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4.9.토. 사마귀 storytelling)
가을 초입 양지바른 곳
낮게 날고 있는 고추잠자리들의 멋스런 비행 그림자가 수를 놓고 있는 마당에
그 그림자에 얼 비치는 생명체
근 1시간여 꼼짝 않고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른 검지 손가락만한 길쭉한 몸통에 앞다리가 기다랗고 예리한 갈고리같이 생겨
위협적인 모습에, 머리는 상대적으로 작고 세모 모양인 사마귀지요.
빛깔은 연두색에서 가을빛을 따라 갈색으로 바뀌어 가고...
어지러운 고추잠자리의 비행에도 아무런 움직임없이
그렇게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폼나게 비행하던 고추잠자리들이 하나 둘 지쳐서 땅으로 내려 앉고 있네요.
여전히 사마귀는 온몸을 '얼음'하고 가만히 있는데 옆으로 황망히 내려앉는 고추잠자리 한 마리
그래도 움직이지 않던 사마귀, 고추잠자리가 여유로움울 찾을 즈음, 살며시 접근하더니
날카로운 앞다리를 순식간에 펼쳐서 고추잠자리를 낚아 챕니다.
그 번개같은 행동에 다른 잠자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쉬고 있군요.
한참을 고추잠자리를 움켜쥔 채로 있다가 서서히 울타리 가로 다가가 굼주린 배를 채웁니다.
이 암컷 사마귀는 알을 품어 많이 먹어야 하지요.
알들에게 풍족한 영양 공급을 위하여...
아직도 배가 고픈 사마귀, 다시 볕으로 나옵니다.
현란한 고추잠자리의 비행 아래서 한나절 사마귀의 사냥은 그렇게 길게 이어졌지요.
보름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도는 어느날
암컷 사마귀는 더 불러진 배를 힘겹게 끌고서 커다란 나무 밑동을 오르더니 혼신의 힘을 다하여 거품과 같은 알을 낳기 시작합니다.
그 하얀 거품은 곧 야무지게 굳어 졌는데
이것이 알들이 혹독한 겨울을 나게 하려는 어미 사마귀의 거품 이글루인 것이지요.
알을 다 낳고 기진맥진해진 어미 사마귀는 홀쭉해진 배를 하고
나무 밑동을 내려와 다른 나무를 오르기 시작합니다.
천적으로 부터 알들을 보호하려는 어미의 배려인 것이지요.
그렇게 힘겹게 오르는데 지난밤 비바람에 시달린 메뚜기와 잠자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마귀를 보게 되자 깜짝 놀란 메뚜기는 슬며시 도망칠 궁리를 하고
뒤늦게 사마귀를 발견한 날개가 젖은 힘없는 잠자리는 그곳을 벗어나려 해도
아직 날 궂은 날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지요.
'에고~ 잡아 먹으려면 잡아 먹으시요!~ 힘들어서 날지 못하겠네요'하는
마음으로...
사마귀가 잠자리 옆을 그냥 지나쳐 가니 모두가 놀랍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갔지요.
아침나절 선선하고 습한 바람이 목백합나무의 얼마남지 않은 잎사귀를 마구 흔들어 댑니다.
그 바람에 나풀나풀 떨어지던 커다란 낙엽이 가냘픈 잠자리 머리 위로
떨어지려는 순간,
위쪽에 있던 사마귀가 떨어지는 낙엽쪽으로 뛰어 내리면서 낙엽을 앉고 아래로 떨어졌지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로 당사자인 잠자리도 그리고 지켜보던 메뚜기도 많이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떨어진 사마귀가 허리를 다친 듯 아파하며 위를 보고 말을 합니다.
"여보게~ 잠자리군! 내가 알을 배었을 때 자네 동료들을 많이도 잡아먹었지.
이제 알을 낳고 나니 홀가분 하고 마음도 비워지니 자네 동료들이 생각나네 그려~"
한참을 낙엽위에 누워서 몸을 추스리던 사마귀는 다시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지요.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땅에서
죽음을 맞이 할 수 없다고...
한참을 힘겹게 오르다 보니 잠자리 옆을 또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잠자리도 경계하는 눈빛도 아니고 감사하고 안타까워하는 눈빛으로 변하여
사마귀를 응원합니다.
"사마귀님! 감사합니다. 저를 보호해 주셔서..."
"별말씀 다 하시네~ 이 아름다운 계절 잘 만끽하시고 평강하시게~"
그리고
메뚜기도 잠자리도 모두 날아간 몇일 뒤
음푹파인 목백합나무 껍질사이에서 사마귀는 죽음을 맞이 하였습니다.
누구하나 사마귀의 죽음을 애도하는 생명체는 없었고
숲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늦가을 맞이를 계속하고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