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나라에 끌려간 소녀, 그 소녀의 혼령이 깃든 모감주나무 열매
숲과 들판이 어우러진 아일랜드 시골 마을에서 나무와 교감하며 자라고,
나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가 됐으며,
나무를 보살피고 숲과 지구를 되살리는 일에 팔십 평생을 바쳐온
세계적인 여성 식물학자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의 『세계숲』
『세계숲』은 베리스퍼드-크로거가 평생에 걸쳐 쌓아온 숲과 나무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고대 인류의 생태적 지혜를 시적 산문으로 엮어서 자신이 자란 아일랜드의 풍경처럼
때로는 장엄하게 때로는 아기자기하게 펼쳐낸다.
이 책의 제목 ‘세계숲’은
세계의 중심이자 세상을 떠받치는 신화적 나무를 뜻하는 ‘세계수(世界樹)’에 빗댄 것이다.
숲마다 어머니 나무가 있듯 지구에는 세계숲 또는 세계정원이 있어서 뭇 생명을 보듬는다.
'시인의 언어로 말하는 과학자' 베리스퍼드-크로거는
과학적 엄밀성을 탄탄한 기초로 삼되
그 위에 북아메리카 토착민의 예언적 통찰이나 고대 켈트 전통을 자연스럽게 배치한다.
그가 보기에 나무가 살아가는 세계는 발견과 탐구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신의 보이지 않는 손길과 태초의 생명의 비밀을 품고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나무는 숨쉬고 소통하고 번식한다.
나무는 보금자리와 은신처를 제공하고 약과 음식이 된다.
나무는 인간의 면역 체계를 강화하고 정신 건강을 개선하는 유익한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나무는 육지와 바다 모두에서 무너진 생태 균형을 바로잡아주고 각종 오염물질로 더렵혀져 있는 인간의 몸을 정화한다.
저자는 고대부터 붉은색과 초록색이 성스러운 것과 인간 삶을 상징해온 이유를 인간의 혈색소와 나무의 엽록소에서 찾는다.
이 둘은 색깔의 유사성뿐 아니라 말랑말랑한 주머니 안에 비슷한 모양으로 들어 있고
비슷한 원리를 통해서 각각 산소를 운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치 신이 계획한 것처럼 이 두 쌍둥이 자매 분자는 양자 보금자리에서 손을 맞잡고서 지구 전체를 위해 생명을 빚어낸다.” 인간은 나무를 나무는 인간을 무척 닮았다.
나무와 식물은 심지어 따뜻한 피를 가진 포유류처럼 주변의 식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태양에 의한 흑체 효과는 나무의 대사 활동을 증진시킨다.
나무의 발열은 뿌리와 줄기를 감싸고 있는 야생화를 깨어나게 하고
수정을 돕는 곤충의 분주함이 더해져 봄의 생장에 시동을 건다.
어머니 나무와 같은 성숙한 개체에서 이런 ‘따뜻한 피 행동’을 더욱 자주 볼 수 있다.
나무는 초저음으로 소통한다.
소나무의 소리는 날카롭고 붉은참나무의 소리는 둥글둥글하다.
어떤 사람들은 숲이 벌목될 때 목이 졸리거나 심지어 질식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저자는 말한다. “생명의 목소리는 초록색이다.”
생태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 오늘날 “나무는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인데도 뒷전으로 밀려나” 있으며,
그 결과 생명의 목소리는 초록색에서 잿빛으로 시들어가고 있다.
“지구는 생명의 망토를 걸쳤다. 망토가 지구의 어깨에서 내려오고 있다.
끌어내려진다.
이 벌거벗음은 마지막 단계인 죽음을, 모든 죽음을 가져올 것이다.
그 뒤에는 영원한 침묵이 이어질 것이다."
『세계숲』은 ‘세계를 품은 전체이면서 세계를 초월하는 하나’인 숲의 재생만이
우리의 부서진 삶을 회복시키고 서로를 건강하게 연결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소박한 삶,
지속 가능한 사고,
이 문제에 대해 모두가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전한 상식(저자는 이를 소박함[simplicity],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온전한 정신[sanity]으로 정의한다) 속에서 가능하다.
나무와 숲이 계속 존재하고 지금보다 더욱 풍성해진다면 우리는 내일의 삶에 대해 희망을 가져도 된다.
《뉴 사이언티스트》는 『세계숲』에 대한 서평에서 이렇게 썼다.
“오늘 아침 일터로 걸어가면서 새로운 존경심과 경외심으로 나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말을 꼭 해야겠다.
이 책의 임무가 완수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처럼 『세계숲』은 그간 우리가 몰랐던 나무에 대한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문장 속에 담아냄으로써
숲과 나무의 위대함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나무가 행성 지구에 아낌없이 선사하는 먹여 살림과 치유, 돌봄과 연결,
그리고 뭇 생명의 평안이 모든 페이지마다에 ‘숲의 경전’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우리는 옛 방식의 끝, 새 방식의 처음에 있다.
새로운 날의 새벽에 나무들이 다시 미소 지으며 산소를 내뱉을 것이다.”
에코타임스(김정문 기자 글)에서 정리
먼 옛날
서해안 고을을 다스리던 원님은 학식과 덕망을 갖춘 의로운 선비로 마을을 잘 다스려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는데
원님은 딸을 낳으며 생을 달리한 부인을 대신해 귀한 여식을 현모양처로 키웠지요.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듯...
한편
달도 차면 기울듯이
태평성대를 누리던 시절은 가고
나라가 오랑캐의 침입으로 위태함을 겪고 오랑캐 나라에 조공으로 처녀들을 받쳐야 하는 슬픈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원님으로서 이 고을에서도 처녀들을 조공보내야 하는 현실에 평민의 처녀들만 보내는 것은
의로운 선비로서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딸을 불러 일렀지요.
"옛날 백제라는 나라에 '계백'이라는 장수가 있었단다.
망해가는 나라였지만 5000 결사대로 출정에 앞서 처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거두고 전장에 나가 의롭게 죽었단다.
비록 전쟁은 아니지만 힘없는 나라의 슬픈 현실이니 어찌 평민의 처녀들만 조공으로 차출하랴.
그래서 네가 솔선해서 나서줘야겠다."
속 깊은 딸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떠나는 날
"피눈물이 나지만 이 또한 하늘의 뜻이려니 하고...
너는 귀한 신분의 처자라 예우가 있을 것이다.
모쪼록 본분을 잊지 말도록 하거라!
너와 나, 부녀지간의 인연이 크다면 새로운 세상을 보겠지."
그렇게
많은 처자들이 부모들과 피눈물로 이별을 하고 떠났지요.
세월이 흘러
선비는 사랑하는 딸을 떠나보내고
마음의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먼 오랑캐 나라가 있는 바닷가 쪽 양지바른 곳에 무덤을 마련하여 덕망높은 혼을 위로 하였지요.
한편
오랑캐나라에 도착한 원님의 딸은
궁궐의 지체높은 분의 시중을 들게 되었고
현명하게 처신하고 의롭게 행동하니 신임을 두텁게 받아 황제의 부인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조공으로 바쳐진 처녀들을 각별히 관심있게 돌보게 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방안을 도모하여
많은 처자들을 환국케 하였지요.
세월흘러 늙은 몸이 되었을 때
온갖 부귀영화도 부질없다며
고향 가까운 동쪽 바닷가 절로 출가하여
아버지의 극락왕생과 갸녀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강을 기원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유언으로
'내 죽거든 바닷가 저 황금꽃 피는 나무아래 묻어달라'하였지요.
바닷가 황금꽃 피는 나무는 이 나라에만 있는 '모감주나무'로
잎이 돋아나면 잎은 잎대로
꽃이 피어나면 꽃은 꽃대로
동쪽으로 향하여 잎을 흔들고 꽃을 흔드니
줄기도 동쪽으로 흔들리며 자라,
처자의 고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듬해 봄
다욱 화려한 황금꽃을 피운 모감주나무
가을이 되자 작은 풍선모양의 열매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리더니
열매주머니 마다 세갈래로 갈라져
작고 튼실한 검은 열매를 달고 있었지요.
그리고
갈라진 열매주머니째 바람에 날려 바다물에 떨어진 열매 배는
물결과 바람따라 동쪽으로 동쪽으로 흘러흘러
옛 고향 바닷가에 당도하였습니다.
봄바람이 세차게 불던 어느날
높이 날려 처녀의 원님 아버지 무덤가에 드디어 도달하였지요.
그해봄
모감주나무 씨앗은 싹이 터서 자라기 시작했고
여러해가 지나서는 무덤가에 군락을 이뤄
황금꽃 동산을 이루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보는 귀한 꽃과 열매를 보며
돌아오지 못한 원님의 딸의 귀향이라 반기고
모감주나무 군락을 잘 관리하였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