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란 이름으로 바다를 건너다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읽고

by 황만복

청춘이란 무엇인가


살아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아무리 부유하고 명예로워도, 생명의 불꽃이 꺼진 순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진다. 정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정신이 살아있는 상태를 청춘이라 부른다. 청춘은 끊임없이 생명을 불어넣는다. 꿈과 열정, 그리고 설렘까지 모두 청춘에서 비롯된다. 청춘은 우리에게 많은 경험을 제공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반면에 청춘을 잃은 사람은 이파리 하나 남지않은 나무처럼 권태롭고 무기력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마치 건강을 당연하게 여기다 잃고 나서 후회하는 것처럼, 청춘 역시 잘 살피지 않는다. 청춘은 분명 젊은 이들의 특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업과 취업 등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한다.



청춘을 잃은 사람들


오늘날 우리는 많은 것을 인스턴트처럼 해결하고 있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몇 분만 돌려 완성하는 음식처럼, 모든 것을 간편하고 빠르게 완성하려고 한다. 그래서 조금도 특별하지 않다. 이미 결과가 뻔히 보이는 길을 선택하면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와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다운 것들이 오히려 사라진다.


본래 가치를 매길 수 없는 특별한 존재였음에도, 노하우의 유혹에 빠져 남이 만든 양식에 갇혀버리고, 스스로 결정하며 헤쳐나가야 할 순간마다, 남이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청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는 셈이다.


?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CVI%2Fimage%2FuPbRi_a0J081mXp15q_ZGva993M.jpg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문학동네, 2010



바다를 걸어서 건넌 사람


그러나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 등장하는 크리스토프는 다르다. 크리스토프는 등에 아이를 업은 채 바다를 건너려 했다. 거센 파도가 혀를 날름거리며 그를 집어 삼키려 해도, 그는 멈추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단지 건널 수 있다는 확신 하나로, 놀랍게도 그 넓은 바다를 건너갔다. 만약 자신을 믿는 용기와 결단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다.


우리는 부서지는 파도와 반짝이는 물결을 동경하지만, 사실 바다는 치열한 곳이다. 때때로 차갑고 깊은 위엄으로 우리를 압도하고, 그 거대함 앞에서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바다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결코 크리스토프처럼 바다를 건널 수 없다. 아이를 업고 건너는 것은 물론, 누군가의 등에 업혀 건너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청춘의 현주소다. 새로운 경험을 갈망하지만 스스로 믿지 못하는 괴리 속에 방황하고 있다.



청.춘.이.란. 힘.으.로.


소설 속 윤이와 명어, 단이와 미루도 각자의 상처를 안고 바다 앞에 서있다. 과연 그들은 크리스토프처럼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라도 결국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낡은 지하방에서 싸구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크리스토프처럼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아니면 그를 믿고 순순히 그의 등에 업힌 아이만큼의 용기라도 아직 남아있을까.


청춘은 많은 희생과 책임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청춘은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가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다. 그리고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다. 우리는 크리스토프가 될 수 있고, 그것이 어렵다면 그의 등에 업힌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바다를 건너는 일이다. 스스로를 믿고, 그것이 어렵다면 주변을 믿으며, 이 바다가 생각보다 깊지 않다고 용기를 낸다면 우리는 기어이 그곳을 건널 것이다.


_ 황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