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생활

김태용 작가의 <물의 무덤>을 읽고

by 황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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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쳇바퀴 돌듯.jpg 김태용 작가의 <물의 무덤(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현대문학, 2010


우리는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늘 탈출을 꿈꾸지만, 결국 다시 지루한 쳇바퀴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멈출 수 없는 계절의 순환처럼 이미 결말이 정해져 있는 삶, 그럼에도 때때로 찾아오는 작은 변화는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김태용 작가의 <물의 무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어머니의 요강을 비운다. 오늘도 어김없이 돌기 시작하는 다람쥐 쳇바퀴. 그런데 어느 날, 양치질을 하다가 사랑니 하나가 툭하고 빠져버렸다. 평범한 일상생활에 작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 작은 사고는 그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온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일상생활의 변화


그날은 이상하게도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출근하려고 보니 누군가 자동차 사이드 미러를 부숴놓았고, 출근하자마자 미리 예고도 없이 지방으로 급하게 출장을 가게 되었다. 수많은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지극히 평범한 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그는 평소 침착한 성격일까. 그렇지도 않다. 그는 종종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지 못했고, 가끔씩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만큼 고집스러운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무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성격 탓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대한 권태였다.



검은 말의 정체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그에게 검은 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그것, 바로 환영이었다. 검은 말은 무덤을 파헤치며 날뛰었다.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컵라면도 자유롭게 먹었다. 여러 문제와 상황을 그저 하나의 일상생활로 생각하던 그와는 달랐다. 검은 말은 어떠한 구속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행동했다. 검은 말은 주인공과 다르게 다람쥐 쳇바퀴 안에서 끊임없이 저항했다.


그렇다면 주인공에게 왜 검은 말의 환영이 보였던 것일까. 주인공은 검은 말을 환영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환영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검은 말이었을까. 검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검은 말은 우리가 늘 갈망하지만 제어하는 그것, 바로 욕망일지도 모른다.



파괴하려는 자, 유지하려는 자


주인공과 검은 말의 관계는 욕망을 통제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언제나 욕망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우리를 탈출시키려 하고, 반대로 우리는 욕망을 억누르며 일상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지루한 다람쥐 쳇바퀴를 돌리며 탈출을 상상한다.


하지만 이런다고 욕망이 쉽게 얌전할리 없다. 평범하다고 착각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사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상황이 끊임없이 펼쳐져있다. 그 속에서 욕망은 슬그머니 새어 나와 우리를 유혹한다. 그냥 파괴 해버려. 저질러버려. 때때로 자신도 모르는 새 밖으로 튀어나온 욕망은 검은 말처럼 날뛰어 다니며 일상생활을 파괴한다.



다람쥐 쳇바퀴에서 탈출을!


그렇다면 욕망은 나쁜 것일까. 얼마큼 드러내느냐에 따라 다르다. 욕망을 완벽하게 통제할수록 우리는 겁쟁이가 되고,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만큼 우리는 모험가나 범죄자가 된다. 그럼에도 만약 주변에서 누군가가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질타한다. 하지만 욕망이야 말로 지긋지긋한 다람쥐 쳇바퀴에서 탈출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에게 평범한 사람일지 몰라도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세상의 전부일 수 있다.
<모자 쓴 고양이> 동화작가, 닥터수스


비가 내린다. 그동안 욕망을 절제해 오던 주인공은 고장 난 차창 너머로 비를 맞는다. 주인공의 몸은 비로 흠뻑 적셔진다. 마치 물의 무덤으로 수장되는 모습이다. 그 과정을 통해 주인공은 진실한 죽음, 즉 욕망의 절제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껍데기는 물에 의해 묻혀버리고, 오로지 알맹이만 남은 욕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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