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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Nov 27. 2023

또다시 출장 가방을 쌌다

해외에 살면서, 해외 출장을 다니는 남편과 사는 이야기


남편은 한 달에 한두 번씩 해외 출장을 간다. 코로나19가 가장 심했던 2020년을 제외하고 18년째 해외 출장을 다니고 있다. 우리 부부는 30대부터 시작해서 50대가 된 지금까지 거의 일 년 중에 1/3 이상을 서로 떨어져 지내고 있다. 짐을 싸고 풀고 정리하고, 다시 짐을 싸는 과정이 일상화되었다. 출장용 트렁크는 꺼내기 쉽게 창고 제일 앞쪽에 두었다. 늘 휴대하는 물품들은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비상약은 남편 책상 위에 두었다. 출장 가방을 싸는 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며칠 전 남편이 창고에서 트렁크를 꺼냈다. 옷장에서 셔츠 5벌을 꺼내 나에게 접어 달라고 부탁했다. 양복 안에 입을 정장셔츠 2벌과 비즈니스 캐주얼용 셔츠 3벌이었다. 2주 동안 입기에는 조금 부족할 듯싶었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호텔 세탁서비스를 이용하면 되니까 충분하다고 했다. 남편은 트렁크를 펼쳐 놓고 가져갈 짐을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이 꺼내준 셔츠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접기 시작했다. 사이즈가 커서 구김 없이 접는 게 쉽지 않았지만 되도록 각을 맞춰 깔끔하게 접었다. 5벌의 셔츠를 칼라가 겹치지 않도록 교차해서 트렁크에 넣었다.


밤 10시, 예약해 놓은 택시가 곧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왔다. 남편은 은색 트렁크를 끌고 현관으로 갔다. 신발을 신고 나서, “ㅇㅇ 씨, 잘 지내고 있어.”라고 말하면서 나를 한 번 안아 주었다. 엘리베이터가 거의 도착할 즈음 나는 다시 한번 남편을 안았다.


“여보, 잘 다녀와요. 사랑해요.”

“네. 여보, 잘 다녀올게요. 사랑해요.”


남편과 연애하던 때였다. 남편은 비행기 타는 걸 참 좋아한다고 했다. 혼자 15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갔을 때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음식과 음료가 제공되고 졸리면 자면 되니까 장거리 비행이 거웠다고 했다. 그런 말이 씨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18년째 남편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 출장을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일할 목적으로 가는 여행이지만 여러 국가를 다니며 견문과 시야를 넓힐 수 있어서 남편은 출장 일정이 잡히면 좋아했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일까.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힘들어하는 게 내 눈에도 보인다. 비즈니스석이나 일등석을 타도 피곤하고, 아무리 좋은 호텔에 묵어도 집만큼 편하지 않다고 했다. 특히 밤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게 지친다고 했다. 게다가 지난번 출장 때는 코로나에 걸려서 혼자 된통 아픈 경험도 했다. 


사실 나도 힘들었다. 가족 친지 하나 없는 낯선 나라에서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게 쉽지 않았다. 올해 초 큰아이가 뎅기열에 걸렸을 때 나 혼자 얼마나 많이 애태웠는지 모른다. 한국에 살았다면 그래도 심적인 부담은 덜 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이상하게도 아빠가 출장 갔을 때 자주 아팠다. 주로 바이러스 장염에 걸려 열이 나고 설사와 구토를 했다. 큰아이가 아프면 작은 아이도 아프고 큰아이가 울면 작은아이도 따라 울었다. 큰아이가 유치원에 다녔을 때였다. 남편이 출장 가는 날, 이른 새벽에 눈을 떠 보니 큰아이가 안방 옷장에 기대앉아 자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물어보니 아빠 출장 못 가게 하려고 와 있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자상한 아빠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그런 아빠의 잦은 부재가 힘들었던 것 같다.


남편이 내 곁에 없을 때 가장 불안했던 건, 내가 아이들의 유일한 보호자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거였다. 항상 내가 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잘 먹고, 잘 자고, 씩씩하게 살려고 애썼다. 어쩌면 내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잘 지나온 것도 같다. 이제는 아이들이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는 성년이 되었고, 스스로 잘하고 있어서 예전보다는 한결 부담감이 덜해졌다.


좋은 점도 있다. 서로 떨어져 지내다가 만나면 아주 반갑다.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나는 얼른 쫓아 나가서 반겨준다. 남편이 한국에서 올 때는 본가에 들러 어머님이 싸 주시는 식재료와 과일을 가져오는데, 나는 한밤중이라도 트렁크에서 음식을 모두 꺼내 냉장고에 싹 다 정리해 놓고 잔다. 제철 과일이나 반건시를 가져오면 너무맛있어 보여서 오밤중에 몇 개 먹고 잘 때가 있다. 어머님이 담그신 깍두기 한 조각을 맛보다가 결국은 밥 몇 숟가락 더 떠서 올려 먹은 적도 있다. 남편도 반갑고, 남편이 가져오는 음식도 반갑다. 한밤에 식탁에 앉아서 남편이 가져온 음식을 조금 맛보며 서로 잠깐 이야기하는 시간도 좋다. 간혹 남편과 말다툼을 해서 화가 거나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때도 서로 각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싸울 일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부의 삶은 매일 얼굴을 맞대고 함께 생활하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 가정마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성당 자매님의 경우, 외항 선원인 남편은 일 년에 한 번 집에 와서 두 달 동안 함께 지내다가 다시 떠난다. 우리 집 위층에 잠시 살다 간 동생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3년 동안 기러기 엄마로 살다 돌아갔다. 주재원 생활이 끝난 후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 아내만 남아 있는 가정도 있다.


물론 우리 부부와 같은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다. 주위 사람들이 내게 “남편 퇴직 후에 좀 힘들 수도 있겠어요.”라고 웃으며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자주 떨어져 지내다 보면 퇴직 후에 매일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게 불편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친하게 지내던 언니는 내게 "남편이 그렇게 출장을 자주 가는데, ㅇㅇ 씨는 불안하지 않아? 남편을 신뢰하는 거지?”라고 물었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이해했지만, 당시에는 그런 얘기가 좀 아프게 들렸다. 특히 “남편이 집에 없으니 밥 안 해서 좋겠다. 자기는 무슨 복이 많아서 그래?”라는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 나는 남편하고 같이 밥 먹는 게 좋은데 남의 속도 모르고 그런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 같다.


나는 남편이 안쓰럽다. 가장으로 짊어진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늦은 밤에 남편을 보내고 나면 나는 바로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남편이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메시지가 오길 기다린다. 다음 날에는 남편이 목적지에 착륙했다는 메시지가 오길 또 기다린다. 어쩌다 연락이 늦으면 항공편 출도착 실시간 조회를 해 본다. 이제 남편과 내가 부부의 연을 맺은 지 25년이 되었다.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도 18년이었는데 태어난 곳과 자란 곳,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남자와 25년째 함께 살고 있다. 비록 올해 은혼식은 못했지만 다음 주에 남편이 돌아오면 반지를 선물하려고 한다. 내가 일해서 번 돈의 일부를 남편을 위해 쓸 계획이다. 내가 좋아하는 액세서리 브랜드, 티파니에서 이미 마음에 드는 반지를 봐 두었다. 가장, 아빠, 그리고 남편으로서 항상 수고하는 내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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