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라탄시 작가의 <인종주의는 본성인가>를 읽고
인종주의는 사람 인(人), 씨 종(種), 주인 주(主), 옳을 의(義)가 합쳐진 단어다. 영어로는 Racism. 인종주의, 인종차별, 인종차별주의 등 별개의 개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인종을 나누는 것을 찬성하면서도 인종 간 우열은 인정하지 않는 인종본질주의 등 인종과 관련된 사상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수세기동안 인종문제는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 중 하나다.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갈등과 분쟁을 발생시키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현대사회에서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세계 각지에선 여전히 차별과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인종차별은 왜 생겨났는가. 애초에 '인종'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기는 할까.
인종주의의 시작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래전 이 땅에 살았던 조상들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혹독한 자연 속에서 집단을 이루고, 협동을 통해 생존 문제를 해결했다. 시간이 지나 굶주림과 추위문제가 해결되자, 구성원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조상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규칙과 서열을 정하여 구성원들을 결속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집단을 마주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지구의 자원은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자원에 대한 욕심은 갈수록 커져갔다. 결국 다른 집단에 대한 약탈과 약탈을 막기 위한 저항이 서로 충돌했다. 그러나 전투의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필요했고, 이는 지배층에 대한 반발로 확산되었다. 그러자 지배층은 결속을 강화하고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집단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주입했다. 이 작은 불씨가 바로 인종주의의 시작이다.
본래 인간은 서로 구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명이 복잡해지고 사회가 커지면서 우리 집단과 외부 집단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존에 위협되는 외부 집단으로만 구성되었지만, 근대에 들어서서 피부색에 따라, 문화와 종교에 따라, 사는 나라나 지역에 따라 끊임없이 세분화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에 들어와서는 특정 집단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향한 혐오로 인종주의가 확산되었다.
나는 인종주의가 '우리'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단어지만, 사실 이 단어에는 담장이 있다. 담장 안의 우리와 담장 밖의 타인, 담장 밖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적대적이다. 또, 작은 문제라도 우리는 쉽게 동요하고 민감하지만, 담장 밖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도 정작 무관심하다. 때때로 담장 밖에서 일어난 폭력적이고 잔혹한 일은 우리에게 한낱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인종주의에 의한 대표적인 잔혹한 사례로 원주민 학살, 아우슈비츠 유대인 학살 등이 있다. 정말 신이 있을까 의문이 들만큼 인간의 존엄성이 처참히 파괴된 이 사건들은 도대체 왜 일어났을까. 1920년대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막대한 전쟁 배상금으로 자국 경제가 파탄 났다.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독일국민들을 전쟁터까지 내몰아낸 것은 바로 인종주의자들의 선동이었다.
나치 독일은 인종주의와 제국주의를 표방하며 당시 독일 국민들에게 위기감과 두려움을 조성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리아인종론이다. 자신들은 우월한 인종이고, 낯선 이방인들(유대인 등)은 열악한 인종이라는 것. 또, 이방인들이 우리의 것을 탐내고, 유전적 순수성을 오염시킨다고 국민들을 선동했다. 결국 말도 안 되는 이 선동은 수많은 폭력과 희생으로 이어졌고, 결국 인류사의 수많은 페이지를 피로 물들였다.
알리 라탄시 작가의 <인종주의는 본성인가>는 인종차별 사례들을 언급하면서 인종주의를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사상이라고 평가한다. 더불어 인종이라는 사상이 자연스럽게 발생한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그저 인종주의만 있을 뿐이라며 비판한다. 또한, 사실 무근의 과학적 인종주의와 인종현실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 책에서 언급한 대로 인종이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인종주의는 종말을 고하기 어렵다. 오히려 더욱 발전할 뿐이다. 제2의 아우슈비츠는 물론, LA폭동이나 털사학살, 샤프빌학살 등과 같은 아픈 역사들이 끊임없이 반복될 뿐이다. 인종주의는 본성인가. 결코 본성이 아니다. 심지어 이성도 아니다. 오래된 관습과 두려움만 남은 괴성일 뿐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현재 지식과 기술이 발전한 우리는 지난 과거와 달라졌는가. 아주 오래전부터 남아있던 경상도, 전라도 등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와 일본, 중국, 미국 등 특정 나라에 대한 혐오가 여전히 악습처럼 남아있다. 과연 이뿐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러한 갈등을 이용하여 이득을 챙기고 있다. 인종주의 역사는 시대와 장소만 달라졌을 뿐, 무수한 폭력과 희생이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