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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 숲해설가 황승현 Mar 28. 2024

벼랑위 동강할미꽃과 씨앗들의 비상(옹달샘 숲 이야기)

더 나은 삶을 찿아 나섰지만 / storytelling

episode(여러해전 이야기)


고향에는 봄꽃이 한창인데(4.11.수) / 경기도 이천시 율면 고당리



멀리 떠나가 있는 아들에게

전화 하셔서 '언제 오냐?'시던

60 가까워 오는 아들 걱정하시는

올해 여든이신 어머니


전화 잘 안하시던 어머니

무슨 일 있으신가 싶어 마음 쓰이다가

쉬는 날 시골 고향집을 찾았습니다.


요몇일

꽃샘 추위에

거센 바람에

주눅 들었던 꽃들이 피어나

꽃대궐을 이루고 있었지요.


매화,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 할미꽃, 제비꽃

화창한 봄날, 황홀경을 연출합니다.

이 꽃들 보라고

오라고 하셨던 것인듯


지난해 가을에 수확한 배

겨우내 아껴드시던 그 배

마지막 남을 실한 녀석을 깍아 내시는 어머니

어머니의 모든 것은 맛나고 좋군요.




점심은 장호원 소머리 국밥으로 나가서 먹자는 어머니

경로당 가 계신 아버님께 전화드리쏜살같이 들어 오셨습니다.


부모님 모시꽃피는 봄날 외출

좋아라 하시는 부모님을 뵈저도 모처럼 즐거웠지요.


얼큰한 소머리 국밥에 반주로 막걸리 드시는 아버님

취기가 오르시니 말씀을 두런 두런 하십니다.

'늙으니 기력이 없구나!'

'늙으면 다 그런 거요!'라는 어머니


땀흘려 맛나게 먹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 걱정은 말고 너희들이나 잘 살거라!'시는 아버님


집은 꽃대화사한 봄날이데

'내 부모님의 봄날은 다시 올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가 아는 할미꽃은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지요




지난해 초가을 돌아가신 내 아버님! 저 꽃들 보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20여년 가꿔오신 넓은 전원주택, 연로하시니 관리하시기 힘겨우시다고 고향동네 작은집으로 이사하셨지요


수천송이 목련 꽃몽우리가 일제히 개화를 시작하눈이 부시군요


꽃샘 추위에 강풍꽃피우지 못하고 떨어목련 꽃몽우리

안타까워 하나하나 주워 모았습니다





storytelling



강원도 정선

조양강을 거쳐 흘러 온 물줄기가 동강으로 접어드는 절벽에

한겨울 엄동설한 죽은 듯 지내던 시든 줄기속에서

새로운 움이 트더니 따뜻한 3월 하순

저 아래 물길을 내려다 보듯 피어나는 동강할미꽃

여느 할미꽃과 다르게 꽃몽우리를 곶추세우고 척박한 환경에서 의연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인상깊은 꽃이 지고 씨앗들이 열물어 가더니

할머니의 산발한 머리처럼 생긴 기털달린 씨앗들이 비상할 준비를 하네요.




바람좋은 5월 초 어느날

따뜻한 바람을 타고 날아가기 시작합니다.

떠나가는 자식들에게 당부하는 엄마의 말

"살기 좋은 비옥한 곳보다 의미있는 곳에 안착하여 너만의 꽃을 피우거라!"


많은 씨앗들이 엄마의 품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이 싫어

엄마 할미꽃 주변의 절벽에 내려앉아 자기만의 삶을 시작했지요.


그런데

씨앗 하나가 바람에 높이 솟구치더니 멀리멀리 날아

물길 건너 양지바른 묘자리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나는 까까지른 절벽 바위보다는 부드러운 잔디가 있는 평평하고 따뜻한 이곳이 좋아!"

씨앗은 자신의 탁한 선택에 만족하며 부드러운 흙속으로 파고들어 내년을 기약했지요.



이듬해 봄

온기가 전하는 신호에 이끌려 씨앗은 작은 싹을 틔워냈습니다.

"바로 이런 따뜻하고 온화한 기운이 그리웠어!"

엄마 할미꽃이 살고 있는 환경에 비하면 이곳은 너무도 아늑하고 좋았지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변의 잔디들이 웃자라기 시작하여

경쟁하듯 우리의 작은 할미꽃도 잎사귀를 키워나갔는데

어느날 산소 벌초로 잔디를 깍는다고 예초기 소리가 진동하더니

힘겹게 키워낸 잎사귀를 싹뚝 잘라내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무서운 경험이었고 그 충격으로 여러날 어린 할미꽃을 우울하게 했지요.



그리고 여러날이 지나고

바람없는 어느 이른 아침

냄새가 고약한 약통을 짊어진 아저씨가 오더니

제초제를 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숨통이 멎어 질식할 것 같지만

동강 벼랑에서 살아온 엄마 할미꽃의 힘찬 정기를 받은 어린 할미꽃은

혼미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려 노력했지요.

"여기서 주저 앉으면 안돼! 아직 꽃도 못피웠는데!"


험난한 한해를 보내고

다음해 봄

어렵게 살아남은 어린 할미꽃은

온힘을 다하여 작은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동강의 할미꽃과 다르게 겸손함을 잊지않겠다며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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