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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Aug 16. 2024

발리에서 함께 만든 우리 가족 ‘우정 반지’

모양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발리 여행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은반지 만들기 체험이었다. 평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걸 좋아하는 나를 위해 아이들이 멋진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아이들과 함께 호텔 근처에 있는 여러 은반지 공방을 찾아보며 계획을 세웠다.

 

먼저 인터넷에서 은반지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보았다. 대부분의 공방에서는 7~8그램 정도의 은을 제공했고, 일부 공방은 10그램까지도 제공했다. 가격이 조금 더 저렴하고 은의 그램 수가 많은 곳은 대체로 냉방 시설이 없는 공방들이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과 아들을 배려해 7그램의 은이 제공되지만 시원하고 쾌적한 공방을 선택했다. 예약 날짜는 여행 둘째 날로 정했다. 여행 중 함께 만든 반지를 끼고 다니면 의미 있을 것 같았다.


여행 둘째 날, 점심을 먹고 일찌감치 호텔을 나섰다. 구불구불한 도로와 좁은 길목이 많아 교통이 자주 막혔다. 원래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거의 1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공방에 들어서자 사람들로 북적였다. 예약자 이름을 말하니, 직원이 공방 옆 대기 공간으로 안내해 주었다. 대기실에는 호주 사람으로 보이는 가족들이 한편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직원이 여러 디자인의 반지 샘플이 꽂혀 있는 트레이를 가져와 앞 시간 체험자들이 작업을 마치는 동안 천천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라고 말했다.


다양한 디자인의 반지 샘플들


가족 모두 집중해서 반지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반지 샘플이 많아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 이게 더 나은 것도 같고 저게 더 예뻐 보이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반지를 여러 손가락에 껴보며 어떤 것이 더 어울리는지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 반지로 할까? 음, 그건 좀 평범한 것 같은데. 이건 어때? 이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살짝 두드린 질감이 예쁘네. 아니면 이 반지도 좋을 것 같아. 패턴을 그려서 두드리면 재미있을 것 같아…” 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해 각자 마음에 드는 반지 디자인을 최종 결정했다.


우리 차례가 되어 공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방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선생님은 은이 담긴 작은 그릇을 들고 와서 우리를 실외 작업 공간으로 안내했다.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도가니가 놓여 있었고, 도가니 안에는 작은 돌멩이들이 반쯤 채워져 있었다. 선생님은 은이 담긴 작은 그릇을 도가니 안에 넣고 은을 녹이는 방법을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양손으로 토치를 잡고 발로 페달을 계속 밟으며 은을 녹였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아들이 은을 녹이기 시작했다. 은이 다 녹자, 선생님은 길쭉한 모양의 틀에 녹인 은을 부어 은봉을 만들었다.


토치를 사용하여 은을 녹였다.


은봉을 가지고 압연기가 설치된 곳으로 갔다. 반지를 만들기 적절한 두께가 되도록 얇고 긴 형태로 펴주기 위해서였다. 선생님은 압연기에 달린 손잡이를 돌려 롤러를 회전시키며 은봉을 펴주는 시범을 보였다. 이후 가족들이 돌아가며 롤러를 돌려 원하는 두께가 될 때까지 은봉을 얇게 폈다. 우리 가족 네 명의 반지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가늘고 긴 은판이 준비되었다.


압연기로 은봉을 펴서 은판을 만들었다.


실내로 옮겨 작업대에 앉았다. 링게이지를 사용하여 반지 호수를 측정했다. 선생님은 종이에 네 칸을 나눈 후, 한 칸에 한 명씩 이름을 적었다. 각자 자신의 이름 옆에 선택한 샘플 반지를 올려놓고 그 옆에 측정한 반지 호수를 썼다. 이후 선생님은 은판을 반지 호수에 맞게 4개로 자르고, 반지 안쪽에 각인할 문구가 있는지 물어보셨다. 우리 가족이 함께 만든 것을 기념하기 위해 날짜와 장소를 새기고 싶다고 했다. ‘2024년 8월 10일 발리’를 의미하는 문구인 ‘10.08.24 BALI’를 펀치와 망치를 사용하여 각인했다.


제일 먼저 패턴이 복잡한 아들의 반지부터 설명하셨다. 아들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은판에 뾰족한 모양의 펀치를 대고 망치로 두드려 패턴을 새겼다. 찬찬히 정성 들여 작업한 덕분에 무늬가 예쁘게 새겨졌다. 생님은 아들이 각인한 은판을 동그란 형태가 되도록 만들었다. 토치를 사용해 반지의 양쪽 끝에 은을 덧대어 붙여주셨다. 은을 덧대는 이유는 접합 부위를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셨다. 동그란 반지 형태가 완성되었다. 손가락에 한번 끼워보니 사이즈가 잘 맞았다.


은판에 패턴을 새겼다.


은판 양끝을 땜질하여 반지 형태를 완성했다.


그 후 반지 표면을 다듬고 광을 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로터리툴을 사용해 반지 안쪽을 세밀하게 다듬었다. 어두운 회색빛이 점차 밝아지면서 은 특유의 은은한 광택이 드러났다. 마무리 단계로 버핑 휠을 사용해 반지 표면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반지의 표면이 매끄럽고 빛날 때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연마 작업을 반복했다. 먼저 거친 버핑 휠로 표면을 다듬은 후, 점점 더 미세한 버핑 휠로 표면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연마제를 제거하고 광택용 천으로 고급스러운 광택을 더했다. 마침내 아들 손에 꼭 맞는 은반지가 완성되었다.


반지 안쪽을 세밀하게 다듬고 광을 냈다.


버핑 휠을 사용하여 광택을 냈다.


남편, 딸, 그리고 나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은판을 망치로 살살 두드려 부드러운 질감을 냈고, 딸과 나는 은판을 더욱 가늘게 늘여 각각 두 줄의 은선을 만들었다. 딸은 리본 모양을 만들어 붙였고 나는 두 줄을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서로 연결했다. 아들이 했던 방법으로 표면을 다듬고 광택을 냈다. 땜질처럼 어려운 부분은 선생님이 도와주셨지만, 은반지를 만드는 전체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직접 해볼 수 있어 좋았다.


3시간쯤 걸려 가족 모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반지를 완성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반지를 끼고 손을 한데 모았다. 디자인은 다르지만, 반지 안쪽에 같은 문구를 새겼기에 우리 가족만의 유대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이 반지를 ‘가족 우정 반지’라고 이름 붙였다. ‘우정’이라는 단어는 보통 친구 사이에 쓰이지만, 우리 가족은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도 친구처럼 지내기에 ‘가족 우정 반지’라고 하는 것이 어울렸다. 마음에 꼭 드는 예쁜 은반지를 만든 것도 좋았지만 가족과 한 공간에서 함께 새로운 체험을 해보는 것이 더 의미 깊게 느껴졌다.


2024년 8월 10일 발리에서 만든 가족 우정 반지(영국 영어식 날짜 표기 방법을 따라 일/월/연도 순서로 표기했다.)


우리 가족이 여행 중에 만든 이 은반지들은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끈끈한 유대감과 서로를 향한 깊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기념품이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가도, 저녁노을에 물든 하늘을 감상하다가, 비치 의자에 기대어 파도 멍 때리기를 하다가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정 반지를 낀 손을 한데 모았다. 발리의 황홀했던 석양과 파도 소리는 이제 사라지고 우리들의 마음속 깊이 남았다. 우리 가족의 추억이 깃든 이 반지들은 지금도 각자의 손가락에서 은은히 빛나며 함께한 그 따뜻했던 순간을 기억하게 한다.


가족 우정 반지를 끼고 한데 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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