기해 한참 둘을 번갈아 보았다. 두 사람 표정에 어두운 구석은 없는 것으로 보아 그럭저럭 큰 마음고생 없이 사는 것 같아 괜한 안심이 들었다.
나와 남편과 현수는 대학교 동기이다. 남편과 현수는 대학원도 같이 다녔다. 그렇다고 둘이 매우 가깝지는 않다. 오늘 신부의 아빠도 그 대학원 출신이다. 나는 대학 때 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고 현수는 가까운 도시에서 통학을 했는데 경운기처럼 덜덜 거리는 봉고를 타고 다녔다. 양계장 집 아들이라 정기적으로 봉고에 계란을 몇 판 싣고 와 자취하는 친구들 문 앞에 두고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다. 고맙다느니, 잘 먹었다느니 말이라도 할라치면 이내 말머리를 돌려버려 계란 먹은 인사를 한 번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우린 밴드부 동아리였는데 나의 형편없는 건반 실력을 드럼 주자인 이 아이가 많이 숨겨주었다. 실력도 뛰어나고 박자 감각이 기가 막힌 드러머였다. 잘한다고 치켜세우기라도 하면 뒷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 어디론가 가 버렸다. 우린 속을 나눈 적은 없지만 친했다. 아프고 구질구질한 것은 말로 나누지 않아도 뿜는 눈빛으로 대충 짐작했다. 실없는 농담으로 채워진 이야기만 했고 가끔 아주 까끔 뼈 있는 대화를 했던 것도 같다. 대학 때 좋아했던 남자가 현수 절친이었다. 학교 내 공개 커플은 헤어지고 나면 여러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그 기억은 상당히 오래가는 것 같다. 누군가를 떠올리면 그 사람이랑 사귀었던 사람이 먼저 생각나니 말이다. 나는 이런 폐해를 일찍이 알았고 아무도 모르게 사귀었다. 현수만 알았다. 첫사랑을 마친 후유증은 대단하여 나는 자취방에서 나오질 못했다. 달걀을 놓고 가는 현수가 한 마디 했다. "그 얍쌉이 새끼 뭐가 좋다고. 넌 참 눈도 낮다. 나와 봐라, 머슴아가 천지다 천지." 현수는 눈이 높았다. 그의 모든 연애 역사를 알지 못하지만 두 번 본 적 있다. 한 번은 정말 인형처럼 작고 귀여운 여자였고 다음번엔 미스코리아처럼 쭉쭉빵빵에 얼굴까지 미인이었다.
"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신부 입장만 보고 연회장으로 갔다. 나는 나의 남편의 뒤를 따르고 현수와 그의 아내는 서로 손을 잡고 걸었다. 음식들이 결혼이라도 하는 것인지 단장을 심하게 하였다. 동공이 확장되고 군침이 팍 솟아 침샘의 위치를 정확이 알았다. 저 만치서 배 나온 중년 남자가 "어이 송, 이리 오소."라고 하며 주위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크게 치며 손을 높이 든다. 남편도 팔을 크게 흔들며 그쪽으로 빠르게 걷는다. 나도 따라서 빨리 걸었다. 다 같이 앉을자리가 마땅치 않아 남편은 친구들과 재밌게 먹으라고 두고 나는 현수네 부부와 따로 앉았다.
현수 와이프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일어났다.
"야, 니 남편은 니가 오는지 마는지 신경도 안 쓰고 막 간다. 마누라보다 친구가 좋은가 보네. 우리 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눈 좀 높이라니까는."
"야, 너 잡혀 사냐? 냅 둬. 내 신랑 귀엽기만 하고만. 그런데 너도 눈이 예전 같지 않다. 지금이 제일 안 예쁜 것 같은데."
현수가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