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껫에 도착하자, 날씨는 더웠지만 옅은 구름이 드리워져 햇살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우리 가족은 휴양지에서는 조용하고 붐비지 않는 해안가를 선호하는 편이라 그런 곳을 찾아 예약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평일이라 그런지 로비가 한산했다. 체크인을 마치자 직원이 바다가 잘 보이는 풀빌라로 안내했다.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풀빌라에 묵는 것은 처음이라 기대되었다.
풀빌라 너머로 탁 트인 바다가 보였다. 나무로 지어진 집은 친환경적이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 가족에게 나무 바닥과 나무 천장, 나무 현관문은 신선하고 색다르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거실과 연결된 작은 수영장이 눈에 띄었다. 신혼부부가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아담한 크기였다. 짐을 푼 후, 아들과 남편은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비 온 후여서 비치 의자도 나무 데크도 젖어 있었다. 수영장 물은 차가워 보였다. 저 멀리 열대 나무 너머로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오전에 비가 내려서인지 물이 차가워 보였다. 수영장 한쪽 끝은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더 차가울 것 같았다. 남편이 먼저 “어흐!”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아들도 “으읏, 차가워!” 하며 곧바로 따라 뛰어들었다. 둘은 딸과 나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지만, 차가운 물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첫날은 남자들만 수영을 즐겼다.
다음 날 오후, 딸과 아들이 먼저 수영장에 들어갔다. 나는 비치 의자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들이 “엄마도 얼른 들어오세요!”라며 재촉했다. 싱가포르의 무더운 날씨에도 늘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습관 때문인지, 차가운 물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요청에 못 이겨 우선 발만 살짝 담가 보았다. 아침부터 해가 반짝 떠서인지 물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종아리까지 담그다가 무릎까지 들어갔다. 어린아이처럼 물장구를 치다 보니 점점 수영장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국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따스한 햇살이 비쳐서 수영장 물도 많이 차갑지 않았고, 바닥 타일도 따뜻했다. 작지만 가족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영장이었다.
수영장 옆 샤워기에서 몸을 적신 후 계단을 밟고 한 발짝씩 내려갔다. “아이구, 추워! 아이고, 차가워라! 으, 추워 추워!” 연신 앓는 소리를 내자, 아이들은 내가 한 계단씩 내려갈 때마다 응원했다. 마지막 계단을 밟자 아이들이 “예이, 엄마도 들어왔네요!”라며 환호했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잠수해 머리끝까지 물을 적셨다.
수영장 깊이는 1.3미터밖에 되지 않아 두려움 없이 물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15년 만에 수영을 했지만 평영을 해보니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수영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것이었다. 몸의 힘을 빼고 얼굴을 물 밖으로 내놓은 채, 팔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아이들은 “엄마, 정말 수영 잘하네요!”라며 칭찬해 주었다. 내친김에 배영도 해보았다. 배영은 하늘을 보며 수영을 할 수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법이다. 물 위에 드러누워 발차기를 하며 팔을 저으니 금세 수영장 끝에 닿았다. 더 큰 수영장이었으면 계속 쭉쭉 나아갈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거실 창으로 우리를 보던 남편도 미소를 지으며 수영장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자주 함께 수영했지만, 성인이 된 아이들과 이렇게 물놀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네 명이 서로 손을 잡고 “예이!”하고 외치며 물속에서 콩콩 뛰고 빙글빙글 돌았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수영할 때 다칠까 봐 조심스럽게 지켜보던 내가, 이제는 아이들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웃으며 놀았다. 세월이 참 빨리 흘렀다. 마음이 뭉클했다.
추억들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아파트 수영장에서 유치원생이었던 아이들이 팔에 튜브를 끼고 킥보드를 잡은 채 물장구치던 모습, 처음 자유형을 배워 킥보드 없이 물살을 가르던 모습, 파자마 차림으로 생존 수영을 배우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비치 의자에 앉아 있다가 물 밖으로 나온 아이들에게 핫초콜릿과 땅콩버터 바른 빵을 건네던 내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지금도 아이들은 나와 그 시절에 먹은 간식을 따뜻하게 추억한다.
아이들은 어릴 적처럼 수영 시합을 하고 잠수 대결을 했다. 둘이 합을 맞춰 싱크로나이즈드 안무를 흉내 내며 나에게 선보였다. 아이들의 재미있는 연기에깔깔 웃음이 터졌다. 장난기 가득한 모습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참을 놀다가 내가 먼저 나와 욕실을 따뜻하게 데웠다. 딸, 아들, 남편 순으로 차례차례 샤워를 마쳤다. 한나절 수영을 즐긴 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니 몸도 마음도 개운해졌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기분 좋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작은 수영장이었지만 우리 가족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마음을 나누며 가족애를 더욱 깊이 새겼다. 수영하는 방법을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기억해 줘기뻤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부드러운 물의 감촉, 함께 했던 웃음소리, 다 함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놀던 모습, 나를 향한 아이들의 응원, 푸르른 하늘, 기분 좋은 바람. 이 순간의 행복이 물결처럼 마음 깊이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