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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15. 2023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닮았다
붓과 펜, 두 가지로 그려내는 세상
화실에서 그림 수업을 시작한 후 아크릴화 두 작품을 완성했고, 이제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얀 캔버스, 물감, 붓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팔레트에 적당량의 물감을 순서대로 짜는 것도, 붓을 고르는 것도 익숙해졌다. 이젤로 둘러싸인 공간에 있는 내 모습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그림을 그리면서 자주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는 정말 많이 닮았다.'
그림을 그릴 때는 대상을 자세히 관찰한다. 대상의 고유한 본질을 파악하면서 색채, 형체, 질감, 명암, 비례 등을 세밀하게 살펴본다. 섬세한 묘사를 위해 집중하고,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도 함께 고려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주제로 쓸지 생각하고, 그 주제와 어울리는 소재를 고른다. 주제와 관련 있는 소재를 모아 어떻게 배열할지 구상한다. 글을 확장하기 위해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
그림을 그릴 때는 큰 부분을 먼저 그리고, 작은 부분을 나중에 그린다. 밑그림은 큰 덩어리를 중심으로 그리면서 점차 세부적인 형태를 더해나간다. 이후 한 가지 색으로 명암을 표현하는 모노크롬 작업을 진행한다. 채색 후 완성된 그림의 느낌을 대략 가늠할 수 있다. 그림이 원하는 방향대로 나왔다면, 색을 하나씩 칠해나간다. 나는 학교에 제출하는 리포트를 쓸 때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쓴다. 주제문을 작성한 후, 서론, 본론, 결론에 들어갈 핵심 문장을 먼저 작성하고 이후 단락별로 세부 내용을 채운다. 큰 틀을 먼저 잡고 글을 쓴다.
모노크롬 기법으로 작업한 유화. 아직 색을 입히기 전이다.그림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전체 그림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그림을 바라보고, 수정할 명암이나 색이 있으면 보정한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주변색보다 너무 튀는 색이 있으면 중간색을 더해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글도 마찬가지다. 모든 내용을 다 쓴 후 반드시 퇴고를 한다. 주제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는지, 문단 간 연결이 매끄러운지, 문장이나 철자 오류가 있는지 검토한다. 쓴 글을 잠시 묵혀 두었다가 다시 읽으면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더 잘 보인다. 그려놓은 그림도 시간을 두고 다시 보면 보완할 부분이 더 잘 보인다.
두 번째 아크릴화. 핀터레스트에서 찾은 JEM Enterprise 이미지를 참고하여 그렸다. 맑은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든다.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료를 수집한다. 풍경, 인물, 정물 등 카테고리를 나누어 찍은 사진을 분류해 둔다. 다양한 사진과 이미지를 검색할 수 있는 핀터레스트(Pinterest) 앱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다운로드해 폴더에 정리해 둔다. 글을 쓰기 위해서도 글감을 부지런히 모은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문장은 공책에 기록해 두고, 산책 중 문득 떠오른 생각은 핸드폰에 메모하거나 녹음해 둔다. 순간 스쳐가는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얀 캔버스를 마주하면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밑그림을 위해 첫 선을 그을 때 떨리기도 한다. 하지만 두어 번 더 선을 그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구도나 형태가 잘못 잡혔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시 제자리를 찾아 그리면 된다. 글을 쓸 때도 비슷하다. 빈 문서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면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선뜻 자판을 치지 못하다가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다. 막막한 느낌은 사라진다. 철자 오류가 있어도 비문이거나 문단 연결이 매끄럽지 않더라도 우선 써 내려간다.
인생 첫 아크릴화,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의 작품 At Calcot을 보고 따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