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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쌤 Nov 15. 2020

멀쩡한 차를 버렸더니

Feat. 아우디를 두고 BMW를 선택했습니다.

나는 내 차에 대해서 글을 여러 번 썼을 정도로 차를 좋아한다. 미국에 있을 땐 운전하는 것도 꽤나 좋아하긴 했는데, 한국에 오면서 여러 가지 멘붕 오는 사건들을 겪고 -- 불법 주차되어 있는 차들 때문에 흘렸던 몇 리터의 식은땀, 주차장에서 맞닥뜨린 사고, 주차 공간이 협소해서 주차할 때 멘붕이 왔던 시간들, 압구정 현대 백화점에서 우리 학원까지 걸어서 5분인데 트래픽 시간에 제대로 걸려서 30분이 걸린 사건 등등-- 나서 부터는 운전하는 건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출퇴근만은 예외였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압구정까지 매일매일 출퇴근을 하려면 운전하는 것이 삶의 질을 훨씬 높게 만든다고 생각하여 출근시간에 동부간선도로 헬 트래픽을 피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출근시간 2시간 전에 압구정에 도착하는 고생을 해가면서 까지 차를 포기할 수 없었다.


사실 그 이면엔 '움직이기 싫어하는' 내가 있었다. 걷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나였기에, 화랑대 역 1번 출구 68개의 계단 (직접 세봤다)을 매일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운전하는 게 싫다고 징징 거리면서, 트래픽을 피해 새벽에 일어나느라 다크서클이 발목까지 내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차를 끌고 다녔다.


그런데, 지난 9월에 내가 어쩔 수 없이 차를 포기하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차가 고장이 나 딜러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처음에 딜러에 맡겼을 때는 주말 제외하고 3일 정도 걸린다고 하셔서, 오케이, 넉넉잡고 한 일주일만 고생하자.라는 심정으로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다. 그런데 3일이 지나고 나서 연락이 왔다.

직원이 부품 체크를 잘못한 것 같다고. 전국 딜러를 다 수소문해봐도 그 부품이 없다고. 그리고 그 부품이 독일로부터 오려면 2주 정도 걸리고, 수리까지 다 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 약 4주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앞으로 4주 동안 차 없이 다니라니. 내 두 다리는 아직 대중교통에 적합하지 않은 듯한데. 그렇다고 해서 일을 안 할 수는 없고. 어찌 이런 일이.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아우디를 버리고
BMW (Bus, Metro, Walk)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 글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31년을 차만 사랑해왔던 사람이 지난 3개월 동안 차 없이 살아봤더니 어땠는지 쓰는 후기글이다. 철저히 개인적인 주관임을 밝히고 시작한다.


1) 나에게 주어지는 추가시간에 감사하게 된다

내 브런치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주 잘 알고 계시겠지만, 나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내가 운전하면서 "낭비"하게 되는 시간이 제일 아까워서,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 시간을 잘 쓸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그러던 도중, "오디오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출퇴근 시간에 오디오북으로 읽은 책들이 꽤 되고 또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내 삶에 지혜와 연사들의 노하우를 absorb 하는 시간으로 대체했었다.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노래를 힘껏 부르기도 했고 -- 코로나가 터진 시점에 차는 내게 가장 좋은 노래방이 되어 주었다 -- 내 방식대로 출퇴근 시간을 스트레스도 풀 겸, 내가 몰랐던 것을 배우는 시간으로 나름 잘 활용해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차를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의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 책을 읽는다던지, 못 읽은 미디엄 (Medium) 글을 읽는다던지, '100일 챌린지' 인증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던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사실 운전을 하고 다녔을 때는 나의 손이 자유로웠던 시간을 일 시간 외에 의식적으로 따로 빼야 했기에, 나에겐 많은 옵션이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쉬어야 할 시간에 미처 끝내지 못한 '나와의 약속'들을 하나하나 씩 지켜야 했다. 그래서인지, 내게 쉼은 늘 부족한 듯했다.


지하철에서 내가 읽고 싶었던 활자들을 마음껏 읽고, 후기를 쓰고, 또 '100일 챌린지' 인증까지 했더니 집에 와서 해야 할 일들이 현저히 줄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서 '지루함'을 느낄 틈이 사라졌다.


그럼 여기서 드는 질문: 대중교통을 이번에 처음 타본 것도 아니고, 예전에도 한두 번쯤 타고 다녀봤을 텐데, 왜 이제야 그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한 걸까?


내가 생각하는 답은 이렇다. 내가 예전에 대중교통을 잠깐씩 타고 다녔을 땐, 어차피 하루 이틀 타고 말 거니까,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차피 나는 차를 탈 사람이기에, 이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봤자 뭐해, 라는 마음이 들었겠지. 그래서 그때는 맨날 유튜브 보고, 음악 듣고, 카톡으로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그 시간을 흘려보냈다. (절대 그렇게 보내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도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재미와 쉼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4주라는 긴 시간 동안 대중교통을 타야 하게 되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 물었던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지는 왕복 3시간 -- 나의 집중력과 두 손이 자유롭게 허락되는 이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보낼 것인가.





결론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시간"으로 온전히 쓰기로 했고,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요즘 내가 출근 시간에 하는 것들은 대략 이러하다:

1) 집에서 역까지 버스 안에서 (약 15분)

-'북 저널리즘'과 함께하는 뉴스 읽기 챌린지 참여 - '북 저널리즘' 기사 3-4개를 정독하고, 하나를 골라 나의 의견이 반영된 댓글 쓰기. 그리고 댓글 캡처해서 단체 카톡방에 올리기. 그다음은 내 인스타그램 공부 계정 yolo.studies에 올리기.


2) 지하철 타고 압구정까지 (약 30분)

-'네이비씰 100일의 도전' 그리고 '사랑하는 효진언니'와 함께하는 '영어 뉴스 읽기 챌린지'- 얼마 전에 나는 스페인어 공부 100일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새로운 100일 챌린지에 임하게 되었는데, 영어 뉴스를 너무 안 읽는 것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The New Yorker" 구독을 했다. (한 달에 13,000원에 정말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 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기사를 정독하고, 내가 새로 배운 단어라던지 알고 있으면 좋은 구절들을 캡처해서 하이라이트를 한다. 그리고 1번과 마찬가지로 채팅방에 인증하고, 내 인스타그램 100일의 도전 계정 100 days_yeseul에 업로드한다.


정신없이 기사들에 몰두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압구정에 도착해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출근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부작용 아닌 부작용도 있다. 집중하다 보면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깜빡 잊고 지나칠 때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퇴근길은 일을 하고 나서 다소 피곤함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집중해야 하는 일들은 출근길에 다 몰아주고, 퇴근길은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는 편이다.


3) 압구정역에서 화랑대역까지 (약 30분)

-3호선은 많이 막혀서 못 앉을 때가 대부분이다. 못 앉은 것도 서러운데 (걷는 것 싫어하는 사람은 서있는 것도 싫어함) 집중하라고 하면 내가 너무 싫을 것 같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튜브 본다. 내가 언젠가는 되고 싶은 '미니멀리스트' 관련된 콘텐츠를 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6호선은 앉으려면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앉아서 갈 수 있다. 그때 앉아서는 Medium에서 추천해주는 '오늘의 글'을 본다. 미디엄은 독자 취향에 맞게 알고리즘을 통해 내 입맛에 딱 맞는 글을 추천해준다. 그래서 추천된 글 5편을 즐겁게 읽으며 집으로 온다.


4) 화랑대역에서 집까지 버스 (약 15분)

-계단 68개를 오른 후라 사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버스에서 집에 올 때는 집에 가서 뭘 먹을지 고민하면서 가족들에게 카톡을 남기는 시간이다. 이런 카톡을 거의 매일 보내지만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왜냐면 나의 퇴근 시간은 매우 늦기 때문에 시켜먹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그냥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행복하기 때문.


이처럼 퇴근길에는 "하루 종일 일을 열심히 하고 난 후 나에게 주는 보상"같은 시간으로 사용한다. 집에 가서 뭘 하며 뒹굴거릴지, 다꾸를 할지, 유튜브를 볼지, 택배 언박싱을 찍어볼지, 와 같은 행복한 것들 말이다.


2) 건강해진다 (라고 쓰고 살이 빠진다 라고 읽는다)

-차를 안 탔더니 당연히 걷게 되고 가파른 계단 68개를 오르게 된다 (ㅋㅋㅋ 자부심). 그랬더니 건강해짐과 동시에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살이 정말 쭉쭉 빠질 때는 식이까지 같이 했더니 바지사이즈가 달라졌고 사람들이 나를 못 알아보기 시작했다(?)ㅋㅋㅋㅋㅋ 몸무게로 따지면 6-7kg 정도 빠졌는데, 물론 숫자적으로도 엄청난 거지만 굶어서 뺀 게 아닌 움직여서 뺀 살이다 보니 티가 더 팍팍 나는 것 같다. 살이 많이 빠졌다는 소리를 자주 들으니 나도 행복하고. 더 예뻐지고, 건강해지니 차를 선택할 이유가 점점 줄어감을 느꼈다.


3) 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루틴은 지하에서 시작해서 지하로 끝난다. 나도 우리 아파트 지하에서 차를 꺼내고, 회사 주차장도 지하라서 햇빛을 쪼일 시간이 없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갈 때, 그리고 버스를 기다릴 때 잠시나마 광합성을 할 수 있고 바람도 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3개월째 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물론 내 차는 2달 전에 딜러로부터 가져와서 내 품에 있다. 하지만 나는 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차를 타지 않음으로써 내게 오는 선물 같은 시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는 30대가 되어서야 사람은 '움직여야 한다'라는 말을 깨달았다. 차를 버리기 전의 나는 일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literally 움직여야 그 움직임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차와 멀어지는 연습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황예슬 약해지는 소리)

 12월이 되면 날씨가 엄청 추워지기 때문에 차에 대한 유혹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인생 반이상을 눈이 오지 않는 LA에서 살았기 때문에 추위에 정말 약한 나에게 한국의 추운 겨울에 대중교통을 탄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추위에 맞서기 위해 두꺼운 옷을 입는 것이 가장 좋은 옵션이겠지만, 지하철을 타면 또 벗어야 하고 덥고 땀나고 무거운 책가방에 (아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차를 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듯한데,


그런 유혹에 지지 않고 앞으로도 열심히,


아우디보단 BMW! (Bus, Metro, Walk)를 외쳐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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