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9.11.일.산티아고 가는 길)

네델란드 Cees Nooteboom의 '산티아고 가는 길'/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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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지로 된 책...

550쪽의 두꺼운 책...

제목은 다 아는 제목이지만...

실제 내용은...

구경하고 사진찍고...

음식 맛보는 내용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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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생 네덜란드 작가의...

지금으로 부터...

10~30여년전...

조금은 더 순수한 모습으로 남아 있던...

스페인 유적지의 문화탐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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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여년을...

스페인의 산티아고에 이르는...

순례자길 구석구석을 탐방하며...

고 건축물에 깃든 역사적 사실을 세밀한 필치로...

유럽 문화의 깊이 있는 흐름과 연계하여 이야기해 주는 책...



16. 왕과 성자와 이교도...


천년 전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불안에 떨었다.

내가 지금 차를 몰고 가는 칸타브리아와 아스투리아스 사이의 산골짜기에는 8세기에 수사 한명이 살았는데,

이 사람이 쓴 '요한계시록 주해서'는 수백년 동안 온 유럽을 흔들어 놓았다.

지금은 산토 토리비도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수도원 이름은 리에바나였다.

수사의 이름은 베아투스였다...


(중략)


주해서의 반향이 얼마나 컸던지 베아투스가 죽고 나서 수백 년이 지났어도

베아투스의 명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성서를 투명하게 밝히겠다는 의욕이 집착에 가까웠던지라 베아투스는 어떤 의미에서는

남들이 나중에 자기 책에 그려 넣을 삽화에 필요한 상황 설명을 벌써 다 해 놓은 셈이었다.

'요한계시록'의 재앙에 나오는 치떨리는 모든 단계를 무섭도록 자세히 그렸다.


베아투스가 주해서를 쓴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어떤 이단 세력을 뿌리 뽑을 참이었다.

우리는 다시 8세기의 스페인, 아니, 지금은 스페인으로 불려지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아랍인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지리적 공간으로 들어간다.


북쪽은 아랍인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자유의 땅이었다.

그곳에 리에바나 수도원장이자, 아스투리아스의 중심 도시였던 오비에도의 왕 실로의 아내였던

오신다 왕비의 측근이었던 베아투스가 살았다.

베아투스의 앙숙은 톨레도의 엘리판두스 대주교였다.

'이슬람의 검과 카롤링거의 성벽'사이에 꼈다는 스페인 속담이 있었지만 톨레도가 딱 그랬다.


원래 서고트족의 거점 도시였던 톨레도는 우마이야 칼리프국에서도 중요한 도시로 자리 잡았다.

예로부터 왕국의 중심 도시였던 톨레도는 복속된 기독교도가 살던 알안달루스 지역과

이슬람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아스투리아스와 칼롤링거 제국의 사이에 있었다.


톨레도는 여러 문화가 서로를 존중하고 때로는 서로에게서 훔치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면서

나란히 공존했다는 점에서 으뜸가는 국제 도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었다.

기독교도는 서고트의 전통에 자부심을 가졌지만 그러면서도 아랍 세계에도 마음을 열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축복을 안겨 주었다.

아랍 학자들이 번역한 고대 그리스 문화의 값진 유산을 전달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슬람 문화를 인정한 모사라베 기독교의 풍토에서 엘리판두스와

세오 두르헬의 주교였던 펠릭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무르익은 이단 사상이 바로 '양자론'이었다.


양자론은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양자로 삼았을 뿐이지

그리스도 자신이 신은 아니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베아투스가 650쪽이나 되는 반론을 책으로 완성

베아투스는 세상을 다스리는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동체의 신성과 혈통으로 충만함'을 증명하려고

'요한계시록 주해서'를 써 내려갔으리라.

결국 승리는 베아투스에게 돌아갔다.

엘리판두스와 펠릭스의 추종자들은 이단으로 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어떤 불이익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다분히 정치 논리가 작용했던 것이다.

카롤루스 대제와 아스투리아스 왕은 북부 스페인의 주교 관할구들이 아랍 영토안에 있던

톨레도의 대주교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 주어야만 자기들에게 유리한 구도가 펼쳐졌다.


그래서 스페인의 기독교도가 무어인의 멍에 아래 살아가는 불행을 격는 것은

하느님의 천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하면서 양자론 추종 세력을 신랄하게 비난하니까

스페인의 기독교 진영은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주도하던 카롤루스의 자장권으로 끌려 들어갔다.


사상, 사람, 힘, 자연의 이해 관계를 놓고 이합집산이 있었다.

하지만 8세기에 기독교 이단 세력을 척결하는데 한몫했던 베아투스의 주해서가 10세기에도 각광을

받은 것은 똑같은 계산이 있어서가 아니었고 바로 서기 천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근이 온 유럽을 휩쓰니까 똑같은 말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굶주리는 사람과 죽어 가는 사람은 예언서에 나오는 생지옥의 주인공이 바로 자기들이라고 생각했다.

멀리 갈 것 없이 현실이 바로 생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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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틱투스회 계열 클뤼니 수도원의 로둘푸스 글라베르 수사는...

'다섯 권으로 된 역사'라는 제목으로 서기 900년 부터 1044년까지의...

당대 프랑스사를 썼는데...

그 중 제4권인 '세상을 덮은 대기근'에서...

천년이 임박한 상황에서 벌어진 생사의 고비를 숨막히게 그렸다...



글이 만들어 내는 길은 경이롭다.

스페인을 떠날 때는 글이었던 사상이 나중에는 이미지로 바뀌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길을 뒤덮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는 유럽이 부른 광기의 아리아 가운데 하나 였다.

거대한 이주자의 물결이, 수백만의 움직이는 엑스트라가,

기독교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가리비를 매달고 온 순례자들의 끝없는 흐름이

피레네 산맥과 그 너머로 이어지면서 몽 생 미셸, 투르, 베즐레, 르 퓌, 아를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마침내 산티아고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종교적 열정도 열정이지만 정치, 사회, 경제, 예술에서 이 거대한 모험이 끼친 영향은

요즘 사람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이렇게 해서 순례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스페인 북서부와 그 너머 유럽 세계의 교류가 깊어지면서 스페인에서 아랍인이 차지한 지역과

다시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산티아고가 하루 아침에 순례의 중심지로 떠오른 것은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인 성 야고보의 무덤을

이곳에서 찾아냈다고 믿으면서 열광을 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일어난 거대한 이동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누대에 걸쳐서 아랍인의 지배에 맞서기 위한

명분과 수단을 주었고 스페인을 이슬람으로 부터 탈환하여 유럽을 삼켜 버렸었을지도 모르는

파도를 뒤집는 결과를 낳았는데, 그런 대이동을 낳은 원동력은 펠라오라는 안개에 가려진 왕이

나타난 뒤로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줄기차게 고수한 자주성과 지위가 불분명한 믿음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유럽사의 흐름이, 아니 세계사의 흐름이, 아스투리아스의 골짜기와 언덕에서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클라우디오 산체스 알보르노스라는 스페인 역사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럽이 정복당하지 않은 것은 스페인 사람들 덕분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는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의 말을 거론한다.

"히스파니아는 땅과 주민들의 기질로 보았을 때 전쟁을 치러 내고 버텨 내기에는

이 세상 어디보다도, 이탈리아보다도 좋았다."


산체스 알보르노스는 여기서 어마어마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

두에로 강과 에브로 강 사이의 무주공산을 가로질러 아스투리아스와 일곱 세기 동안

밑으로 밑으로 밀고 내려와 다시 찾은 카스티야에서 무어인을 몰아 내기까지,

스페인은 이슬람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부터 유럽을 지키면서도

아랍의 학자, 작가, 철학자, 의사, 번역가가 고스란히 지켜온

그리스와 헬레니즘의 유산은 알뜰히 챙겨서 나중에 르네상스의 재료로 삼았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일곱 세기 동안 쌓은 전쟁의 경험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서반구를 찾아내고 정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산체스 알보르노스는 '스페인 역사의 두 얼굴'이라는 책에서

스페인에서 순례의 열풍이 일어나서 그것이 결국 신대륙 정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콤포스텔라의 야고보가 스페인의 빛나는 금자탑이라는 생각을 베아투스가 했던 덕분이라고...


스페인을 찾는 사람들은 불에 달궈진 유리창 같은 동부 해변만 뻔질나게 찾지

그 너머로는 얼씬도 하지 않지만, 제정신이 아니고는 그럴 수가 없다.

스페인을 몇 십년 동안 돌아다녀 봐서 하는 소리지만 스페인 내륙은 무궁무진하다.

피레네 산맥만 넘어가면 전혀 다른 대륙이 펼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비롭고 호젓하며 안 알려진 곳, 자기만의 역사와 언어와 전통을 간직한 고장이 수두룩하다.

그런 과거를 찾아내서 하나하나 짜맞추고 낯을 익히자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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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건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중 하나인...

산타 마리아 델 나랑코 교회...



산타 마리아 델 나랑코 교회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건물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멀쩡히 서 있다.

라미로 1세(842~850년재위)때 알현실로 지은 건물인데 나중에 교회로 개조했다.

언덕에는 사실은 교회가 둘 있다.

가까이 붙은 이 교회들은 같은 시기에 지어졌고 모두 로마네스크 양식이 들어오기 전

아스투리아스 양식으로 꾸며졌다.


오비에도에 골짜기에 있는 이 건물은 아주 높은데, 거칠게 잘라 낸 사암 덩어리로 된 건물인데

왠지 우아하고 섬세하고 품위가 배어나온다.

로마의 격조가 느껴지는 이 건물에서 이중으로 뚫린 입구는 중세가 어두웠다는 통설을 비웃는 것만 같다.

이런 건물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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