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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쌤 Jul 04. 2021

나의 죽음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Feat. 단어가 내려온다

<단어가 내려온다>는 오정연의 단편 소설 모음집으로, <마지막 로그>를 시작해서 <일식>으로 끝이 나는 책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덮었다고 해서 이 책이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정연의 단어는 계속해서 내려갈 것이고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의 단어가 내 마음에 계속해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SF를 썩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나 더 읽자는 주의다. 하지만 오정연의 글은 다르다.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난다고 떡하니 쓰여있지만, 읽어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그의 글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현재의 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단편집을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그 소름의 시작은 단연 <마지막 로그>였다. 안락사를 선택한 주인공의 마지막 6일을 담은 이야기는 나에게 <죽음> 그리고 <안락사>라는 두 단어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이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태어날 때 나의 의지대로 태어나지 않았으니, 죽음만큼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나는 적극 동의한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죽음, 필요하지 않을까? 


<마지막 로그>는 죽음을 직접 선택하고, 내가 살아생전 남긴 발자취들을 데이터화 시켜 그것들을 깡그리 삭제시키기까지의 과정을 담는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마주하는 감정과 갖가지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건 덤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로그>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내가 선택한 죽음> 그리고 그 삶의 끝자락이 어떻게 될지 지레짐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과연, 내가 나의 죽음을 선택해본다면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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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오정연의 <단어가 내려온다>.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극히 현재 일어날 수 있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SF라는 장르가 먼 얘기의 일, 상상 속의 일이라고 칭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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