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에서 찾은 존재의 이유

배명훈 작가의 <안녕, 인공존재!>를 읽고

by 황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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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jpg 배명훈 작가의 <안녕, 인공존재!>, 북하우스, 2020


이경수와 신우정은 누구나 알만큼 친밀한 사이였다. 단순히 가까운 친구라기보다는 주변사람들이 부적절한 사이라고 오해할 만큼 친밀한 관계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의 배우자들까지도 서로를 가족처럼 여겼다는 점이다. 우정의 남편은 경수와 친했고, 경수의 아내는 우정에게 언니라고 불렀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우정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녀의 극단적인 선택은 그녀의 가족뿐만 아니라 경수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평소 그녀는 심리적으로 고충이 많거나 전조현상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그녀의 남편조차 그녀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이유에 대해 경수에게 물었다. 물론 경수도 그 물음에 결코 답할 수 없었다.



이상한 발명가, 신우정


그녀는 이상한 발명품을 발명하는 이상한 발명가였다. 모니터가 없는 컴퓨터, 화면이 없는 휴대폰 등 반드시 존재해야 할 것이 빠져있는 기묘한 발명품을 만들어내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발명품은 하나같이 대중들에게 대히트를 쳤다. 그녀의 발명품을 세상은 오히려 혁신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마지막 발명품이 경수에게 전달되었다. 전원 공급장치가 연결된 작은 조약돌 모양의 물건이었다. 사람들은 이 조약돌의 용도나 의도를 조금도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경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의 마지막 작품 또한 결코 평범할 리 없다고 이미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발명품


지금까지 그녀의 발명품들은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청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는 모니터 없는 컴퓨터를 경수에게 보냈을 때 스피커는 필요하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번 발명품은 기존 발명품과는 사뭇 달랐다. 경수는 전원을 공급하고 말도 걸어봤지만 이 인공존재는 아무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조약돌이 동봉된 박스 안에는 작은 책 한 권이 함께 들어있었다. 조약돌에 대한 설명서였다. 설명서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동시에 소멸해 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적혀있었다. 설명서를 모두 읽고 나서 경수는 깨달았다. 그녀의 마지막 발명품은 조약돌이 아니라 이 설명서라는 것을.



소중한 존재, 이경수


그럼에도 경수는 조약돌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다. 결국 우주비행사였던 그는 조약돌을 우주에 가져가기로 결정한다. 왠지 광활하고 공허한 그곳에서는 반응을 보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지구의 소음에서 완전히 벗어난 절대적인 고요 속에서 조약돌은 비로소 스스로 소리를 내었다. 바로 그녀의 목소리였다.


분명 그녀는 아주 먼 곳으로 떠났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들은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친구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에게는 이미 가족이 있었지만 오직 이 메시지를 볼 수 있는 존재는 우주비행사이자, 이 조약돌의 존재의 이유를 밝혀내려는 경수뿐이었다. 아마도 경수는 그녀의 존재를 이루는 수많은 조각들 중 가장 반짝이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자신의 메시지를 그가 찾을 것이라고 이미 예상한 것 같다. 아니, 세상 사람들 중 유일하게 그만이 이 메시지를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만약 이것이 그녀가 의도한 것이라면 그녀의 뜻대로 모두 이루어졌다. 조약돌의 존재의 이유를 찾아 헤맸던 경수의 노력,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물음에 답을 찾고 싶었던 우정의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었다.



광활한 우주에서 찾은 존재의 이유


그러나 잠시 후, 조약돌은 갑자기 펑하고 터져버렸다. 그러자 경수는 이것으로 인공존재 스스로 자기 존재를 알렸다고 생각했다. 조약돌 안에 왜 그녀의 목소리가 담겨있는지, 왜 갑자기 터져버렸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조약돌은 그녀와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마지막 발명품은 조약돌도, 설명서도 아닌 그녀가 존재하면서 지나온 모든 여정이 아니었을까.


네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김종환, <존재의 이유>


그녀가 만든 인공존재는 마치 우리와 같다. 우리의 존재는 보인다고 존재하고,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저 우리는 무수한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또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에 대해 질문할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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