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rse of Love, 2016
어느 작가나 가수, 배우를 깊이 좋아하게 되면 그의 작품이, 노래가 또는 영화가 새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설레고 흥분된다. 그것이 얼마나 괜찮은 작품이고, 노래인지는 둘째 문제다. 그리워하던 연인을 오랜만에 만나게 될 때, 그녀가 조금 추리한 옷을 입은들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그저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 기쁘고,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 멋진 일이다.
이천십육 년엔 이소라의 새 앨범이 나왔을 때, 케이트 블란쳇의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새 책이 나왔을 때 꼭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를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7, 8년 전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후 그의 책과 생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책의 상세한 내용은 이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연애의 시작과 끝을 달달한 러브 스토리와 가슴 시린 신파로만 채우지 않고, 책의 제목처럼 그야말로 '왜 사랑하는지', '왜 내 마음이 이런 지', '그 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이 사랑은 이렇게 쉽게 식어버리는지'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었던 것 같다. 그만큼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느끼고 행하는 사랑의 의미와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심리, 비틀어진 마음을 들추어냈던 책이었다.
그런 그가 21년 만에 신작을 발표했다고 하니 사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에 읽었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가 연애의 a부터 z를 다루고 있다면,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책 제목 그대로 연애+결혼의 a부터 z를 이야기한다. 30대가 되어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책이 '낭만적 연애' 보다 '그 후의 일상'에 방점을 찍고 있어서 그런지, 500일의 썸머 처럼 풋풋한 느낌의 이전 책과는 다르게 닳고 닳은 현실의 느낌이었다.
결혼을 하고 라비와 커스틴처럼 아이도 어느 정도 키운 나이가 되어 이 책을 다시 보면 어떨까. 내가 아직 해보지 못한 결혼과 그 후의 일상, 권태, 가정을 꾸리고 가장이 되는 일은 흔히 먼저 길을 가본 이들이 말하듯 되도록 천천히, 늦게 하는 게 좋을 만큼 무겁고, 지루하며, 건조한 일일까. 머리로 하는 사랑과 관계 맺기가 실제 연애와 사랑, 현실에선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가리웠던 가면과 감추었던 마음이 그대로 노출되듯이, 결혼은 어쩌면 진짜 내 모습을 그대로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동시에 다른 존재를 그렇게 받아들이고 용납하는 일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모두에게 24시간 나 자체를 누군가에게 노출시켰던 적이 없는 대부분의 이들이 결혼 생활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불행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온전한 사랑하기와 사랑받기에 있어서 연애를 얼마나 오래, 많이 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모두에게 다시 시작인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감정의 바닥과 불완전하고 불안한 심리의 기둥과 틀 속에 우리는 배우자를 초청하여 구경시켜주고,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나도 배우자의 그곳에 들러서 둘러보는 것이다. 그 작업은 한두 번 친구 집에 가는 정도가 아닌, 이제 서로의 마음과 기억과 심리의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 오래 지나 익숙해지더라도 내 집이 아니기에 불편하기 마련이다.
결혼은 현실이야. 결혼은 무조건 천천히 해. 지금을 즐겨. 행복한 줄 알아. 결혼 빨리 할 필요 없다...
결혼 생활에 대해 이러한 솔직한 소감이 나오는 이유는 '결혼'에 대해 우리가 많이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완전해진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자 완성이 아니다 라는 말의 의미는 결혼이 책의 원제처럼 '사랑의 과정' 속 일부일 뿐이라는 뜻이다. 사랑의 수많은 과정들 속에 결혼은 하나의 세레머니이자 변곡점일 뿐이다. 그 변곡점은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존재 자체를 '용납'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삶의 시작, 그리고 배우자와 아이들을 위한 '자기희생'과 그로 인한 '성숙'의 시간을 받아들이고, 선택하고, 결심하며, 책임지는 지점이다. 그것은 나와 너가 완전하지 않은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닫고, 그런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달콤하고 기분 좋은 가슴 설레임과 시리도록 애절한 그리움만으로 '사랑'을 정의하고,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첫 만남부터 헤어짐의 '연애'를 넘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낳고 양육을 하는 '결혼 생활' 전체를 다루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웬만큼 제대로 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랑' 이란 결국 자기를 내려놓는 과정일지 모른다. 받는 사랑과 그 사랑의 자극을 시작으로 점차 사랑에 있어서 '나'의 영역은 줄어들고, 그 '사랑'의 영역에 '너'와 '사랑하는 이'가 자리 잡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도 현실적이고, 일상적이며, 끔찍이도 자기희생을 수반하지만, 역설적이게 그것이 진짜 사랑인 것이다. 그것은 연민과 봉사와 거창한 희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상에서도, 현실에서도, 진정으로 나를 죽여가며 사랑 주는 기쁨을 아는 것이 진짜 '사랑의 의미와 기쁨'을 아는 것이 아닐까.
수없이 많은 사랑 노래와 사랑의 감정이 사랑의 긴 여정과 과정 속에 얼마나 작은 지점인지를 깨닫고, 꽃피는 봄날, 센치한 가을날의 설레는 감정과 풋풋한 마음이 사랑에 관하여 얼마나 부분적인 감정인지를 새삼 알게 된 순간, 사랑은 가벼운 분홍빛이 아닌 진중한 진회색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