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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AYED

지연되면 늦는 거지 뭐..

by 따청

회사 워크숍(이라고 쓰고 업무라고 읽는다)으로 얼마 전 제주도를 다녀왔다. 1박 2일 동안 힘차게 먹고 제주를 떠나는 날, 동행했던 사람들이 다들 예상했었던 것처럼 비행기는 연착이 되었다.


메이저 항공사인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이제 같은 회사라고 해야 하나..)는 연착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LCC들은 종종 연착이 된다. 사유야 뭐 오는 비행기가 늦게 도착해서라고 하지만 알력 다툼에 밀리는 것이 아닐까? 그래 봤자 자회사인데 좀 적당히들 하지..


뭐 하여튼 제주에서 창원까지 걸어올 수도 없고, 수영을 해서 올 수도 없고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은 태풍 영향이 있어서 야구 경기도 취소되고, 많은 비행기가 요 며칠 취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불가항력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어떤 상황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어쩐지 이러한 상황에 쓰기에는 뉘앙스가 조금은 어색하다.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해도 해도 안 되는 그런 상황들. 보통 시간이 부족하거나, 나의 역량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회사에서 지금 딱 1년 정도 되었는데 나름 엄청 바쁘게 지냈다. 성격상 일이야 '뭐 하면 되는 것'이라는 마인드이기 때문에 야근을 하든, 주말에 나오든 어쨌든 일은 쳐내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뭔가 자꾸 업무에 펑크가 난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가? 9 to 6의 업무 시간에 온전히 일에 집중하는가? 자신 있게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제법 열심히는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최근 그 '열심히'라는데 방점을 찍고 있는 마인드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성과가 나고, 돈을 벌어와야 하는 회사라는 조직에서 열심히 하면 뭐하나. 결과가 잘 나와야지. 그 좋아 보이는 단어인 '열심히'는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조직 내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가?

씻고 벗고 5명이 상근으로 일하는 회사에서 무슨 우열을 가리겠냐만, 나름 어느 정도의 성과는 내고 있는 것 같은데.. 예전에 썼던 글에서 내가 바쁜 이유에 대한 고찰을 했었던 적이 있다. 나의 업무역량이 부족하거나, 역량으로 쳐낼 수 없을 만큼 일이 많거나. 솔직히 일이 많다. 업무의 중량을 따지지 않고 개수만 따지면 한 명이 다섯 개의 단위사업을 쳐내야 하는데.. 로드가 걸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번아웃이라는 것이 온 것일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와 해당 업무에 대한 결과가 주위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 같고, 대표님의 기대와 믿음이 조금씩은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내 업무의 펑크로 인해서 회사에 해를 끼치는 것이 극도로 싫고, 나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있는 회사 동료들에게 실망을 주는 것도 너무너무 싫다.


그런데 징징거릴 수가 없다. 상급자가 나보다 일이 더 많고 더 열심히 하시니까 징징거릴 수가 없다. 상급자가 더 많고, 더 중요한 일을 하고, 더 열심히 하는 것이 당연한 건가..? 하여튼..


부제목에 '지연되면 늦는 거지 뭐..'라고 적었다. 비행기야 불가항력이고 천재지변이 대부분이니 당당하게 delayed라고 적을 수 있겠지만 일은 지연될 수도 없고, 늦어서도 안된다. 발주처와 우리 회사의 계약(약속)이고 법적으로 따지면 지연에 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어쨌든 시간에는 맞추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발주처에도 신경을 쓴다. 그렇게 시간에 맞추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 작성하는 결과물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 눈으로 보인다. 게다가 요즘 업무에 펑크가 자꾸 나다 보니 조금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만 둘 용기도 없고, 지금 회사가 나는 너무 좋고, 일 따위에 지는 나약한 새끼가 되기도 싫어서 '아 씨바 좆까소'하고 퍼져 있지는 못하겠다.


모르겠고, 지금보다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 나 새끼 존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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