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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Aug 25. 2021

눈에 밟힌다

아들의 뒷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몇 년 전 조현용 교수님의 한국어 어휘론 수업을 들었다. 편입 후 들은 강의 중에서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 수업이었다. 교수님 덕분에 우리말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말 중에 ‘눈에 밟힌다’라는 표현이 있다.     


어떤 곳을 떠나 왔는데도 계속해서 생각은 그곳에서 떠나지 못할 때, 우리는 <눈에 밟힌다>라는 표현을 한다. 눈이 발이 아님에도 밟힌다고 표현하는 것은 모습을 시각이 아니라 촉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자식을 남겨 두고 떠나올 때, 부모님을 찾아뵙고 떠날 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놓았을 때 눈에 밟힌다고 한다. 시각을 촉각으로 바꾼 표현이 언중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을 눈으로 밟고 있는 것처럼 아파하는 것이다.

조현용, 『한국어, 문화를 말하다』, (주)도서출판 하우(2017), P237      


‘시각을 촉각으로 바꾼 표현’이라는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나는 그저 하나의 관용구로 알았던 ‘눈에 밟힌다’는 의미를 되짚어 보았다.    

  



10여 년 전, 초등학생이던 두 아이를 싱가포르에 두고 급히 한국으로 간 적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이석증으로 두 달 이상 고생했는데 이상하게도 이곳의 병원에서는 아무리 치료를 받아도 호전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려서 내 손길이 많이 필요했지만 한 번 다운된 몸은 마음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휴일에는 남편이 아이들을 돌봐주고 나는 최대한 휴식을 취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개운하게 낫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 한국으로 가서 며칠이라도 치료를 받고 좀 쉬고 오고 싶었다.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면 나도 잠시 한국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비행기표를 예매해 두고 남편이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 혼자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증세가 더 심해졌다. 견디기 정말 힘들었다. 하루하루를 어렵게 버텨나갔다. 그런 내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성당 자매님이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을 잘 돌봐 주겠다며, 나에게 하루라도 빨리 출국하라고 했다.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눈물만 줄줄 흘렸다.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출발 일자를 변경했다.

 

밤 10시 반 비행기였다. 집에서 8시쯤 떠났다. 많이 걱정되고 불안했다. 한 번도 내 손을 떠난 적이 없는 아이들을 두고 가려니 정말이지 발걸음이 떼이지 않았다. 큰아이가 초등학생이었지만 마음 씀씀이가 넓고 든든해서 잘할 거라고 믿으며 애써 내 마음을 달랬다. 어린아이들을, 그것도 한국이 아닌 가족 친지 하나 없는 싱가포르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떠나려니 가슴이 에였다. 눈물을 감추고 아이들을 한 번씩 안아주고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도, 공항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한국에 도착해서 친정집에 머물면서도 항상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학교 잘 갔을까? 밥잘 먹었을까? 밤에 엄마 없이 무섭지 않았을까? 잠 잘 잤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미치도록 쓰라렸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놓고 온 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밟히고 또 밟혔다...   

 


세월이 한참 흘렀다. 아들이 싱가포르 군대에 입대했다. 특별한 훈련이 없으면 매주 금요일 밤에 집에 와서 일요일 밤에 다시 부대로 돌아간다. 주말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 먹인다. 아들과 주중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 보면 금세 일요일 밤이 된다. 남편과 나는 아들을 부대에 데려다주고 아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밖을 바라보다 떠난다. 차를 돌리면 이내 허전해진다. 매주 집에 오는데도 아들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다섯 밤만 자면 또 오는데도 아들의 뒷자락이 계속해서 눈에 밟힌다. 조금 전까지 뒷좌석에 남아있던 아들의 온기는 온데간데없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자식의 모습을 눈으로 밟고 사나 보다.'    


어느 날 아들의 뒷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공항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내 뒷모습을 문이 열렸다 닫혔다 또 열렸다 닫혔다 하는 사이로 끝까지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계시는 부모님의 모습도 보였다. 20대에도, 30대에도, 40대에도, 50대가 된 지금도 부모님은 여전히 출국하는 내 뒷모습을 눈으로 밟으며 배웅을 하신다. 아들은 다섯 밤을 자면 오지만 나는 떠나면서 “또 올게요.”라는 말만 남기고 그 언제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눈으로 밟고 살고, 나는 부모님의 눈에 밟히며 그렇게 나 보다.





사진 출처: Pixabay by H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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