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나무, 오동나무와 아들의 나무, 회화나무 이야기

오동나무의 희생과 회화나무의 배려심

먼 옛날

가난한 선비집에 영민한 딸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태어나던 해, 뒤뜰에 오동나무를 심어,

없는 형편이라 시집갈 때 장롱이라도 해주려 했지요.

딸의 이름도 '자오'(자줏빛 자, 오동나무 오)라 했습니다.

오동나무의 꽃빛깔처럼 우아한 여인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했던 것이지요.


자라면서 딸 자오는 뒤뜰 오동나무 그늘에서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아버지는 곧게 자라는 오동나무를 가리키며 성품이 반듯해야 한다고 일렀고

커다란 잎사귀가 나무 아래 다른 화초들이 싹을 틔우고 기력을 회복한 이후에나

늦으막이 잎을 틔우는 것을 보게하여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을 일깨웠으며

커다란 나무로 자라 우람함게 돋보였을 때

나무의 기품에 해가되는 구멍을 파고 집을 짓는 딱따구리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등

온갖 생물들의 생활근거지를 제공하는 것을 가리키며 포용의 마음을 배우게 했지요.


딸 자오가 시집갈 나이가 됐을 때

이곳 저곳에서 혼처가 많았는데

잘 키운 자식을 잘난 집에 시집보내려 했지만

자오는 그 좋은 혼처를 마다하고

집은 유복하지만 남편될 인물이 조금 부족한 쪽으로 출가를 결정했습니다.


혼례품으로 장롱을 만들어 주려고

뒤뜰의 잘 자란 오동나무를 베려고 했을 때

딸 자오는

"아버님! 제가 시집가는 곳은 풍족한 집안이니

저 오동나무는 제가 필요할 때 베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멋스런 오동나무는 더욱 위풍당당하게 자라며 천수를 누리게 되었지요.

1년 자란 오동나무/쑥쑥 자라는 나무, 오동나무


한편

시집간 자오는

남다른 영민함과 지혜로움으로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며

지아비를 정성껏 돌보고 시종들을 잘 관리하여 집안에 평강이 넘쳐났습니다.


감사하게도

고귀한 아기를 갖게 되었고

이듬해 봄, 튼실한 사내아이를 출산하였지요.

시부모님께 부탁하여

집 앞에 선비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를 심어

아이 앞날에 고귀함이 함께 하길 기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선비의 본분인 학문에 힘쓰는 나이가 되었을 때

어미 자오는 본가에 가서 아버지께 오동나무를 베어주기를 청했지요.

자오는 오동나무에게 다가가 가슴으로 안으며

'잘 자라 주어 고맙다. 내 늙은 아비의 벗이 되고 그늘로 봉사하여 더욱 감사하구나.

네 비록 베어지지만 훌륭한 인연을 맺어 기품있는 삶으로 남게 될 것이다.

너를 위로한다!'


딸 자오의 뜻대로

장롱이 아닌 아들의 학업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공부하는

서재의 '오동재' 편액,

공부 책상인 서안,

책꽂이인 서가


가난한 선비집에 외동딸로 태어난 영민한 딸

딸이 태어나던 해에 심은 오동나무

번듯한 집안의 혼처를 마다하고 부족한 지아비에게 시집갈 때

장롱을 해주려 했지만

먼 훗날 쓰임을 위해 베는 것을 미루고

아들을 낳던 해 훌륭한 선비가 되기를 기원하며 심은 학자수, 회화나무

학문할 시기가 됐을 때 친정집 오동나무를 베어 아들을 위한

서재 편액과 책상안 서안, 책꽂이인 서가를 만들어 주는 어머니


아들이 과거급제하여 한양도성 생활을 하며 목민관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을 때

어느날 오동나무 정령이 회화나무 정령을 찾아와

'나는 이리 베어져 주검으로 살신성인하는데

그대는 멋스럽게 자라기만 하니 이 어찌 공평하다 하겠소'하였지요


그후로 회하나무가 꽃을 피우지 않고 병들어 가자

친정을 찾아가 오동나무 베어낸 자리를 보니

베어낸 오동나무 주변에 어미 모체의 영양분으로 많은 맹아가 돋아나매

튼실한 가지 하나를 남겨두고 베어내고

감사와 함께 기도드리는 어머니


아들이 훌륭하게 목민관으로 봉직을 다하고

어머니 뜻을 받들어

이른 나이에 낙향하여 연로하신 어머니을 위해

회화나무 아래 오동나무로 아담한 정자를 짓고

어머니께 시와 이야기를 들려주며 정겹게 살았더라


봄에 아름다운 분홍빛 꽃을 피우는 오동나무


아들은 어미의 명민함을 닮아 열심히 학문을 닦아

18세 되던 해에 과거 급제하여 한양 도성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어미 자오가 아들에게 이르기를

"선비는 학문을 닦아 청아한 몸과 마음으로

주변을 밝히며 사는 것이 최고의 격이지만,

백성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목민관으로 살아가는 것도

이 어미가 기뻐할 바이니 부디 명심하거라!"

"잘 알겠습니다. 어머니!"

"모범된 목민관으로 백성을 위해 힘써 일하고

낙향하여 집앞의 저 회화나무 그늘에 작은 정자 짓고

유유자적하며 풍류를 즐기며 살았으면 한다."

아들이 태어나면 훌륭한 선비로 자라길 기원하며 심은 학자수, 회화나무


그리하여

아들이 한양으로 떠나고 부터

매일 밤 회화나무 앞에 나아가

아들의 지혜로움이 빛을 발하도록 치성을 드렸던 것입니다.


몇해가 지난 어느 여름날

친정집 죽은 오동나무 정령이 회화나무 정령에게 찾아와

'우리는 같은 나무인데 나는 베어져 자오 아가씨 뜻대로

책상과 책장, 그리고 편액이 되었는데

당신 회화나무는 여러 보살핌으로 이렇게 번듯하게 자라고 있으니

이 어찌 공평하다 하겠소.'하더라.

그리고 몇일 후

여름 꽃나무인 회화나무가 꽃몽우리는 맺었지만 꽃을 피우지 않고

아카시나무 꽃떨어지듯 몽우리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지요.


아니나 다를까

한양 올라가있는 아들의 궁궐 관리생활이 힘들어

마음고생으로 몸이 축나 병져누웠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어미 자오는 아들이 그리워 아들이 공부하던 서재로 건너가

공부하던 책상인 서안과 책꽂인 서가를 어루만지려는데

서안과 서가에 누런 곰팡이가 피어있었지요.

걱정이 되어 마른 걸레로 곰팡이를 닦아내고

다음날

친정집을 방문하여 베어진 오동나무 자리를 보러갔는데

오동나무 맹아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이도 돋아나 산만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많은 맹아가 자라나면 땅속 어미 모체의 영양분이 고갈되어

어느 한 맹아도 살아남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어미 자오는 집안 시종을 시켜 가장 튼실한 가지를 남겨놓고

시원찮은 가지들을 모두 자르게 했지요.

그리고 여러해를 두고 오가며 그 오동나무를 남다르게 가꿨던 것입니다.

초여름에 연초록 꽃을 피우는 회화나무


몇해가 지난후

빠르게 자라는 나무인 친정집 오동나무는 다시 우람하게 자라나

봄이면 보라색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드러냈지요.

또한 시댁 회화나무도 여름이면 연초록 꽃들을 흐드러지게 피워

우아하고 멋스러움을 자랑했습니다.

한편

자오의 아들은 지방 현령으로 임명되어

서책으로 배우고 어머니로 부터 훈육받은대로

훌륭한 목민관으로 역할을 다하여 고을과 조정에서 칭송이 자자하게 되었지요.


많은 해가 지나고

자오가 많이 늙어 노쇠하자

자오의 아들이 어미 뜻대로 낙향하여

외가댁 오동나무를 베어와 우람한 회화나무 아래

조촐한 정자를 짓고 어미 자오를 위해 시와 이야기 글을 읽어 드리며

효성을 다하니 모두가 부러워하고 칭송하더라.

회화나무 그늘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선비들



외가댁 오동나무가 또 베어지니

'내 비록 베어지지만 격조있는 집안의 정자가 되

정겨운 늙은 어미와 아들에게 망중한을 제공하니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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