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2.2.목. 앉은부채)

초봄 언 땅을 뚫고 나오는 꽃잎도, 꽃술도 없는 꽃답지 않는 꽃/앉은부채

앉은 부채

김종제


곡괭이질 한 번도
결코 허락하지 않을
응달의 얼음땅을 뚫고
앉은 부채가 울컥 피었다


심장 같은 잎사귀가
동면에 든 벌판에게
사약 받아랏! 한다


양쪽 손 번갈아 부채 쥐면서
불 지피고 있는데
강철도 거부하는 동토를
꽃은 꿰뚫는다


그러므로 앉은 부채는
화염이다, 불꽃을 닮았다
노천에서 불타오르는 것은
꽃이다, 앉은 부채다


속에서부터 치밀고 올라오는
울화로 빙벽이 녹는다
씨가 열리고 알이 깨지고
불덩어리의 핵만 남아서
주검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다
억겁을 가르고 솟아나는 것이다


한 생을 꽃 피우기 위해
한참 흔들어야 할 부채 같아서
팔이 다 아프다, 뜨겁다

얼어붙은 목숨을 녹이고
그 빈 틈으로
꽃 불끈 일으켜 세우려
앉아서 나를 흔들고 있다


2011년 3월 18일 청주 낭성으로 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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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부채는 산속 응달 축축한 데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

이른 봄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데, 그 모양이 매우 특이

불상의 광배(光背)를 닮은 다갈색 불염포(佛焰苞, 꽃덮개)에 싸여 살이삭꽃차례(肉穗花序)를 이루고

벌나비가 날뜨지 않는 철이어서 악취로 파리를 불러들여 가루받이를 하며

잎은 그 뒤에 나와서 꽃을 덮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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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염포(佛焰苞, 꽃덮개)

육수화서(肉穗꽃차례)의 꽃을 싸고 있는 포

식물에서 “포”라는 것은 잎의 일종으로 식물의 꽃이나 눈을 보호하는 역할

불염포는 육수화서 식물의 꽃을 감싸고 있는 잎의 변형된 모양



설 지난지 몇일인데 입춘이 내일 모레

내린 눈이 아직 가득하고 바람 또한 매서워, 봄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른 듯하지만

그래도 긴 겨울에 끝이 보이는 것이지요.


오후 볕이 좋아

눈쌓인 들녁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산과 들의 눈 위를 스쳐 불어오는 바람은 그 냉기를 그대로 간직하여

바람에 맞서서 길을 걷자니 눈물이 날정도로 춥군요.


하물며

이 이른 봄

어느 곳에서는 그 춥고 단단한 땅을 뚫고 나오려는 생명이 있을 것입니다.

복수초, 노루귀, 앉은부채...


식물에게는 추운 것보다 매마른 것이 치명적이서

이른 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야생화들 대부분은

양지바른 곳보다는 음지에서 올라오지요.

그중에 꽃같지 않은 꽃, '앉은부채'

꽃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또 향기로워야 한다는 인간적 환상을 저버리는 꽃


오히려 향기보다는 악취에 가까운 냄새

어여뿐 꽃잎없는, 꽃술없는 꽃이라니...


그래도 꽃은 꽃

사람의 잣대로는 이해못하는 진정한 꽃

앉은부채입니다.


모든 꽃은

참으로 귀하게 대접받아야겠지요.

사람도 꽃이라면 꽃

귀한 꽃, 천한 꽃이 없을 것입니다.


더더욱 한겨울 음지에서

온몸으로 저항하며 두터운 땅을 뚫고 나오는 생명이라니

이는 경외의 대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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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부채꽃은 곤충들에게 따뜻한 아랫목

꽃속에서 난로를 피워서 꽃의 내부온도를 높여 벌레들을 불러모으며

꽃덮개 속에 있는 꽃대에 저장한 녹말을 분해해 산소호흡을 하는데

이 때 많은 열이 발생하고

부채꽃의 온도는 바깥 기온보다 적게는 3.1도, 많게는 14.7 더 높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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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부채의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동물은 곤충,거미,새를 포함해 모두 18종류

그 가운데 곤충이 15종

특히 파리류가 11종

이른 봄에 활동하는 곤충은 대부분 파리류(추위에 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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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들은 이 식물을 ‘곰풀’이라고 불렀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이 먹는 풀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곰이 굴에서 나왔을 때 파랗게 싹이 돋은 풀이라고는 애기앉은부채밖에 없으므로

곰이 동면 후에 처음으로 먹는 식물이 되었으리라.


일반적으로 수생식물에 비하여 육상 식물들에게 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은

저온 그리고 건조이다.


앉은부채는 외부의 온도가 영하로 심하게 낮아지면 물질대사를 통하여 체온을 상승시켜

영상 10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여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또한 해를 거듭하면서 뿌리를 깊게 내려서 심각한 건조환경에서도 지하수를 공급받을 수 있고,

점점 굵어져서 (뿌리의 굵기가 무려 30cm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충분한 양분을 비축할 수 있다.


지면엔 아직 잔설과 얼음이 남아있지만 기온이 높아지는 이른봄

앉은부채는 체온을 올려 꽃을 피우고 파리와 벌을 유인한다.


체외온도와 체온 사이에 과도한 온도차를 유지하려면 무모하다 할 정도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함에도 왜 앉은부채는 꼭 이른 봄에 꽃을 피울까?

앉은부채가 사는 습지는 여기저기 점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기온이 완연히 높아진 봄이면 주변에 여러 가지 꽃이피어

매개곤충이 멀리 떨어진 다른 습지로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른봄 다른 꽃이 피지 못했을때는 매개곤충이 옮겨 앉는 자리는

또 다른 앉은부채 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꽃가루받이의 효율은 매우 높아진다.


생물이 자신의 활동에 맞도록 최적의 온도범위로 체온을 유지하는 작용을

체온조절작용(thermoregulation)이라 하며,

체온유지를 위해 열을 발생하는 것을 열발생(thermogenesis)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포유류나 조류와 같은 발열동물에서 발견되는 현상이지만

흔치않게 식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앉은부채”이다.


앉은부채는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자기의 체온으로 쌓인 눈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우며

아무리 대기온도가 영하로 낮아져도 꽃 내부온도를 20℃안팎으로 일정하게 유지한다.

이 모든 것이 곤충을 유인하여 수정하기 위한 하나의 생존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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