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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효진 Mar 30. 2022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를 읽고

게일 콜드웰과 캐럴라인 냅의 우정을 다룬 에세이 <먼길로 돌아갈까?>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자, 읽을 때마다 어쩐지 눈물이 나는 부분이 있다. 자신의 글에 대한 캐럴라인의 평가가 궁금했던 게일은 캐럴라인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둘은 글에 관한 기나긴 대화를 나눈다. 대화 끝에 게일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어떻게 하지.” 캐럴라인은 걱정스럽게 묻는다. “왜 그래?” 그리고 이어지는 게일의 말. “나는 자기가 필요해.”

게일 콜드웰과 캐럴라인 냅에 나와 친구를 겹쳐보았다는 말을 하기가 좀 민망하긴 하지만, 나는 그랬다. 내 글을 어떻게 읽었는지 묻고 싶은 사람. 좋은 글이었다고 말하면 안심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나 책을 역시 좋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사람. 멋진 것들의 멋진 부분에 대해 끝없이 함께 떠들 수 있는 사람. 그러다 눈시울을 붉히는 표정을 들켜도 민망하지 않은 사람. 내게 필요한 그런 사람이 바로 [시스터후드]를 같이 만드는 윤이나 작가인 것이다.

윤이나 작가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한 사람을 완전히 뒤바꾸는 이야기를, 어둡던 세상의 어느 한 부분에 핀 조명을 내리켜는 이야기를, 우리를 웃고 울게 하는 이야기를. 이야기를 사랑한다는 건 결국 이야기가 비추는 세상과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작가로서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말은 무엇이 좋은 세상인지 고민하고, 그런 세상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윤이나 작가의 신간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에 대한 소개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이야기를, 인간을,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쓴 책이다. 수년간 온갖 이야기를 보고 듣고 읽고 쓰면서도 그 안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매번 새롭게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쓴 책이다. 윤이나 작가의 글 속에서 나는 이미 다 아는 줄 알았던 영화와 드라마와 사람들의 생신한 아름다움을 본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움에는 면역이 되지 않으므로 어김없이 감탄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 아마 윤이나 작가는 예상했겠지만,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는 구절은 여기.


“<올리브 키터리지>와 같은 소설을 읽고, 또 이런 드라마를 볼 때 나는 계속 살고 싶다고 느낀다. 세상이 아무리 나빠진다고 해도 거기서 좋은 것을 기필코 발견하고 싶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을, 빛이 모든 그림자와 만날 때 생겨나는 무늬를, 알아서 좋고 몰라서 새로운 음식의 맛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웃고 우는 얼굴, 우리가 이 세상을 보게 하는 렌즈로서의 좋은 이야기, 그 모든 것들을 계속해서 느끼고 보고 경험하고 싶다.” (235-236p)


+ 그리고 또 하나, ‘우리에게는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라는 제목이 붙은 <위 아 레이디 파트>에 관한 마지막 글. 당연하다. 무려 [시스터후드]와 나의 본명이 등장하는 파트이며, 윤이나 작가가 이 책을 나에게 선물하며 이런 메시지를 첫 장에 남겼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을 황효진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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