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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Aug 02. 2016

느끼는 삶, '다시, 책은 도끼다'

'다시, 책은 도끼다'(2016)를 읽고



박웅현씨의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었다. 2009년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로 유명해진 광고인 박웅현씨의  신간이다. 몇 년 전까지 저자에 대해 유명한 카피라이터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가 쓴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를 읽고 그가 보통 광고인 또는 홍보 전문가와는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최근 '책은 도끼다' 2탄 격인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었다.  


15초, 30초의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자극적이고, 인상적인 이미지를 남겨야 하는 광고 기획자에게 인문학은 조금 어색한 조합이다. 사실 광고와 인문학, 마케팅과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쉽게 어우러져 쓰이게 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문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역설적이게도 트렌드를 반영하는 의미로 쓰이는 최근의 상황에서는 새로움을 넘어 왠지 식상함까지 들 정도가 되었다.


왜 인문학일까. 마케팅에 까지 인문학이라는 외피와 포장이 씌어지는 시대에 진짜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과거 교양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문상식이 인문학이라 여겨지는 요즘, 수많은 인문학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의 책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첫째, 그것이 인문학적 가치를 바탕으로 쉽게 쓰였다는 것과 둘째, 저자가 그저 인문'학'이 아닌 인문학적 '체험'을 강조하고 나아가 '내가 느낀 그 인문학적 '체험'을 당신도 한 번 느껴봐. 죽여줘' 라고 말하는 듯한 진심과 적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책 몇 권을 읽는 동안 책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촉수처럼 살고 싶다는 그의 말이 은근히 공감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감정과 느낌과 생각들을 다 느끼고, 경험해보고 싶었던. 나만의 표현으로 짜글짜글 촘촘히 접힌 부채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이 그저 허망한 망상이 아니었고, 자연인으로서 자연스러운 욕구였다는 생각에 이상한 동질감과 안도감도 들었다.


작은 것에도 느낄 줄 알고, 일상적인 것에서도 낯선 새로움을 경험하는 능력. 그것은 그의 말대로 천천히와 세심히, 그리고 겸손과 자연과 주어진 것들에 대한 감사와 겸허한 태도가 있을 때 가능하다.



책상 위의 다소곳이 휘어진 크리넥스와 예쁘게 뻗어나가는 센터링의 포물선, 핸드폰도 꺼내기 힘든 아침 출근 지옥철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마주 선 아저씨의 어색한 시선과 썩소. 우연히 바라 본 하늘의 이층 구름과 회전 선풍기 바람이 내 차례가 된 순간.

그런 평범과 일상의 순간도 소중하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면 정말 우리는 더 풍요롭게 살 수 있고, 나아가 권태마저도 관조의 돋보기로 태워버리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인문학이 입사 시험의 과목이 되어버린 요즘, 스펙을 초월하는 스펙으로 자리 잡은 요즘, 인문학적 '체험'의 참 의미와 기쁨을 사랑하는 자식에게 전달하는 느낌으로 쓰여진 박웅현의 책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책을 읽고, 두 가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남았다.


하나는 느끼는 삶 다음의 삶이다. 촉수처럼, 부채처럼 흡수하고 느끼고, 경험과 자아의 확장을 하고 나서 일상을 어떻게 살아내고, 살아가야 하는지. 니코스 카잔차키스처럼, 카뮈처럼, 돈키호테처럼 그저 감각의 동물처럼 살아가는 것으로 끝일까.


둘째는 현재의 삶을 산다는 것.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기에 우리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현재라는 말. 'seize the day', '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3차원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주문 같은 말들이지만 순간만을 바라본다는 건 어째 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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