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의 희생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을 했지만..
힘들게 쟁취한 선거에서, 야권의 분열로-
결국 죽 쒀서 개를 줘버리게 된(!!)
쓰라린 경험을 해야만 했고..
그로부터 5년 후.
두 번째로 치르는 대통령 선거였던, 1992년 겨울.
이 때가, 성인이 되고- 투표권이 생긴 나에게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대선이었는데..
87년에 이어,
김영삼과 김대중이 다시 맞붙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87년에는 야당 후보였던 김영삼이 92년에는..
3당 합당을 통해, 여당 후보로 출마했다는 것!
(진정한 역사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데..
이때부터 “우리가 남이가” 하는 말이 나왔고,
지역 감정이라는 민족의 비극도 격화됐다. ㅠ)
그래서, 대부분의 운동권 및 진보 진영에서는
“비판적 지지”를 주장하며,
야권 후보인 김대중 지지를 선언했지만..
내가 속해있던 "진보정당추진위원회"에서는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주장하며,
민중 후보였던 백기완 지지를 선언했고..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백기완 선거대책 본부 (백선본) 에서 함께!!
조직적으로 선거 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
올림픽은 88, 담배도 88~♪
대통령 후보도 기호 8번~♬
이런 노래와 함께,
팔다리를 모아서 8자를 만드는-
율동까지 해가면서, 열심히 거리를 누볐고..
낮에는 모금함을 들고, 유세장과 거리에서..
밤에는 전화기를 들고, 사무실과 집에서..
정말 미친 듯이 선거 운동을 했더랬다.
(지금이야, 휴대폰에 ARS까지..
전부 디지털로 체계화 되어 있지만,
그때는, 완전 아날로그식 수작업이었는데..
지역을 대충 나눠서,
투표권이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 한 후에,
대부분 귀가했을 밤까지 기다려서,
일일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
지지하는 후보를 묻고-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했다면,
백기완 후보를 지지해 줄 것을 부탁하는-
전화를 정말 엄청나게 많이 걸었다;;;ㅋ)
한 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 뜨겁게(!!) 선거운동을 했는데..
차갑게 외면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따뜻한 사람들도 많아서,
종종- 감동을 받기도 했던.. 그런 기억이 있다.
그런데 정작, 적(?!)은 내부에 있었으니-
소위, 운동권이나 진보 진영 내부에서는
우리가 야권의 분열을 조장한다고-
격렬하게 비난을 하면서..
심지어, 우리를 향해 테러까지 저질렀고..
그로 인해, 육체적으로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크나큰 상처를 받았던.. 아픈 기억도 있다. ㅠㅠ
만약에 김대중이 떨어지면, 전부 니네 책임이야!
"사표"를 만들지 않으려면-
백기완을 사퇴시키고, 될 사람을 밀어줘야만 해!
이런 주장을, 그 때 그들은 했었는데-
나는 지금도.. 이 말들이 이해가 안 된다.
내가 제일 지지하는 후보를 찍는 게,
왜 "사표"를 만드는 것이며..
될 사람을 밀어주는 거라면, 선거를 왜 하지?
그냥 될 사람을 시켜주면 되는 거 아닌가 말이다;;;
그 때의 우리는, 그리고 나는..
온갖 비난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으며!!
단 몇 표에 불과하더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우리가 직접!! 낼 수 있기를 염원했고..
살아 생전에, 단 한명의 국회의원이라도
우리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간절한 바램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것 같다.
이런 우리의 바램과 염원은 나중에..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긴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더 많이!!
찾아오기는 했던 것 같은데..
민중당- 진정추 - 국민승리21 - 민노당 - 통진당 -
진보신당 -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진보 정당은..
바로 이런 과정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성장해 온 ‘역사적 산물’ 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지금의 정의당을 생각하면-
정말 참담한 마음 뿐인데 ㅠㅠ
여기에 관한 이야기도 앞으로 하나씩.
찬찬히 풀어나가보도록 하겠다.)
그럼에도, 1992년 대선 당시.
정말 솔직하게 고백을 하자면..
김영삼과 김대중의 표 차이가,
백기완의 득표수보다 적으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함이..
마음 한 켠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ㅠㅠ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힘겹게 치뤘던 대선의 결과는..
백기완 후보가 2%도 넘기지 못했고,
그 이상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김영삼이 제14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1987년에,
김영삼과 김대중이 야권 단일화를 했었다면?
1992년에, 김영삼이 얻은 표보다
김대중과 백기완의 득표수의 합이 많았다면?
그랬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