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김중혁, 2016
이동진 김중혁이 쓴 책, '질문하는 책들'을 읽었다. 소설가 김중혁과 같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다루었던 책과 대화를 정리하여 펴낸 책이다. 2014년 펴낸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이후에 빨간책방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다룬 두 번째 책이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몇 안 되는 영화 이외의 주제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영화와 책, 음악에 있어서 이동진은 믿고 보는 가이드다. 그런 그가 대놓고 책에 대한 책을 냈다니. 일단 그 책을 보고, 책에 소개된 책을 읽는 게 좋을 것 같아, 후다닥 읽었다.
수년 전 직장인, 대학생 필독서였던 '총.균.쇠'부터 '생각의 탄생',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비틀즈 앤솔로지', '작가란 무엇인가',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철학자와 늑대', '생존자',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까지 인류학, 문학, 인문학, 예술, 철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다룬다. 9권의 책 중 제대로 읽은 책은 한 권도 없고, 읽어볼까 했던 책들이 몇 권 있는 정도였지만, '질문하는 책들'을 읽고 난 후에는 9권의 책을 모두 읽고 싶어 졌다. 그것은 책이 깨알같이 좋은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동진과 김중혁이 책에 대해 주고받는 대화 속에 그들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인간에 대한 인식의 온도가 따듯했기 때문이다. 특히,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크게 남는 것은 사실 책의 내용보다 책의 형식과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가치관이 맞고, 좋아하는 주제가 맞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휴머니즘이 언제나 옳은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우리의 행복은 언제 찾아오는지', '여행과 삶은 어떻게 닮아 있는지'에 대한 질문 그 자체 보다 그런 질문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유쾌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간접적으로 느꼈다. 어쩌면 그것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 보다 더 강하게 남았다.
질문보다는 '답'이 더 중요한 요즘 시대에 '질문하는 책들'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책의 제목과도 같이 '답'을 주지 않고,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A는 B이고, 그것은 C 때문이다.' 라는 논리와 지식 전달, 명쾌한 해답 제공이 보통 책의 기능이라면, 이 책은 어떤 질문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왜 그런 질문들이 중요한지에 대한 답을 준다. 즉, '질문의 내용' 보다 '질문' 그 자체의 가치와 기능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모든 답에는 선행되는 질문이 반드시 있지만, 모든 질문에 반드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어떤 질문에는 답이 없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삶 속에서, 때로는 답 없는 질문이 더 가치 있기도 하다. 어쩌면 답이 없는 9가지의 질문에 대해 기존의 책들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동일한 주제에 대해 책과 책은 어떻게 부딪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그 의지와 본성과 본능을 낙관해도 되는 존재인지. 단독자로서의 인간의 숭고함을 이야기하는지. 아니면, 인간은 동물적 본성을 갖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지. 정답은 없다. 그저, 견해와 근거만 있을 뿐이다. 답을 아는 것보다, 그런 질문을 갖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책은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삶이란, 답을 찾는 일이 아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 자체가 여정이며, 그것이 의미 있다고 말한다.
언젠가부터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오래 살아남고, 적을 안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뇌의 에너지 대부분을 쓰기 시작하면서, 대화의 주제는 그만큼 얄팍해졌다. 대화의 주제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그만큼 깊이 없는 하루를 보내왔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질문하는 책들'의 질문이 나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질문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책을 읽은 후, 남는 단어는 '질문'과 '대화'이다. 가치 있는 '질문'에 대해 같이 공유하고, 그것에 대해 '대화'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화'를 하다 '답'을 찾아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 자체로 행복한 일이다. 때로 그것이 나 스스로와의 '대화'일 수도 있다. 어쨌든 질문하고, 대화하는 일. 두 저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책장을 넘기면서도 빨리 책을 다 읽고, 누군가와 책에 대해, 어떤 질문에 대해 '대화' 하고 싶어 졌다. '질문하는 책들'의 책을 읽고,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전에 나만의 김중혁을 찾아야 하겠지.
책에 소개된 책에 대해서는 우선 그 책들을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질문하는 책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이동진의 서문이다. 서문에 끌려 책을 구입했는데, 그것이 책을 다 읽게 만든 동력도 되었다.
그러니까, 좋은 책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좋지 않은 책은 간단하고도 명확한 답변을 자신 있게 제시하지만, 좋은 책은 늘 에둘러가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긴 꼬리를 가진 질문을 남긴다.
.....
그렇게 이어지는 질문들의 끝에서 삶이라는 거대한 수수께끼를 묻는다. 어쩌면 우리 두 사람이 나눈 그 모든 대화는 우리가 얼마나 알지 못하고 있는지를 깨달아 가는 무지의 여정인지도 모른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가 제대로 다시 한번 물을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길동무가 없었다면 긴 여행을 떠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
그리고 이 모든 의문을 불덩어리로 함께 품을 수밖에 없는 삶이라는 요란한 미스터리에 대해 물었다. 어떤 질문들은 턱없는 헛발질이었고, 어떤 질문들은 허망한 메아리였다. 하지만 또 다른 질문들은 끝내 살아남았다.
그러니 부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제기된 물음에 연이어서 물을 수 있기를. 물음에 물음을 얹어가며 치열하게 물을 수 있기를. 물음의 연쇄 속에서 지치지 않고 계속 물을 수 있기를. 그리고 물음의 반향에 서로 귀 기울여가며 함께 물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