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1.29.일. 횡성 자작나무숲)

숲해설가 원종호님의 '둑실마을 미술관 자작나무숲'/남자들의 로망 숲가꾸기

"자작나무 숲을 가꾸며 방황은 끝났다"

횡성=김우성 기자(2010. 08. 12)


농부 사진가… '횡성 토박이 원종호'
풀 베고, 사진 찍고…

하루하루 자작나무처럼 삽니다


원종호는 횡성 토박이다.

올해 쉰일곱 살이다.

강원도 횡성 우천면 두곡리에서 태어나 생의 대부분을 횡성에서 보냈다.

정주(定住)의 삶을 살았으되 그가 품은 삶의 폭은 넓다.

대체로 주변 사람들의 반대라는 역류(逆流)를 넘어 품은 것들이다.

예컨대 이런 것.

1977년, 아직은 횡성에 목장이 없던 시절, 그는 고향 야산을 목초지로 만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남양주 퇴계원에서 끝 간 데 없는 목초지가 날 매혹했다."

1991년 원종호는 그 목초지를 자작나무숲으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1만2000그루를, 한 그루씩 직접 심었다. 이유는 똑같다.

"백두산에서 본 자작나무가 날 매혹했다."

그리고 2010년.

원종호의 20년을 먹고 자란 자작나무는 숲을 이뤘고, 이젠 어엿한 이름으로 관객들을 맞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새말 IC를 나와 442번 지방도로 빠져들면 문득, 동화같은 이정표가 나온다.

'미술관 자작나무숲'. 매혹으로 삶을 일궈왔던 원종호의 '작품'이다.

원종호가 말했다.

"내 방황은 여기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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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자작나무는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빛은 태양처럼 웅장하지 않다.

가냘프고, 쓸쓸한 빛이다. 원종호는 그 빛에 반해 20년 가까이 자작나무 숲을 일궜다. / 게티이미지


자작나무

여름, 미술관 자작나무숲을 지배하는 색은 둘이다.

백(白)과 녹(綠). 자작나무의 하얀 기둥이 드넓은 녹음(綠陰)의 지붕을 지탱한다.

제1전시장과 카페가 있는 정원.

제2전시장이 자리 잡은 둔덕.

모두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원종호의 손길이 닿은 1만평 공간 곳곳이 자작나무다.

1991년 여기에 1만2000그루를 심었던 그다.

10년 새 절반가량이 죽었다.

20년간 틈틈이 자작나무를 더 심었다.

뺄셈과 덧셈의 결과 7000~8000주쯤이 살아 자란다.

1991년부터 2010년 지금까지, 원종호는 하얀 나무에 제 모든 시간과 공간을 바쳤다.

20년은 길어도 20년을 결정한 시간은 하루였다.

1990년 5월 초, 그는 백두산에 올랐다.

목적지는 천지였으나 시선은 길섶에서 멎었다.

주위가 온통 하얗다.

아직 잎을 내지 않은 자작나무가 끝 간데없이 펼쳐졌다.

"거기서 마음이 울렸다. 자작나무는 풍족하지 않다. 가냘픈 흰색이 애잔하고 쓸쓸했다.

그때 내 모든 여행이 멈췄다.

여행이란 지금 자기에게 없는 뭔가를 찾으려는, 일종의 방황이다.

자작나무를 보는 순간, '내가 저걸 보려고 이렇게 돌아다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내 방황은 거기서 끝났다."

이듬해 원종호는 묘목 1만2000주를 구했다.

2000주만 돈 주고 샀다.

나머지는 잘 자라지 못해 묘포장에서 폐기 처분될 뻔한 어린 나무였다.

고향 야산에서, 그는 일손을 사지 않고 한 그루씩 심었다.

그저 후배 몇몇이 도왔다.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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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자작나무숲 관장 원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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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호가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한 부곡계곡 / 원종호 作


사진

미술관 자작나무숲의 외양을 특징짓는 게 색(色)이라면 그 내면은 빛이다.

나무 향 짙은 제2전시장은 어둠 속 흔들리는 빛의 환영으로 환하다.

벽을 채운 대부분의 사진 속 풍경은 나무로 그린 쓸쓸함의 정경이다.

그 풍경은 자작나무를 닮았다.

모두 원종호의 작품이다.

미술관 자작나무숲 관장이기에 앞서 그는 사진가다.

1981년 니콘 카메라를 샀다.

등산을 좋아한 원종호는 카메라 든 주변 등산객들 어깨 너머로 사진을 배웠다.

한 번 '꽂히면' 웬만해선 놓지 않는 그다.

1983년 원주 치악산을 찍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주말마다 치악산으로 달려갔다.

뜨는 해의 비스듬한 광선을 위해, 눈 내린 차가운 풍경 속에서 잠을 청한 적이 셀 수 없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열 번 이상은 가야 했다.

처음 보자마자 찍은 사진은 사진이 아니다.

사진은 재현이되, 온전한 이해의 산물이다.

온전한 이해는 단 한 번의 방문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1991년 원주에서 치악산을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원주에 교환교수로 왔던 미국 버지니아 웨스턴 커뮤니티 대학교수와의 인연으로

1994년엔 미국 버지니아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사진가 원종호는 갤러리를 꿈꿨다.

자기 작품을 늘 걸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

1991년 고향 야산에 자작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그는 당연히 갤러리를 염두에 뒀다.

돈이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걸렸다.

1996년, 마침내 자작나무숲 한구석에 지금은 카페로 쓰는 집을 세웠다.

자기만의 갤러리를 갖기 위해서는 다시 8년을 기다려야 했다.

목장

사진가와 미술관장이기에 앞서, 그는 농부다.

땅에서 나온 소출로 다른 직업을 지탱했다.

시작은 1974년, 21살 때다.

서양화를 전공하는 대학 3학년 때 그는 남양주 퇴계원 인근 보급부대에 입대했다.

부대 주변은 온통 목장이었다.

푸른 목초지와 그 위를 한가로이 노니는 소가 그를 매혹했다.

1977년 제대한 그는 복학하지 않았다.

대신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에게 말했다.

"목장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원종호에게 선산을 내줬다.

지금 자작나무숲이 들어선 산이다.

젖소 두 마리를 밑천으로, 그는 한때 소를 60마리까지 키웠다.

1980년대 중반까지 목장을 운영하고 사료 대리점을 시작했다.

카메라 들고 치악산으로 떠나기 시작한 시점도 이 즈음이다.

1995년 완전히 그만두고 자작나무숲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사료를 팔아 모은 돈으로 사진과 자작나무숲에 드는 비용을 충당했다.

일을 때려치웠으니, 이번엔 갤러리를 지을 돈이 없었다.

1996년부터 8년간 그는 오로지 숲 가꾸기에 몰두했다.

"솔직히 돈 벌 대책이 없는 상태로 일을 그만뒀다.

일단 부딪쳐보자 하는 심정으로. 하지만 맘고생이 심했다."

2004년 운이 그를 찾았다.

선산 한가운데를 도로가 가로질렀다.

토지보상금으로 마침내 제1전시장을 세웠다.

어엿한 미술관이 됐으니 이름이 필요했다.

선배 사진가 이완교가 말했다.

"고민할 게 뭐 있나. 미술관 자작나무숲이라고 하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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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자작나무숲 카페의 전경과 내부 / 영상미디어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


미술관

2004년 문을 연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2008년 제2전시장을 추가했다.

그때 입장료를 2000원 받기 시작했으나 작년 4월, 원종호는 입장료를 대폭 올렸다. 성인 1만원.

"미친 짓인 거 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문을 타면서 사람이 몰려왔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다.

돗자리 펴 밥 먹고 쓰레기 그대로 버리는 사람, 화초 캐 가는 사람, 쓸데없이 훈수 두는 사람.

모두 쳐내야 했다."

일상은 풀을 베며 시작해 풀을 베며 끝난다.

낮엔 부인과 함께 번갈아가며 표를 팔거나 카페를 지킨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카메라 들고 주변을 탐색한다.

농부와 미술관장과 사진가의 삶이 이렇게 하나로 합쳐진다.

자연히, 이 하루의 여정은 이제 그에게 일생의 여정과 동의어다.

틀에 박히지 않은 부곡계곡

원종호에게 '횡성에서 가볼 만한 곳'을 묻자 한참을 망설였다.

병지방계곡을 언급하자, 고개를 저었다.

"거긴 행정기관에서 많이 훼손했다.

주차장 만들고, 둑 쌓는다고 다 버려놨다.

그전엔 참 좋았는데.

최소한의 편의시설만 해놓으면 될 것을…. 안타깝다."

대신 그는 부곡계곡(강림면 부곡리)을 추천했다.

치악산 향로봉(1043m) 정상 북쪽 곧은치에서 발원, 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 따라 8㎞쯤 뻗은 계곡이다.

원종호가 말했다. "틀에 박힌 관광지가 아니면서도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물 맑고 조용하다.

들어가는 길이 강변이라 드라이브하기도 좋다."

미술관 자작나무숲을 찾는 관람객 대다수는 붉은 벽돌이 단아한 풍수원 성당을 같이 찾는다.

(033-343-4597·서원면 유현2리 1097)

가볼 만한 식당으로는 횡성한우전문점 '삼정(033-342-3365·둔내면 자포리 409-11)'을 꼽았다.

고기를 비롯, 된장·고추·양파·마늘 등 횡성유기농조합법인이 생산·가공한 농산물만 사용한다.

봄엔 원종호가 채취한 자작나무 수액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꽃등심 180g 4만원.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우천면 두곡리 둑실마을에 있다.

새말나들목에서 횡성 방향으로 4㎞ 직진 후 둑실마을로 우회전해 2㎞쯤 가면 된다.

성인 1만원. (033)342-6833


출처: 조선닷컴



2011년 8월 5일 (금) 밤 11시 30분 EBS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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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bs.co.kr/tv/show?prodId=8993&lectId=3083670

위 주소를 클릭하시면 방송 다시보기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자작나무 숲에서 미술관을 만나다
방송 : 2011년 8월 5일 (금) 밤 11시 30분
PD : 노윤구
작가 : 한지연

강원도 산중에 자리 잡은 미술관, 미술관을 둘러싼 자작나무 숲.

이곳은 사진가 원종호 씨가 20년 넘게 가꾸어 온 숲 속 미술관이다.
그는 미술학도였다.
하지만, 군 복무 당시 근처 목장에 반해 학교를 그만두고 목장을 만들었고, 그의 첫 번째 직장은 목장이 됐다.

그 후 사료판매를 하는 상인으로 살아가던 중, 우연한 기회에 백두산에 오른다.
그곳에 있는 자작나무를 보고 매료되어 자작나무 묘목 2천 주를 사다 심기 시작한 것이 오늘의 숲이 됐고,
7년 전 이곳에 전시 갤러리를 지었다.

그는 자작나무에 반해 삶을 자작나무에 바쳤고,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을 찍는 사진가가 되었다.

아내는 평생 숲에만 관심 있는 남편이 여전히 못마땅하지만
얼마 전부터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미술관 내 카페에서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한다.
어느덧 나이 들어 여기저기 몸이 고장 나 아프기 시작하는 남편의 고집을 이해해주고 싶지만,

여전히 남편은 고집불통이다.

산 중턱 숲 속 갤러리는 이제 조금씩 이 지역을 지나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자신의 숲 속 미술관을 그저 관광지 정도로 생각하는 입장객들이 싫어 입장료를 대폭 올려버린 원종호 씨.

그런데 그러고 나니 오히려 미술관 작품을 더 오래도록 감상하고,
그 여운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가는 고마운 관람객이 늘어났다.

고집스럽게 나무를 가꾸며 자신의 길을 걷는 남자.
이제는 그의 문화공간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늘었고,

산중까지 찾아와 그곳에 작품을 걸고 싶다는 작가들도 생겼다.

숲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숲이 되는 곳, 이곳을 평생 사랑하는 그의 삶.

세상의 가치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좇아서 삶을 만들어가는 원종호 씨의 인생후반전을 만나보자



2017년 1월 29일 (일) 오전 10시, KBS 1TV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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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설 특별기획 3부작 <힐링다큐 나무야 나무야>
<< 시간이 멈춘 숲 - 횡성 자작나무숲>>

■ 방송일시 : 2017년 1월 29일 (일) 오전 10시, KBS 1TV
■ 출 연 : 배우 김미숙
■ 예 고 편 : http://www.youtube.com/watch?v=OrycURjno6E
■ 프로그램 소개
<힐링다큐 나무야 나무야>는 나무와 숲에 사는 생명들의 소박하고도 신비로운 생태와 숲의 색, 소리, 향기,
나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여배우들의 여정을 통해,

자연의 위로와 행복의 의미를 전달하는 특집 다큐멘터리

“자작자작… 자작나무장작 타는 소리의 비밀은?”

<힐링다큐 –나무야 나무야>
두 번째 편은 국민배우 김미숙과 함께 순백의 고독을 연상시키는 자작나무숲을 찾아간다.
강원도 횡성에 펼쳐진 아름다운 숲 뒤엔 25년 전,

백두산에서 우연히 마주친 자작나무들의 하얀 빛에 매료돼 운명처럼 숲을 일군 원종호 씨의 사연이 있다.

돈과 시간, 무한한 인내와 수고를 요하는 그 일에 강력하게 반대했던 아내를 설득해

오늘의 자작나무 숲을 완성하기까지,
한 사람의 일생을 오롯이 쏟아 부은 노고가, 자작나무숲을 찾은 배우 김미숙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숲지기의 철학대로 시계바늘이 없는 시계들 덕에 그 숲에선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느리게,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배우 김미숙은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으로부터 떠나와,
숲이 내어주는 것들을 재료삼아 모처럼 자연 속에서의 가장 호사스러운 하루를 경험했다.

그녀가 숲을 찾아간 날,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렸다.

“고구마 굽는 냄새도 위로가 되네요.
조금만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힐링이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왜 이렇게 여유가 없어졌을까요?”
- 배우 김미숙 인터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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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jsoup.com/(미술관 자작나무 숲)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Jean Gi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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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엘제아르 부피에)이 정성들여 심을 도토리를 세심하게 고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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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동안 10만개의 도토리를 심었고...

그 중 2만개가 싹이 텄으며...
그 2만개중 절반을 들뒤나 다람쥐가 갉아먹거나 우리가 알 수 없는 신의 뜻으로 잃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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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심은 참나무는 이제 열 살이 되어 나나 노인보다 키가 컸다...
가슴이 뭉클했다...
이 모든 것이 아무런 기술적 도움도 없이 오직 한 사람의 손과 영혼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만큼 유능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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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만으로 이 불모지에서 가나안이 솟아난 것을 돌이켜보면,
인간에게 주어진 힘이란 아무래도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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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혼으로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일생을 바친 고결한 실천...
반평생 나무를 심어온 엘제아르 부피에는 1947년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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