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2.15.수. 단풍나무 이야기)

숲속 미인 단풍나무의 4계절 / 봉학골 산림욕장

한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데

저멀리 숲(산)을 바라봅니다.

많이 수척하고 헐거워진 모습으로

산등성이가 고슴도치 등처럼 보이는군요.

얼기설기한 둥근 참빗같기도 하고...


겨울과 봄사이 숲에 들어서면

나무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떨구고 내려 놓을 것이 없는

수형(樹形)이 오롯이 드러나 조금은 안스러운 모습이지만

나무는 본격적인 생명 활동을 시작하지요.


그 엄동설한 살을 에이는 삭풍도 이겨내고

안도를 해도 좋을 이때

봄을 기다리는 요즘이 더욱 매서운데

그래도 하늘을 떠받치듯 의연히 서있는 모습

잘 견디고 이겨 내어

그 옛날 저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선구자같기도 하고...


겨울나무는 인고의 시간만 보냈던 것이 아닙니다.

어김없이 닥아온 봄을 대비해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나무의 미래인 소중한 ‘겨울눈’

그 미래가 얼지않토록 모든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긴 겨울동안


뿌리는 뿌리대로

줄기는 줄기대로

가지는 가지대로

에너지 소모를 극히 제한하며 모든 열정을 ‘겨울눈’에 집중하였지요.

불필요하게 뻗어서 서로에게 장애가 되는 뿌리, 줄기, 가지는

스스로 영양공급을 차단하여 절단시키는 아픔을 감내하면서 까지...


겨울나무는 아니 봄 나무는

내삶만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풍성했던 가을

땅으로 내려보낸 여름날의 푸르른 결과물이 모든 숲의 요긴한 적금이 되고

온몸으로 갖가지 날짐승 들짐승 그리고 곤충과 버섯균사까지 받아들이는

아픔을 감내하며 놀라운 포용력과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쯤되면

나무는 더 이상 미물의 생명체라기보다

성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나무처럼 살고 싶다’고 했지요.

오롯이 베풀기만 하는 삶이니까요!


자!~

이제 봄입니다.

찬란함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어느해 단풍나무 이야기...

2258AD3A54F80B551C5323

3. 5

3월의 영하 8도

단풍나무 철늦은 가지치기로

수액이 흘러내리다 아침 추운 날씨에

고드름이 되었습니다.


2225253A54F80B592FDBFC

봄을 시새워하는 '꽃샘추위'로 인해

수액이 뚝뚝 덜어지다가

이렇게 고드름으로 맺혔습니다.


21638F3A54F80B5C18C271

봄날씨에

단풍나무 움을 티우려고

수액이 계속 솟구쳤던 것이지요.


땅속 어둠속에서 차가운 물기를 모아

위로 올리던 가냘픈 뿌리털의 노고를 생각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보이지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손길이 있지요.


2131A434569F33771CF47E

3. 12

아침 날씨는 아직 영하 5도

오후가 되니

고드름이 떨어지고

그 떨어진 곳에서 수액이 뿜어져 나옵니다.


26141E34569F33832A403E

겨우내

굶주리고

목말랐던

동고비가 흘러내리는 수액을 빨아 먹는다고

가까이 다가가도 개의치 않는군요.


240BA9455502824B1CB412

3. 13

꽃샘추위 막바지

새벽에 싸락눈이 내렸지요.

포근한 기온으로 송글송글 물방울로 흘러내립니다.


2702DC455502825323101B

물소리, 새소리로

숲속의 아침이 생동감으로 가득하지요.

역시 봄은 봄입니다.


2372AC39551E15EB21FEB8

4. 3

계절의 꽃, 4월

몇일전 봄비가 내려

계곡에 생기가 더 돌고

단풍나무 가지끝에도

물기운이 가득합니다.


236EB639551E15F824A681

단풍나무 가지끝에

몽글몽글 물방울이 맺쳐있어

더욱 싱그런 느낌인데

저 앞에

산수유는 벌써 노오란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2268E13A55403CD433CEFD

4. 29

봄비가 잦더니

보름만에

단풍나무에 새싹이 움터 나왔지요.


250A5D3A55403F420BEB61

모든 새 생명은

사랑스럽기에

존중받아야 합니다.

갸녀린 잎사이로

꽃을 피운 듯...


25487F3355515922116142

5. 21

또 보름여가 지나고

소나무 송앗가루도

다 날아가고

단풍나무는

잎이 손바닥만해지고

그 잎 사이 사이에

여린 씨앗이 맺혔습니다.


2777783D55BB0B4B12EB90

7. 31

많이 가물었었는데

천둥번개와 함께

5시간 가까이 시원한 비가 내려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계곡이 울울창창하며

강렬한 햇빛과

푹푹찌는 듯한 더위가

단풍잎을 더욱 실하게 살찌우고

나무들을 키웁니다.


2277734C55DD417F05C1E8

8. 26

이제

더위의 절정은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감도는데

단풍나무의 야무진 삶은 계속됩니다.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가고

열심히 살아온

단풍나무는

풍성한 자태를 자랑하지요.


213A0546569F26E31B4185

이렇게

실한 열매를 맺어가며...


2615A934560D7F151DEBA0

10. 1

그리고 한달여 후

이제 가을입니다.

말라가던 계곡도 물기가 돌아

주변의 단풍나무도

원기를 되찾으며

아름다운 붉은 단풍을 예고합니다.


JRmgMtC1kmfDzsR5qek_2Rfo3bY

10. 10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입니다.

아니

단풍나무의 계절

홍단풍의 자태가 곱군요.

가을비가 내리고 나서

저앞 은행나무

노오란 잎사귀 떨어짐이 현저합니다.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

아침나절

빛과 바람의 느낌이 다릅니다.

가을 바람인 '하늬바람'이 부니

숲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가을 바람은 소리가 있지요.

나무의 흔들림이 없다면 바람의 존재를 어떻게 알까요?

(하늬바람 : 서풍. 중국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가을바람(갈바람) 이라고도 함)


2213C334560D7F0F1D75B0

오후에

반가운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얼마나 가물었던지

단풍이 물들다 말고, 말라서 비틀어졌었지요.

애를 태우다 오는 비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요.

생기가 돋습니다.

반가운 비가 오니

마음마져 상큼한데

'가을비'...

많은 생각을 실어다 줍니다.



나무의 덕목...

덕목 하나. ‘배려와 겸손’...

한여름 가지를 뻗을 때도 주변에 다른 나무가 있나 없나를 보아...

없는 쪽으로 가지를 뻗습니다...

가을이 되면, 결실과 함께 ‘겨울을 준비하라’는 엄중함에 모든 것을...

내려 놓습니다...

그 내려놓은 것은 고스란히 숲으로 되돌아가 많은 생물들 삶의 밑거름이 되지요...


덕목 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찬란한 봄의 시적 영감으로...

한여름의 그늘로...

늦가을의 결실로...

한겨울의 땔감으로도...

그리고 잘라져버린 그루터기의 쉼터로...


덕목 셋. ‘주어진 현실에서의 충실한 삶’...

하늘이 내린 형벌(움직이지 못하는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산등성이 열악한 바위틈이든, 숨쉬기 곤란하고 뿌리뻗기 어려운...

도심가 아스팔트든, 어떤 여건에서도..

싹을 틔우고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아무말없이...


20131031_082632%5B1%5D.jpg

10. 12

아침나절이면
가을 안개가 자욱합니다.
'나니아 연대기'로 들어가는 기분이지요.


노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잎
은행잎이 속절없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단풍잎은 은행잎 지고 나면 떨어지고
봄부터 열정의 여름을 거쳐
얼마나 열심으로 살찌웠던 잎사귀인데
이렇게 쉽게 떨구는가요?
버리고 떠나야 할 때
붙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미련이요, 불행입니다.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라는 자연의 배려이다'


20131031_082748%5B1%5D.jpg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한적한 시간
간혹 새소리가 정적을 깨우고

물가의 싸늘해진 기온이
안개를 만들어 내니
눈섶에 물방울이 맺힙니다.


20131031_082844%5B1%5D.jpg

'지난 계절, 나무는 얼마나 컸을까요?'
봄에 가지에 살이 찌져지며 잎눈, 꽃눈 틔우던 그 아픔만큼
여름의 뜨거운 열기와 억센 비바람을 참아낸 그 인내만큼
꼭 그만큼 컸을 것입니다.

이제 말없이
새로운 봄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지요.


26214C3D569F29B1053457

10. 14

단풍나무 씨앗입니다.

씨앗 가장자리에

날개가 붙어 있는데

왼쪽은 청단풍 씨앗

오른쪽은 홍단풍 씨앗

씨앗대에 두개씩 붙어 자라다가

겨울이 되면

서로 떨어져

바람에 날아 가지요.

빙그르르 돌면서...


230ED5385620A68A2AF321

10. 16

역시
붉은 단풍
피를 뿌린듯
강렬합니다.


210905385620A68E2FDCC7

한여름
래방객이 붐볐던 계곡과 그늘집
철지난 지금
많이 한적하네요.

단풍나무는 여전한데...


230194385620A69236C1A4

이제

오후 햇살이

고맙기는 한데

너무 짧게 느껴집니다.


저 나무들의 잎사귀가...
모두 단풍들고...
어느 늦가을...
간다는 말없이...
모두 떨어져 내릴 때...
많이 슬프겠지요...


2318DB39562F1EFE24854F

10. 27

새벽부터

제법 많은 비가 왔습니다.

그 비에

단풍잎들이 하염없이

떨어져 내렸지요.


230E1839562F1F022CB989

그런데

그 단풍잎은

단풍나무 잎이 아닙니다.

오른쪽

느티나무 단풍이네요.

우리의 단풍나무 잎은

아직도 가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27235C34562F1F0912FD2D

그래도

분위기가

아련합니다.

화려함은 가고

추억만 남으려나요?


2204973E569F2AE41C5A12

11. 12

'할 말이 많지만 말하지 않을 뿐'...


물위에 떨어져

흘러가다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2661D13E569F2AF41E229C

홍단풍 씨앗

붉은 잎을 닮아

씨앗도 붉고


235BE43B564D177A0F90DB

11. 19

아침 기온 0도

아침 저녁으로 한기가 도는데

이 붉은 단풍은

비를 맞아 더욱 핏빛이구요.

처절한 전투를 끝낸 후

비까지 내리니...


240841395656A52040E6AB

11. 26

그렇게 단풍잎이 다 지고

첫눈이 내리던 날

찬란했던 삶을

위로하듯이

눈이 내렸습니다.


2445A0395656A524103B81

그래도

씨앗만큼은

잘 보듬고 있지요.


224FB5395656A52D0914AC

그 씨앗들은

좋은 때를 기다립니다.

쾌청하고

바람좋은 날을...


2475D63C565F93E025B9BD

12. 3

그런데

또 눈이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많은 눈이

씨앗달린 가지를 무겁게 하는군요.


2757AF33565F94462ED98C

불과 보름전

울긋불긋한 단풍이던 계곡이

흰눈으로 덮였습니다.


2365FD33565F945026DC8A

이 많은 단풍 씨앗들도

흰눈에 쌓여

어찌할 바를 모르네요.

'기다릴밖에요'...


230A2F44566120EC0727D6

12. 4

오후

햇살에

사람다니는 길

눈녹기 시작하고...


256EB344566120F41F0181

겨울 눈

나무들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합니다.

햇살이 있어...


2767B03E569F2B042BEB7C

12. 12

그 많던 눈

다 녹고

단풍나무

씨앗들의 건재함을 보여줍니다.


2507123E569F2B0E2DA656

곧 이별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둘이 붙어 있던 시간도

아쉬움으로 남겠지요.


2503183E569F2B28302C89

어미로 부터

멀리 날아가야 하는데

미련이 남아

엄마품에 앉겨 있습니다.

'미련과 집착은 불행'이지요.


다른 단풍나무 씨앗들은

바람에 날리고

물에 띄워져

멀리멀리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모험을 시작한 것이지요.

숲속의 전설처럼...



'이 새벽의 종달새' 블로그 http://blog.daum.net/hwangsh61

BAND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http://band.us/#!/band/61605448

매거진의 이전글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2.14.화. 솔방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