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4.17.일.함박꽃 storytelling)
먼 옛날
강원도 정선 고을에
최부자라는 덕망 높은 선비가
부인과 슬하에 어여쁜 외동딸과 살고 있었습니다.
이 고을 사람들은 최부자를 존경하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조언을 구하고 의지하였지요.
태평성대를 누리던 어느해,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
최부자 여식이 동네 처녀들과 하녀들을 대동하고
조양강가로 빨래를 하러 나왔습니다.
빨래하고 있는데 못보던 무리가 상류에서 강을 건너고 있었지요.
돌이 많은 얕은 강물을 건너던 말이 뒤뚱거려
타고 있던 건장한 귀공자가 휘청하며 신발이 벗겨져 떠내려 왔습니다.
최부자 여식이 신발을 건져 올려 들고가 귀공자에게 건냈지요.
"고맙소! 낭자! 최부자집을 찾아가는 길인데 어느쪽으로 가야하는지요?"
"저 앞 뚝방위 커다란 목련나무 쪽으로 가시면 되옵니다."
"감사하오! 인연있으면 또 뵙지요!"
그날 저녁
최부자집은 귀한 손님을 대접한다고 여념이 없었고
얼마후 사랑채에서 건너오라는 기별이 왔습니다.
"제 여식입니다. 인사여쭙거라! 가리왕산에서 오신 회동왕자님이시다."
"인사여쭙습니다. 정선이라하옵니다."
" 우리 구면이지요. 정선아씨! "
회동왕자가 다녀간후
최부자의 안색은 어두워졌고 긴 한숨쉬는 일이 잦아졌지요.
북쪽에서 피난와 가리왕산에 은거중인 갈왕으로 부터 전갈인즉
'정선 고을과 인근 고을 수령들이 가리왕산으로 와서 복속의 의미로 문안드리라'는 것
예로부터 정선 고을은
누구에게 지배받거나 의탁해온 적이 없는 민심이 올곧고 강직한 고장이었습니다.
문안드리라는 시한을 넘기자
파발마가 다녀갔지요.
'볼모로 여식을 데릴러 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정선 아씨에게
"집 안채에 목련이 하얀꽃을 흐드러지게 피웠더구나.
목련꽃은 무엇에도 때묻지 않고 위를 향해 꼿꼿이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단다.
너는 이 고을의 꽃이며 잎사귀는 너를 아끼고 사랑했던 민초들이라 할 수 있지.
사랑받았던 정선 고을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토록 의연하게 행동하거라!"
어머니께서 작은 목련나무 한그루를 하녀에게 건네주시며
"이 어미 생각나거든 이 목련나무를 나 보듯하고 다음해 봄을 기약하자구나!"
목련나무는 양지바른 곳에 심겨졌고
그렇게 깊은 산중 궁궐에서의 볼모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회동왕자와의 자연스런 만남으로 서로의 신뢰와 정분이 싹텄고 혼례 이야기까지 오갔지요.
한편 지속되는 갈왕의 복속 강요에도 정선 고을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이듬해 봄
정선 고을이 갈왕에게 복속할 뜻이 없음을 간파한 갈왕은
회동왕자 혼례를 이용, 북쪽 인근 다른 호족과의 결속을 도모하며
정선 고을과의 전쟁을 준비하였지요.
회동왕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혼례가 치러지니 정선 아씨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정선 아씨는 마음을 달래려 어머니께서 주신 목련나무를 찾았는데
목련꽃과는 다르게 잎이 완연하게 다 나오고 차례차례로 꽃을 피우고 있었지요.
'참 기이하구나! 자라는 환경이 바뀌니 살아가는 방식도 바뀌는 듯하구나.'
정선 아씨는 그 목련나무가 무슨 계시를 주는 듯하여 매일 찾곤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되새겼지요.
'너는 이 고을의 꽃이며 잎사귀는 너를 아끼고 사랑했던 민초들이라 할 수 있단다.'
그리고
가리왕산에 심겨진 목련나무가 마을에서와는 다르게 잎이 먼저 나오는 것은
'태평성대에는 꽃이 중심으로 존중받고 사랑받았으나
위태로운 시기에는 잎사귀인 민초들이 중심이고
평시 존중받았던 꽃이 무엇인가을 해야한다'는 깨닭음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지금껏 우울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결연한 마음이 자리했지요.
정선 아씨는 아버지 최부자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아버님! 소녀를 정선의 딸로 기품있게 키워주셨지요.
이제 소녀가 사랑받았던 정선 고을을 위해 할 일이 있을 듯합니다.
부디 소녀의 안위를 걱정마시고 정선 고을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다음날
정선 아씨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지요.
정선 아씨의 의기에 힘입어
정선 고을의 자존심을 회복한 마을 사람들은
정선 아씨를 갈왕산 그 목련나무 곁에 묻어 주었으며
그 이후로 그 목련나무를 살아 생전, 정선 아씨의 청초하고 화사한 웃음을 기억하기 위해
'함박꽃나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