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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Sep 06. 2016

회색예찬

억울한 회색

색의 세계에 감정이 있다면, 색도 느낄 줄 안다면,


수만가지 색 중 가장 억울한 색은 회색이다.

개성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고, 그야 말로 자신만의 색깔이 없는 색.  회색.

흑과백의 분명한 결정과 선택을 미덕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중간 단계인 회색은 답답함과 비효율 그리고 이중적인 색깔의 상징이다.


때로 회색분자 같은 단어로 내편 니편의 흑백 상황에서 정확히 편을 고르지 않는 우유부단과 기회주의, 양비론의 비열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회색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그 어딘가를 대표한다.

하지만, 회색이 불분명한 모호함을 내포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회색의 잘못은 아니다.


사실, 세상이 그렇다. 감정이 그렇다. 모 아니면 도인 경우 보다, 애매모호한 개걸윷이 더 많이 나오고, 사랑 혹은 무관심도 아닌 썸, 호감, 애정 같은 명확치 않은 감정이 더 흔하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우리가 그렇다.


어느 누가 회색을 매도 했는가.

무색무취의 재미없고, 맛없는 색으로 취급했는가.


하이얀 흰색과 새까만 검정색 사이의 수많은 회색과 그레이, 차콜.

세상에는 흑백 보다 그 가운데 '회색'이라 불리우는 이들이 더 많다. 그런 현상과 감정들이 더 보편적이다.


때로 너무 다양하고, 이름 붙이기 어려워, 표현과 인식의 편의성을 위해 우리는 흰색과 검정색을 친근하게 대하고, 쉽게 활용했는지 모른다.


때로는 진하게 하얗고, 검은 잘난체 하는 색들의 거만함 보다 묵묵히 뒤에서 받쳐주고, 섬길 줄아는 회색의 진중함과 든든함이 더 가치 있고 멋지다.


청량한 퍼런 가을 하늘과 뭉게 구름 보다 비구름 잔뜩 머금고 언제 뱉어 버릴지 모르는 진회색의 흐린 하늘이 때로는 더 어른스럽고, 무게 있다.


흰색이 무음의 침묵이라면, 회색은 적당한 소음과 같다. 침묵 보다는 작은 소음이 더 집중하게 하고, 일상의 조미료 역할을 한다.



'인생은 이런 것이다' 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성공과 실패가 분명히 드러나는 삶도 가치 있지만,

선뜻 하얗다, 거멓다 말하지 못하고, 이거인지 저거인지 헷갈리는 삶을 사는 수많은 이들의 생각과 삶도 가치 있다. 그것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하지만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수만가지의 회색의 존재가 있기에 천연색과 흑색과 백색이 드러나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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