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 금강송면 쌍전1리 / 산골 감나무 이야기
감꽃
올해도 감꽃이 피었다.
감꽃은 새로 나온 감 이파리가 햇살하고 내통한 뒤 뱉어놓은 비밀스런 이야기 같다.
햇살에도 빛깔이 있을까?
누가 묻는다면 나는 감꽃을 주워들고 보여줄지 모른다.
왜 감꽃은 하나같이 꽃잎 끝부분이 살짝 접혀 있을까 생각해 본다.
마치 갓 태어난 병아리 연한 발가락이거나 부리 같아서,
어린 부리와 부리가 화창한 날 뽀뽀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서.
어린 날, 감나무 아래 서서 입을 벌리고 감꽃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떫고 시큼하고 약간은 달큼한 그 맛 때문이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도 아니다.
감꽃으로 목걸이나 팔찌를 만드는 일도 여러 차례 해봐서 지겨워질 때쯤이었을 것이다.
왠지 그렇게 감꽃이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추락하는 것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었지만 나는 한 번도 감꽃을 입으로 받지 못했다.
그때 내 입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햇살, 초록, 연노랑, 하늘, 새소리…
그래, 그것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아닐까?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까닭 없이 이루어져 세상의 소금이 되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감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 한 편. 단 넉 줄로 된 김준태 시인의 ‘감꽃’이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시는 역시 반성하기 좋은 양식이다.
먼 훗날에 과연 당신은 무엇을 셀 것인가?
안도현 시인
문밖에 나무 한 그루
황토방 펜션 앞에
제법 큰 감나무가 있습니다.
추위에 약하여
5월이 지난
열흘전 부터 꽃을 피웠지요.
감나무 아래 서서
저 작은 노란꽃을 올려다 보고 있으면
그리움이 밀려 옵니다.
그 그리움
이제
떨어져 내리네요.
아침 마다
밤사이 떨어진 감꽃을
주워 모읍니다.
두툼한 꽃잎
먹음직스러워
입안에 넣고
맛을 음미하지요.
'보랏빛 추억의 맛'
저 꽃을 실에 꼬여서
목에 걸고 놀다
하나씩 빼어 먹던
옛 기억이 있습니다.
주워 온 감꽃을
맑은 물에 잘 씻지요.
떨어진 꽃도
보기에 참 좋습니다.
탱글탱글한 느낌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이렇게 말리고 있습니다.
반 건조후
잘 덖어서
차로 다려 마실까 합니다.
내가 대하던
누군가가 천사였을지 모르는데
함부로 대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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