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고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슬쌤 Sep 24. 2020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RESPECT

오랜만에 참 좋은 소설을 만났다.


제목이 말해주고 있듯,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사는 한 남자, 폴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교도소에 이미 수감된 상황에서 시작을 한다.


그리고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이야기는 그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현재로 돌아왔다가, 다시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보통 time traveling (시간 여행)을 하는 책이나 영화는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헷갈릴 때가 많은데, 주인공의 현재가 교도소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제법 제멋대로인 시간여행이어도, 결코 헷갈리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한 거였을까?


RESPECT.




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계속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 본인이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기에,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라고 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삶을 내가 감히 정의하자면, '짠내 폴폴'이다. 책의 시작부터, 교도소에 있는 주인공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의 삶 자체에서부터 이미 짠내가 날 거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 했었다. 그런데 과거 이야기가 파헤쳐지면 파헤쳐질수록 그가 맨 정신으로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많은 힘든 시간들을 보내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마주한 여러 가지의 문제들 -- 죽음, 멸시, 결핍 (더 많지만 스포가 될 수 있기에 큰 덩어리(?)만 맛보기로 살짝) -- 중에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것들이 대다수라 100%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수감되었을 때 그가 끔찍이도 사랑했던 반려견이 죽었다는 사실을 듣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작가는 독자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기꺼이 살아내고 있는 폴과의 연대를 이렇게나마 이어주고자 extraordinary (비상함) 안에 ordinary (평범함)를 넣어 둔 것 같다.




이처럼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를 읽으면서 결코 내가 이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던 이유가  수십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3가지를 나눠보고자 한다.

 




1) 진짜는 마지막에 나오는 법.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왜 이토록 불쌍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챕터가 끝나면 그 이유가 나올까, 해서 계속 읽었지만 결국 수감된 이유는 책의 마지막에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뒷부분부터 읽으면 재미가 없다. 그의 행동은 어릴 적부터 겪은 일들이 쌓이고 쌓인 것의 결과이기 때문에, 앞부분부터 차근차근 읽고 뜯고 맛보고 이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나서 그의 행동을 봐야 이해가 간다.


.

.

.

.

.

.

.

.

.

.


2) 번역가의 센스 

이 책은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오기 때문에 '육두문자'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사실 육두문자를 눈으로 읽는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닐 수 있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육두문자의 presence가 오히려 책의 느낌과 주인공의 삶을 더 잘 표현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번역가의 센스에 감탄한 부분이 또 있었는데, 중간에 프랑스어를 잘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어머니의 소식을 듣게 되는 대목이 있다. 거기를 읽을 때 나는 오타인 줄 알았는데,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을 굉장히 센스 있게 녹여내셨다. 이 부분을 보니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잠깐 동안 했다. 과연 원작에서는 어떻게 표현이 되었길래 한국어 번역이 이렇게 되었을지 심히 궁금해진다.


https://en.wikipedia.org/wiki/Flowers_for_Algernon

의식의 흐름:

'오타'하니까 생각나는 이 책.

7학년 때 이 책 읽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화자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일부러 철자도 틀리고 문법도 틀려가며 쓴 책. 꼭 읽어보시길.


.

.

.

.

.

.

.

.

.

.

.

.

 


3) 폴과 반려견 누크

나는 2018년에 16년의 삶을 찬란하게 살다 간 우리 구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지금은 3살이 된 루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내 인생 2/3를 반려견들과 함께 살아온 반려인이다. 그래서 평소에 감정적으로 영향을 잘 받지 않는 나지만, 유독 반려견이나 반려동물 관련된 것들만 나오면 마음이 동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폴과 반려견 누크의 끈끈한 유대가 마음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가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씩 풀어나갈 때, 반려견 누크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는 것도, 누크가 얼마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않고 한 것도 참 감동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와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온 폴의 이야기에 푹 빠져 읽었다는 것은,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대로,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는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다름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들은 '틀렸어' 라며 마음속으로 손가락질을 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고 생각해본다.


폴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와 연대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선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듯이, 내 삶에서도 나와는 다른, 어쩌면 틀리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과 나는 엉킬 수 없는 실타래라 단정 짓지 말고, 모두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니, 그 속에서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창비, 좋은 책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를 좀 읽어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