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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 숲해설가 황승현 Apr 26. 2024

나무들도 서로 소통하는가?(옹달샘 숲 이야기)

소나무와 참나무를 이어주는 숲속의 요정, 버섯 storytelling

episode


비온 다음날 이른 아침

휴대폰 기상예보를 보니 새벽에 비가 그쳤다고는 하는데

질척거리는 숲을 오르느니 '핑게삼아 잠을 더 잘까'

아니면 숲의 새로운 풍광을 찾아보며 '나와의 루틴 약속을 지킬까'

주저주저하다

숲속의 상큼함을 만끽하려 아파트 현관을 나서 뒷산 약수터로 향하려는데

제법 굵은 빗줄기가 떨어짐에 또 갈등하였으나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촉촉한 빗줄기는 잠이 덜깬 눈에 생기를 돌게 했고

경사면을 오르며 허벅지가 뻐근했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힘들었지만

쉬엄쉬엄 오르며 경쾌한 새소리, 그리고 빗소리에 정신을 가다듬었지요.


흙에 비와 함께 버무려진 신선한 초록들의 냄새, 그 먼 기억속의 상큼한 새벽 숲 향기

연초록이  퍼져가며 깊이를 더 해가는 숲에서

충만한 생명력에 덩달아 생기가 솟구칩니다.


아침 안개가 걷히며 아침 길이 열리지요
이 아름다운 길을 고개들고 천천히 걷습니다
얼굴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며 그 빗방울을 맞네요
메마른 가슴과 목마름을 달래줄 시원한 약수 한모금, 이 물을 받아다 차를 다려 마시지요
이 비에 벚꽃지고 영산홍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storytelling


우리에게 친근한 소나무와 참나무

소나무는 소나무의 생각을 했고

참나무는 참나무의 생각을 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없어 헐벗었던  이 곳에 작은 솔씨가 날아와 솔숲을 이루기까지

많은 세월 때로는 뜨거운 햇볕을 견뎌내야 했고  폭풍우 치는 날이면 거센 바람과 폭포수 같은 거대한 물줄기를 감내하고

추운 겨울 가냘픈 가지로 북풍한설에 맞서야 했지요.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라는 듯,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긴 시간이 지나고 푸르름으로 가득찬 숲으로 거듭나니 지난 험난했던 과거가 모두 이해가 됩니다.

이 풍요로운 솔숲에 만족하며 오래오래 솔숲으로 남아 사랑받기를 기원했지요


그러던 어느 가을

다람쥐가 물고 온 도토리가 솔숲 왔을 때만 해도 우람한 소나무들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솔숲이 조금은 건조하여 해마다 봄이면 산불 위험성이 있는 것 말고는 소나무들끼리의 삶이 만족스러웠지요.

도토리는 얕은 흙에 덮여 겨울을 지내고 봄이 왔을 때 여린 뿌리를 내어 숲의 흙을 조심스럽게 파고 들었습니다.


어린 참나무인 신갈나무는 인내심이 강한 나무이지요.

한참 자라야 할 어린 나무에게는 따사로운 햇살과 흙속의 영양분이 유아에게 엄마의 젖마냥 긴요합니다.

우람한 소나무 숲의 그늘에서 신갈나무는 자람이 더디었지만 먼 미래를 생각하며 엄마 나무의 말을 기억했지요.

"빨리 웃자라는 것은 짧는 생각이란다. 여건이 힘들지라도 천천히 매우 천천히 자라야 목질이 촘촘하여 병충해가 침투 못하는 단단하고 야무진 나무로 커갈 수 있단다."


그렇게 많은 세월 커다란 소나무들이 내려다 보는 가운데 신갈나무는 천년을 살아갈 기반을 다졌던 것입니다.

고마웠던 것은 바로 옆의 소나무가 어린 신갈나무가 물과 영양분이 부족할 때면 뿌리와 합성된 버섯 균사를 통해 전달해주었지요.

"힘내거라! 이곳이 비록 솔숲이지만 누구도 주인이 아니니 너의 꿈을 응원하마!"

그리고 버섯 균사가 말을 이었습니다.

"신갈나무님! 소나무님께서 전달하는 양분이며 물 요긴하게 이용하시고 쑥쑥 자라세요. 저 버섯 균사가 통로 역할을 하겠습니다."

"모두들 감사드려요."


열흘후 풍성한 숲과 바람, 그리고 청명한 새소리(밀화부리)


신갈나무는 버섯 균사가 물과 영양물질은 물론 소나무와 신갈나무간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며

숲의 번성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만 안다는 것이 안타까웠지요.


여하튼

많은 세월 소나무와 버섯 균사의 도움으로 어린 신갈나무는 우람하게 자라올라 옆의 소나무보다 더 크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 넓은 활엽 잎으로 주변의 햇볕을 모두어 광합성하며 더욱 튼실하게 자랐는데

신갈나무가 생기를 더해갈 수록 옆의 소나무들이 기력을 잃어가는 것이었지요.

버섯 균사가 전해오는 말

"햇별을 좋아하는 소나무들이 햇볕을 온전히 받지 못하니 기운이 없는 듯하군요."

그래서 신갈나무는 지난날 소나무에게서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땅속 뿌리와 균사를 통해 소나무에게 영양분을 옮겨주며 말했습니다.

"죄송하네요. 저로 인해 햇볕을 잃어버리셔서..."

"아닐세! 영원한 것은 없지! 이제 우리 소나무들이 자리를 내어주고 북쪽으로 가야할 것같네.

부디 풍요로운 숲으로 가꿔가시게!"


수십여년의 세월이 지나

단순했던 소나무 숲에서 울울창창한 다양한 나무들과 여기에 기대어 사는 많은 생명체들로

깊이 있고 생기 넘치는 멋진 생명의 숲으로 거듭났지요.

그리고 이 거대한 숲의 엄마나무(mather-tree)가 된 우람한 신갈나무는

앞서 살다간 소나무들이 숲의 바탕을 잘 가꿔온 덕분이라 생각하고

헐벗고 굶주린 생명이 없는지 살피며 누구나가 칭송하는 아름다운 숲으로 가꿔갔던 것입니다.


그리하

왜 버섯을 '숲속의 요정'이라 하는지를 이 아름다운 숲이 말없이 가르쳐 주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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