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겨울왕국 엘사처럼 항상 차가웠다. 친구들 모임에 나올 때도 귀찮다고 투덜거렸고, 밥을 먹을 때도 뭐가 마음에 안드는지 매번 투정부렸다. 유난히 나한테만 그랬다.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한 척 인사도 잘하고, 로봇처럼 어색하지만 미소도 곧잘 지어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늘 차가웠다. 한 번은 이유를 물었더니 내가 너무 못생겨서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힘든 일이 생기면 늦은 밤이건, 새벽이건 전화를 걸었다.
- 나와
오랜 고민 끝에 친구들 모임에서 중대발표를 했다. 그녀도 그곳에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예상치 못한 인물의 언급에 친구들은 벌떼처럼 몰려와 질문세례를 퍼붓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단지 들고있던 술잔을 모두 비우고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할뿐이었다.
- 걔도 못생겼잖아
그 이후로 밤이나 새벽마다 그녀가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 연락도 없었다. 밤마다 잠을 깨우는 누군가가 없어 조금 마음이 편했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에 돌을 얹은 듯 무엇인가 불편했다.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누군가가 부실듯이 문을 두드렸다. 그녀였다.
- 그래서 걔한테 고백은 했어?
그녀는 여전히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떤 인사말도 없이 알코올 향을 풍기며 대뜸 질문을 건네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그녀는 변한 것이 없었다. 나는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그녀의 물음에 단숨에 답했다.
걔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찾아가서 고백하려고 준비했는데, 알고보니 걔 남자친구가 있더라 등 나는 그녀에게 고자질하듯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동안 그녀는 전문상담가처럼 고개를 끄덕거리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모두 듣더니 아무말 없이 그녀는 고개를 들어 가로등을 바라보았다.
- 나는 눈 오는 날이 참 좋더라
그녀의 말에 나도 덩달아 가로등을 올려다봤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가로등 아래로 투명한 눈꽃들이 줄을 지어 춤을 추고 있었다. 다시 그녀를 봤을 때, 그녀의 얼굴은 술기운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가로등 불빛 때문인지 약간 붉어져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가로등에서 내려와 곧 나를 향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한번도 보여주지 않은 눈웃음을 보이며 멋쩍은 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 그냥 그렇다고
네가 없는 날에는 드라마를 보곤 해
딱히 드라마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그냥 심심하니까
눈이 내리는 날에는 거리를 걷곤 해
딱히 눈을 좋아하는 건 아니야
그냥 눈이 왔으니까
불 꺼진 방은 때때로 무섭기도 해
딱히 겁이 난 건 아니야
그냥 어두우니까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너를 생각하곤 해
딱히 네가 보고 싶었던 건 아니야
그냥
그냥 그렇다고
_ 황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