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당시의 학생운동 조직은, 소위-
NL (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 계열과
PD (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 계열로
크게 나뉘었는데..
NL 계열은..
반미, 민족, 자주, 통일 등이 기치였던 만큼,
조직도 통일로!! 단일화 되어 있어서-
엄청난 쪽수(?!)를 자랑했던 반면..
PD 계열은..
자본과 노동에 근본을 두다 보니,
이론과 논리적인 측면의 해석에 이견이 많아서..
다양한 조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진보학생연합, 대장정, 학생연대, 청학위 등..
대략 7개 정도의 조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진보학생연합!
이라는 조직에 속하게 되었는데..
우리 조직은, 원래 90-92년에는..
"민중당 청년학생 위원회"로 시작되었으나,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 1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면서..
(그때, 처음으로 잠깐!
강서구의 선거 운동을 지원 했었는데,
故 노회찬 의원이 첫 출마했던 지역구였다.)
정당법에 따라, 정당 등록이 취소되었고..
(그 때, 당의 지도부였던 이들이.. 바로,
김문수, 이재오, 장기표. 등 이었으니-
우리에게는 "을사오적" 같은 이들이,
당을 팔아먹고 튀어서.. 현재는 부들부들;;;)
이후에, "진보정당 추진위원회"로 부활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진정추 산하 학생 조직으로..
진보학생연합 (진학련)이 되었다.
(이 조직이 나중에..
국민승리21을 거쳐, 민노당의 시초가 된다.)
당시에 우리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전쟁에 기반을 두고-
합법적인 정당 활동을 꿈꾸었으며..
대중성이 많이 떨어지는,
학생 운동의 색채를 바꾸기 위해서..
이른바 ‘부문 운동’ 을 강조하며!!
다양한 학생 자치활동 및 지역 연대 활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대학 개혁, 학내 복지 등..
사민주의에 가까운-
서구 좌파적 활동에 힘을 쏟으면서..
대중성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학생 운동권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개량주의다, 타협주의다, 회색분자다, 등등..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게 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조직의 이념과 성향이 너무 좋았고!
비록 그 시작은, 과 선배들의 영향이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을 해봐도, 참으로 운 좋게!!
너무나 근사한 조직에 속해 있었다는!
그런.. 자부심! 이 있다. 으쓱으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