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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효진 Nov 22. 2020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내가 어린이였을 때 겪은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3학년 때였나 4학년 때였나, 당시 나는 집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평소라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겠지만, 그날따라 아빠가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아빠 차를 타고 편하게 집에 갈 수 있다니! 나는 수업을 마친 후 친한 친구와 조금 떠들다가 "우리 아빠가 곧 데리러 올 거니까 너는 먼저 집으로 가, 내일 봐!"라고 씩씩하게 인사를 건넨 후 친구를 떠나보냈다. 아빠를 만나기로 한 문구점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빠 차와 비슷한 차는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딘가에 전화조차 할 수 없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공교롭게도 버스를 탈 수 있을 정도의 차비가... 없었다. 공중전화로 전화를 한 통 걸 수 있을 정도의 동전만이 남아있었다. '어떡하지...' 고민스러웠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빌릴 정도로 활달한 어린이가 아니었던 나는, 집까지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버스로 매일 다니는 길이니까 어떻게든 집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터널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걷고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버스로는 1시간이면 집에 도착했는데, 어린이 걸음으로는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이었다. 주머니에 있던 동전으로는 피아노 학원에 전화를 걸어 선생님께 오늘은 학원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 소심하고, 성실한 어린이였다.


몇십 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 일을 떠올리면 발바닥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뜨거웠던 기분과, 그 와중에도 피아노 학원을 빼먹었다는 죄책감과, 깜빡 낮잠을 자느라 제시간에 오지 않은 아빠에 대한 서운함과, 어떻게든 길을 찾아 집에 도착했다는 약간의 뿌듯함 같은 것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물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엄마가 속상한 마음에 아빠에게 '당신은 어떻게 애하고 약속을 해놓고 낮잠을 자느라 까먹을 수가 있어?'라고 화를 냈던 것도.


어린이 시절을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이런 기억들이 좋았던 기억보다 더욱 크게 남아있다. 고민스럽고, 힘들고, 속상하고, 무서웠던 기억들이. 어린이였던 나는 <토끼와 거북이> 연극에서 귀여운 토끼 역을 맡고 싶었지만 가오리 역을 맡게 돼서 서운했고, 친한 친구와 싸워서 다른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속상했으며, 친구와 함께 신나게 우리 집에 뛰어들어갔다가 부모님이 누군가로부터 빚 독촉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되어 친구에게 짐짓 아무 일도 아닌 척하느라,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느라 힘들었다. 좋았던 기억도 많은데 어째서 이런 것들이 더 먼저 떠오르는 걸까? 아마 내 마음을 크고 작게 건드린 아픈 일들을 통해 내가 나임을 자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때의 나는 내가 친구들보다 진지하고 똑똑하고 심각하고...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정신 연령'이 높다고 생각했다. (정말이다. 일곱 살 때 유치원 마당에 있는 놀이기구에 앉아 나에게 장난을 걸어오는 친구들을 조금 귀찮아하며 '얘네는 언제까지 이럴 거지? 정말 애기같다'라고 혼자 생각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린이였던 나는 어른인 내가 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그때의 나로 완전한 개인이었다. 나와 우리 집에 대해, 엄마 아빠에 대해, 친구들에 대해, 사회와 세상에 대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고민하고 깨닫는 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어른인 나는 종종 어린이가 그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는다. 어떨 때는 어린이를 무작정 귀여워하고 싶고, 어떨 때는 '그건 그러면 안 되지' 하고 그 앞에서 어른인 척을 하고 싶어 진다. 때로는 친구들과 정신없이 뛰어노는 어린이를 보며 '좋을 때지, 어린이들이 뭘 알겠어.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재미있게 노는 거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잖아'라고 어른인 나의 신세를 무심코 자조했다가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내가 어린이를 전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덜컥 겁을 먹는다. 겁을 먹으면 어린이를 한 명의 다른 인간으로 존중하게 되는 게 아니라 어린이가 보이지 않는 척하게 된다. 그건 어린이를 나와 전혀 다른 존재로 대하는 태도, 그러니까 어린이를 소통 불가능한 외계인으로 보는 태도에 가까울 것이다.


김소영 선생님(작가님이라고 불러야겠지만 왠지 나도 김소영 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다)이 쓰신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린이도 고유한 세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당연하지만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까먹게 되는 사실에 관한 책이다. 김소영 선생님은 어린이의 눈높이로 시선을 이동하지 않는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이미 몇십 년을 살아온 어른이 어린이와 같은 시야로 세상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몇십 년 동안 살아가며 그만의 고유함을 쌓아온 김소영이라는 한 어른이자 인간으로서 그들의 세계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아무리 테이블 아래로 기어들다시피 해서 눈높이를 낮추어도 어린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볼 수는 없다.(200p)" 김소영 선생님이 본 어린이들은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하고, 각자 다른 이유로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기도 하고, 각자 다른 삶의 무게를 지고 있다. 우리는 김소영 선생님의 렌즈를 통해 어린이의 세계와 다시 만난다.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 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어린이의 것이다. 남과 다른 점뿐 아니라 남과 비슷한 점도, 심지어 남과 똑같은 점도 어린이 고유의 것이다. 개성을 '고유성'으로 바꾸어 생각하면서 나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어린이라는 세계>, 91p)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계획이다. 이 결심을 곱씹다 보면 종종, 김소영 선생님처럼 어린이들과 계속 가까이서 만나지도 않고 아이도 없는(없을) 내가 어린이라는 세계를 영영 모르게 될까 봐 무서워진다. 어린이와 자꾸 만나고 부딪혀야 그들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될 것 같아서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어린이와 늘 가까이서 지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상이야말로 너무나 게으르고 편협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반대로, 어린이와 늘 함께 있거나 아이를 낳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린이에 관해 잘 알 수 있을까? 누구나 고유한 어린이였던 시절을 지났지만 그렇다고 누구든 어린이를 어른과 같은 고유한 사람으로 바라보지는 못하는 것처럼, 어린이라는 세계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식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린이와 부딪힐 일이 거의 없다는 말도 틀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백번씩 나를 스쳐가듯이, 어린이들도 언제나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내가 너무 겁을 먹거나 그들을 소홀히 여겼기 때문에 보지 못했을 뿐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고백하자면 나는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오는 새벽에 우롱차를 한 주전자 끓여놓고 홀짝홀짝 마시며 이 책을 다 읽었다. 몇 번 울기도 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마음이 벅차올라서 글을 바로 쓰려다가 '새벽에 감상에 젖은 채로 쓰는 글은 왠지 꼴불견이 될 수도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며 겨우 참았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쓴다. 새벽에 쓰려던 글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조금 멋쩍은 기분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너무 좋은 것에 대해서라면 약간 민망하더라도 길게 말하고 싶어 지니까.



p.s. 이 책에서는 에리히 캐스트너의 <에밀과 탐정들>이 한번 언급된다. <에밀과 탐정들>은 어린이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이야기다. 김소영 선생님이 좋아하고 자람이가 궁금해했던 <에밀과 탐정들>을 나도 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서 굳이 여기 써둔다.


p.s. 내가 좋아하는 책을 한 권 더 소개하고 싶다. 미라 로베의 <사과나무 위의 할머니>다. 당시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는 우리 할머니가 딱히 멋지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책 속의 할머니처럼 쿨하고 멋진 할머니를 갖고 싶었다. 사과나무 위에서 뿅 나타나 자동차를 거칠게 몰기도 하고, 말에게 각설탕을 주는 그런 할머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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