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소머리 국밥 먹으러 가던 날
20여년전 50여년 서울생활 정리하시고
고향인근 한적한 산자락 전원에 정착하신 부모님
겨울되니 텃밭농사도 끝나 소일거리가 없으셔서 더욱 적적하시다네요.
모처럼 여유있는 산골 전원의 한겨울 아침입니다.
꼭두새벽부터 울던 수닭은 지쳐서 조용하고
춥다춥다 방송에서 야단이라
밤새 밖의 개 두마리 무사한지 궁금한데
이럭저럭 일찍 눈이 뜨이는군요.
산자락은 도심지 기온보다 3~4도가 낮습니다.
아침식사전 폐와 피부를 자극하는
상큼한 공기 코끝이 얼얼할 정도의 기온 영하 13도
바람도 매섭군요.
개들이 추위에 강하다지만
이 추위에 개장 밖에서 자다니 별일입니다.
무사합니다.
거실의 화롯불이 아직도 온기를 더하고
어머니께서 아침준비에 부산하시네요.
아침을 든든히 먹고
아침마다 일거리인 차량 성애제거에 나섭니다.
아버님 차는 오래된 차인데
아예 차량 전체를 카바로 씌워 놓으셨습니다.
서울 종친 대종회에 올라가신다기에
차량 카바도 제거하여 시동도 걸어서 온기도 갖춰놓고
발판 먼지도 제거하고
그리고 두마리 개 밥과 다섯마리 닭의 모이를 줍니다.
추운 밤 고생한 녀석들 따뜻한 물을 덤으로 주고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시던 아버님
"군불 지펴라! 화롯불 갈자!"
말없이 마당에 걸어놓은 아궁이로 가서 군불을 지핍니다.
"마른 솔잎을 듬뿍 쌓아놓고, 마른 장작을 올려놓아라!"
삼각형 모양으로 마른 솔잎을 놓고 바람 구멍을 낸다음
그 위에 잘 마른 참나무 장작을 올려서 솔잎에 불을 붙이니
잘 타는군요.
아버님께서 내려오셔서 본격적인 군불을 때십니다.
저는 윗 마당 베란다 아래에 쌓아 놓은 묶은 장작을 외발수레을 이용하여
아랫 마당으로 내려서 아궁이 옆 평상아래 쌓았지요.
30여분
"거실에 화로 내오너라!"
화로의 잔재를 걷어내고 시뻘건 숯을 화로에 붙습니다.
열기가 대단하네요.
그렇게 화로의 숯을 눌러서 다지고 주변은 작은 빗자루로 재를 떨어내고
남은 연기를 가시게 한다음 거실로 들입니다.
설거지를 마치신 어머니께서 흐뭇해 하시네요.
두분 화롯불에 물을 데워서 모닝 커피를 드십니다.
추운 날씨 햇쌀은 밝아오는데
아침 TV 방송은 여유롭게 어제처럼 귀에 메아리치고...
언제 그랬냐는둥
날씨가 꾸물거리더니
또 눈발이 날립니다.
고즈넉한 산자락이
더욱 침묵에 잠기지요.
눈은 소리없이 내리고...
저 아래
흰둥이와 검둥이(미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요즘도
밖에서 잡니다.
추위에 강하다고는 하지만 안스럽네요.
개장옆의 닭장 다섯마리의 닭들
보온재도 대주고 비닐로 바람도 막아주고
아침저녁으로 사료도 듬뿍듬뿍 주니
추운 겨울에도 하루건너 알을 낳습니다.
수닭 한마리
암닭 네마리
왼쪽 아래
비료푸대를 씌운 나무, 감나무이지요.
워낙 추위에 약해서 볏짚을 둘둘 감고
푸대를 씌웠줬는데 춥다는 올 겨울
잘 견뎌야 할텐데...
오른쪽 아래
문방사우아닌 제설삼우
석가래, 삽, 빗자루
눈 많이 오는 겨울에 요긴합니다.
부지런하신 아버님
몇해전에 해놓으신 장작더미
소나무며 참나무며 집 베란다 아래 가득
소나무는 불에는 잘 타는데 화력은 약하고
참나무는 처음 불을 붙이는데 쉽지는 않지만
한번 불이 붙으면 화력이 참으로 좋습니다.
화롯불로 그만이지요.
장작더미 안쪽은 많이 삭았는데
여름내내 지네 등 벌레들이 많이 기어나와
어머니 타박이 많으셨지요.
화롯불 만들기
밑불로
떨어진 마른 솔잎을 아궁이 안에 가지런히 넣고
그 위에 장작을 삼각형으로 올리고
솔잎에 불을 붙이면 바람이 잘 통하여 잘 타오르지요.
아버님께 전수받은 군불때는 요령입니다.
좋은 화롯불을 만들려면
소나무보다는 참나무를 얹져야 됩니다.
실하여 숫이 좋고 불이 오래가지요.
이것이 참나무 숫입니다.
보기만 하여도 온기가 느껴지네요.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산자락 추위에도 밖에서 자는 이 녀석 이름이 '미남이'입니다.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이름인데
고향 마을회관 걸어서 오가시며 봐왔던 녀석인데
짖는 목청도 좋고 생기기도 잘 생겨 거금을 주고 사오셨다고...
지난 계절
밖에서 키워온꽃 좋았던 왼쪽 천사의나팔꽃
오른쪽은 잎사귀가 풍성했던 바나나 현관에서 월동중입니다.
어머니께서 '안먹어도 배부르다'는
가을 추수가 끝나고 도지쌀로 들어온 경기도 이천 쌀
그 옛날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쌀이지요.
찰지고 맛 구수하고
거실로 모셔온 화롯불
냉기가 돌던 거실이 온기로 가득하고
보리차 끓는 소리가 정겹게 들리고...
이 화롯불에 저녁 반찬으로 간고등어를 구어 주신답니다.
간고등어가
노릇노릇 익어갑니다.
입에 침이 고이는군요.
아버님도 군인이셨지요.
앞에 걸린 '리스'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동료 숲해설가 선생님 작품
몇일 뒤 아침나절
아버님은 서울로 출타하시고 책을 보고있는데
어머니께서
"점심은 장호원에 가서 소머리국밥을 먹자. 내가 사마!"
그냥 집에서 먹자고 했다가 어머니께서 재차 말씀하시니 따르기로...
일본의 유명한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
2차세계대전후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기 위하여 집필한 책
"대망(大望)" 600페이지 분량의 12권
지난 6개월 동안 씨름을 해오고 있는데 이제 마지막 12권을 읽고 있습니다.
일흔 두살의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마지막 천하평정
"내게 하는 좋은 말, 듣기 싫은 말, 모두가 하늘의 소리로 들린다."
새가 울지않으면 울때까지 기다린다는 '이에야스'
소설속에 많은 나무와 꽃들, 새들이 나오는데 다시 읽을 때에는 그 식생들을 정리해 보렵니다.
11시가 넘으니 벌써 나설 준비를 하시는 어머니, 용모 반듯하게 차려입으십니다.
저는 츄리닝에 잠바, 벙거지 모자
"그게 뭐냐? 제대로 입고 가야지~ 집에 있다고 티내는 것도 아니고... 모르겠다. 니 아라서 해라."
바지만 갈아입고
어머니를 모시고 모처럼 장호원으로 향하는데
"나도 오늘 오산 둘째 외삼촌집에 가려고 했는데 너무 추워서... 그나저나 쌀을 갔다 줘야하는데..."
"제가 모셔다 드릴께요. 외삼촌들 뵌지도 오래 됐고요."
"아버지가 버스까지만 실어다 주면 오산터미널에 외삼촌이 나와서 챙겨가면 된단다. 그래 그러면 내일이든 모레든 같이 가자."
농협에 들러 현금을 찾으신다기에
저는 통화하는 척
70대 후반 그 연세에 어떻게 찾으시나 유심히 뵈니
기기가 오작동을 하는지 궁시렁 궁시렁하시네요.
여직원이 나서서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버스카드를 충전하신다고 길을 건너시고
현금을 내면 100원을 더 낸다시며 국밥집에 먼저가서 음식을 시켜놓으랍니다.
뚝배기 진한 소머리 국밥에 잘게 썬 청양고추를 듬뿍 넣고
버얼건 다대기를 한 수저 넣어 휘휘 저어서 따끈한 국물을 떠마시면
얼큰한 맛에 속이 시원하고 가슴까지 따뜻해집니다.
추운 겨울철 시골 노인양반들 기력이 떨어지신 듯하면 장터 국밥집으로 가시지요.
장도 보며 눈요기도 하고, 이런 저런 소식들 들으려고 아버님 서울출타하신 어느날
점심시간에 맞추어 어머니와 장호원 국밥집으로 갔습니다.
추운 날씨인데도 장날이라고 차량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네요.
시장통의 조그만 식당, 깔끔하네요.
뒤따라오신 어머니, 식당 칭찬을 하십니다.
이천 신문에 맛난 집으로 소개되어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지난번에 버스타고 혼자오셔서 보신좀 하려했는데 손님이 많아서 두번을 공쳤다는군요.
그렇게 따뜻한 온돌마루에 앉아 음식을 시켜서 먹으려는데
장성골 이장 어머니께서 들어오셨습니다.
길건너 버스카드 충전하고 건너오시는 어머니를 보시고 뒤따라 오셨다고
어머니 보다는 두살 연배이신 분
"형님 이리 올라와서 같이 들어요."
"아니 뭘 먹으면 올라와서 병원에 가는 중이야~"
"그래도 국물이라도 드셔 형님!"
"아니 속에서 받지를 않아~"
그렇게 대여섯차례 권하고 사양하고
앉아 있으시기 그러신지 화장실을 물으시고 일어서십니다.
묵묵히 시뻘건 양념장에 청양고추 듬뿍넣고, 파넣고 땀흘리며 맛나게 먹었습니다.
외국인도 보이더군요.
먼저 먹고 차 대기시킨다며 먼저 일어섰습니다.
두분이 나오시네요.
모셔다 드리려했는데 앞질러 가십니다.
내려서 인사를 드리고 어머니와 함께 운전해 오는데
"글쎄! 화장실 갔다오며 계산을 했더구나. 나도 얻어 먹고는 못사는데..."
집으로 오는 길에
그 분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시네요.
그리고 방앗간앞에서 내리셔서 장성골 마을회관으로 마실가신다고
등산화끈 질끈 동여매고 장갑을 끼십니다.
절절끓는 마을회관
어떤 얘기로 이야기 꽃을 피우실지
오늘은 돈을 따오실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