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주인공, 칡의 변론(옹달샘 숲 이야기)

무법자 칡의 변론 storytelling /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episode

경기도 이천시 율면 오성리 / 600여년 수령의 은행나무 / 할아버지께서도 이 나무를 우러러 보셨겠지요


나의 할아버지는

젊어서 시골 사랑채를 지으시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평생을 다리 절룩거리며 사셨습니다.


심성이 강직하시고 부지런하셔서

그 많은 전답 할머니와 단 두분이 지으셨고

쌀한톨, 콩한개를 귀히 여기시며

곡식중 씨앗으로 사용하려던 묵은 씨앗중 파종하고 남은 것으로

먹거리를 충당하시고

논두렁 밭두렁 가지런하게 관리하시며

소, 돼지, 닭들 잘 건사하시어

'농사 군자' 소리를 들으셨지요.


억척같으신 할아버지께서도

그 당시 어렵게 사는 장돌뱅이, 상의용사, 거렁뱅이들이 오면

아끼지 않고 적선하시며 잠자리까지 베푸셨습니다.

"없는 사람들 괄시하면 벌받는다. 내줄 것 갔으면 풍족하게 내어줘라!"


그 엄하시던 할아버지

늙으셔서 힘에 부쳐

피같은 전답 남에게 내주고

서울 큰아들집에 올라오셔서

더 외소해지셔 적적하고 답답함에

늘 시골 풍광 그리시다 돌아가셨지요.


제가 나이가 드니

이제 안계신 분들이 많이 그립습니다.



storytelling


키가 작거나 크거나 상관없이 감고 올라가 뒤덮어 버리는 칡


지난해 홍수로 생긴 절개지, 맨흙이 들어난 곳에

숲속의 정령님이 보내신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칡의 작은 씨앗이었지요.


영양분도 없는 황토 흙에서 용케도 칡의 씨앗이 발아하여

잎과 줄기를 뻗어나가 짧은 기간에 흉한 절개지를 덮어 나갔습니다.

어느덧 황토흙은 초록의 칡잎으로 뒤덮였고

덕분에 많은 비에도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아 더 이상 붕괴위험이 없었졌지요.


더불어

땅속에 질소성분을 고정하여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그 후로 더 많은 식물들이 자라갈 터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몇해가 지나며 칡의 번식은 무서운 속도를 더해

주변의 커다란 나무들을 타고 감아 올라가 그 나무들을 옥죄며 생명을 위협하게 되었지요.

"여보게! 자네들의 칡덩굴이 나를 너무 옥죄니 내 살기가 힘드네!"

"그렇군요! 제가 눈치없이 자람만 앞세우다 보니 참나무님을 어렵게 했나봅니다."


그러나

본성은 어찌할 수 없어

그해에 커다란 참나무는 뿌리로 부터 물과 영양공급이 제대로 되지않아 고사하고 말았지요.

참나무가 고사하니 칡덩굴도 말라서 떨어져 내렸고

칡은 원뿌리에서 싹을 내어 땅을 기어가며 숲을 덮어 나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숲의 많은 나무들이 칡덩굴로 인해 죽어갔고

숲의 빈 곳은 칡이 점령하여 칡의 왕국이 되었지요.

한편 숲에서 칡이 번성할수록 그 원성은 더해만 갔습니다.

"대단한 위세일세! 주변 생물에 대한 배려심을 가져줬으면 싶네."


여러해가 지나고

칡이 점령해 버린 숲

본성에 충실하게 살아, 칡의 제국을 이뤘지만

외톨이로 남겨진 칡은 행복하지 않았지요.


20230717_072902_HDR.jpg 매혹적인 향기와 꽃잎을 자랑하는 칡꽃


그해 가을

낙옆 떨어진 숲

땅속의 칡뿌리는 지금까지 모아 축적한 많은 양분들을

주변의 영양상태가 부실하여 고사해가는 나무며 식물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습니다.


양분을 분배하는데 도움을 준 것은

땅속 칡의 작은 뿌리에 공생하는 균사들로

다른 식물들의 균사들과 네크워크를 형성하여

칡의 양분을 분배했던 것이지요.


다음해 봄

칡의 영양분을 골고루 나눠받은 나무며 식물들이

싹을 돋아 자나나서 다시 푸르른 숲을 가꿔나갔던 것입니다.


칡은

주변의 다른 나무며 식물들이 죽어가면

숲의 미세기후가 변하여

생육조건이 바뀌고

결국 칡도 숲에서 살아가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숲속의 정령님이 깨우쳐 주었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