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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어버린 소녀

by 황마담
우리 엄마의 여고시절 사진이다.
그 시절에도 이런 코스튬이 있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


1950년 생인 우리 엄마는,

오랜 전통의 명문 - 부산 동래여고를 졸업했다.


2남 3녀 중에 장녀라는 이유로-

경제 활동을 빌미로 늘 집을 비웠던 외할머니 대신,


온갖 집안 일과, 알콜중독이었던 할아버지와

형제들의 뒤치닥거리를 도맡아하면서도..


얼마나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 했던지-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젠가 엄마는 그랬다.


모두 잠든 깊은 밤에, 누가 깨기라도 할 새라-
불빛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면서도,
몰래 공부했던 그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고.


어떻게든 교대에 진학해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고.




그런데, 엄마는 끝내...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있던
외증조 부모님과 외조부모님 모두-
여자가 많이 배워봐야 팔자만 쎄진다고 여겼고,


엄마에겐 손위 오빠이자, 집안의 장손이었던

큰외삼촌이 육사에 진학하는 바람에,

그 뒷바라지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며-


"넌 그냥 졸업하고 적당히 돈 벌어서,
시집 갈 밑천이나 마련해!!"


이것이 외갓집에서 우리 엄마에게

바랬던 '전부' 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장학금을 받던,

어떻게든 자력으로 대학에 진학할 요량으로-


가족들 모두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몰래 공부를 계속 했다고 하는데-


그럴 때,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전기세 많이 나오니까 불 끄라는..


외할머니의 야멸찬 타박이

눈물겹게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심지어, 자기보다 훨씬 공부를 못했던

다른 친구들도 다 대학에 가는데..


엄마는 대학 합격증을 받아놓고도

집안의 반대로 진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어서,

정말 많이 울고 또 울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전부를 포기할 엄마도 아니었다.


어렵게 간호전문학교에 들어가서,
결국은 간호사가 되셨으니 말이다.


그리고는, 아버지를 만나...
끔찍하게 생각했던 외갓집에서 도망이라도 치듯이
어린 나이에 덜컥! 결혼을 해버렸다.




집안 환경 때문에, 꿈꾸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엄마...


문득, 궁금해진다. 만약에 그 때,
엄마가 원했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면...


과연 엄마의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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