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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Mar 02. 2024

아들이 꽃다발을 선물해 주었다!

작은 선물, 큰 행복


며칠 전에 생일을 맞았다. 기숙사에서 지내던 아들이 생일을 함께 보내기 위해 집에 왔다. 시험 기간이라 바쁠 텐데도 혼자 있는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었다. 지난주에 아들에게 바쁘면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막상 생일 아침에도 혼자 있게 되면 좀 쓸쓸할 것도 같았다. 남편은 출장을 떠나서 함께 할 수 없었다. 자주 겪는 상황이라 이젠 그러려니 하고 넘기게 된다.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무척 반웠다.


아들과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는 줌바 수업을 들으러 갔다. 1시간 동안 신나게 운동하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들은 엄마 팔에 붙은 근육이 보기 좋다면서 나를 치켜세워 주었다. “이 정도야 뭐.”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고는 거울에 비춰 한 번 쓱 훑어보았다. 운동하러 나가기 전에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나갔는데, 돌아와 보니 꼭 닫혀 있었다. 거실에 에어컨을 켜 놓았기 때문에, 아들이 내 방을 환기시키려고 창문을 열고 방문은 닫아 놓았다고 생각했다.


방문을 열자, 책상 위에 보라색 꽃다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 이게 뭐야? 꽃다발이네!”하며 아들을 쳐다보니 “엄마, 마음에 드세요?”고 물었다. “당연히 마음에 들지! 고마워. 정말 예쁘다.” 보라색 수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수국은 꽃집에서 볼 때 예쁘다고만 생각했지 한 번도 내 손으로 사 본 적이 없었다. 아들은 내 취향에 맞춰 보라색 수국으로 준비해 놓았다. 카드에는 엄마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마음이 날아갈 듯이 기뻤다.


“엄마, 사실 꽃을 살지 케이크를 살지 고민했어요. 꽃은 금방 시들어버리니까 엄마가 돈이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아니, 무슨 그런 말을 해. 당연히 꽃이지. 생일에는 꽃, 무조건 꽃이지.”


운동을 하고 돌아오니 책상 위에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어쩌다 한 번씩 남편이 장미꽃을 사 온 적이 있었다. 사실 나는 장미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국, 작약, 튤립 등과 같은 꽃을 좋아하지 장미꽃이나 백합, 국화 등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어서 고맙게 받았지만 남편은 나의 꽃 취향을 모르는 것 같았다. 기특하게도 아들은 내가 좋아하는 꽃을 어떻게 알았는지 마음에 꼭 드는 선물을 해 주었다.


꽃이 시들까 봐 얼른 꽃병에 옮겨 담으려고 포장지를 벗겼다. 그런데 수국은 오아시스에 꽂힌 게 아니라 이미 꽃병에 담겨 있었다. 아들이 수국에 어울리는 꽃병까지 주문했다고 했다. 정말 마음에 꼭 드는 꽃병이었다. 꽃병에 담긴 물을 비우고 새 물을 받아 얼음 몇 조각 넣어 주었다. 스프레이로 꽃잎에 분무해 주었다. 하얀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더니 더없이 예쁠 수가 없었다.


꽃병에 담긴 수국, 아이리스, 리시안셔스


학과 공부하는 시간을 쪼개어 강의조교로 일하면서 용돈을 벌고 있는데, 그 돈으로 산 걸 생각하니 고맙고도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에게서 꽃선물을 받았을 때는 그저 기쁘고 고마운 마음만 들었는데 아들에게서 꽃 선물을 받으니 기쁘면서도 애틋한 감정이 올라다. 해외에 있는 남편과 딸도 함께 볼 수 있게 사진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남편과 딸은 최고라는 의미로 엄지 척 이모티콘을 여러 개 올렸다.


꽃을 싱싱한 상태로 오래 유지하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절화 보관하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수국은 물을 정말 좋아해서 물이 부족하면 훅 주저앉아 버린다고 나와 있었다. 물올림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줄기를 3cm 정도 사선으로 잘라 준 후 속에 있는 하얀 톱밥을 제거해 주고, 직사광선을 피해 선선한 곳에 둬야 한다고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시들어서 축 쳐진 수국을 물통에 거꾸로 넣어 푹 담가 두면 싱싱하게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동영상으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서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다. 시든 수국을 물에 1시간 정도 푹 담가 두었다가 꺼내 비닐에 싼 후, 한 나절 동안 냉장고에 넣어 두었더니 정말로 다시 생생하게 살아났다. 신기했다. 또한 수국은 드라이플라워로 만들 수도 있었다. 꽃에 수분이 남아 있을 때 거꾸로 매달아 말리면 된다고 했다. 다양한 정보들을 통해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내가 물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꽃이 시들겠지만 시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아름다움을 더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어차피 시들어버릴 꽃을 사는 게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을 때 내 눈에 보기 좋으라고 선뜻 꽃을 살 마음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껏 내 손으로 꽃을 사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가끔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에게서 한 학기가 끝나는 날에 선물을 받기도 했는데 그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그날 밤, 아들과 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꽃다발 선물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들은 엄마가 정말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사실 나도 이렇게 기쁠 줄 몰랐다.


“엄마, 꽃이 시들면 많이 서운하겠지요?”

“물론 엄청 서운하겠지. 그런데 오늘 네가 준 꽃다발은 감동 그 자체였어. 당연히 꽃은 시들어가겠지. 그게 꽃의 본연의 성질이니까. 하지만 오늘 엄마가 느꼈던 행복함은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거야. 매일 꽃이 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남겨 둘 거야. 감정적인 가치를 생각하면 돈이 아깝게 여겨지지 않아.”


그랬다.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꽃다발 선물에 이런 의미를 부여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돈으로 측정될 수 없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작은 선물이었지만 크나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아들은 기숙사로 돌아갔다. 혼자 남겨진 집에서 꽃을 바라보며 아들이 선물해 준 감동적인 순간을 떠올렸다. 며칠이 지났음에도 수국은 보랏빛 꽃잎을 흐드러지게 펼치고 있고, 하얀 아이리스와 리시안셔스는 아름다운 꽃잎을 펼치며 우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들의 마음이 담긴 꽃이어서 그런지 더 사랑스럽고 예쁘게 느껴졌다. 아들과 단 둘이서 보낸 생일은 함께 하지 못한 가족들의 빈자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감사했다.


저녁에 스테이크 하우스에 갔다. 엄마 생일이라고 창가 좌석에 케이크까지 요청해 두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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