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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Aug 31. 2021

1.5년 만에 줌바 토닝 수업

Community Club in Singapore

지난 수요일,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후 줌바 토닝 수업을 들으러 집 앞 커뮤니티 클럽에 갔다. 작년 3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둔 줌바 토닝 수업을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무척 설렜다. 수업은 원래 7월 중순에 오픈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코로나 환자의 증가로 다시 한 달간 연기가 되었다. 8월 중순 싱가포르 전체 인구의 80프로가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하였고 규제가 조금 완화되어 실내 고강도 운동은 모든 참가자가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한 경우에 5명이 한 그룹이 되어 30명까지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커뮤니티 클럽>


오랜만에 레깅스에 민소매 티를 입고 물 한 통을 챙겨 커뮤니티 클럽으로 갔다. 원래 줌바 토닝 수업은 앞뒤 벽면에 거울이 부착되어 있는 댄스 스튜디오에서 했는데 이번엔 장소를 바꿔 공간이 몇 배 넓은 강당에서 하게 되었다. 강당에 들어가기 전 싱가포르 정부 ‘Trace Together’ 앱을 열고 'SafeEntry‘ QR코드를 찍어 출입 시간을 남긴 후 백신 접종 완료 전자증명서를 보여주고 입장했다.      


강당으로 들어가 보니 먼저 온 몇몇은 앞뒤 좌우 3미터씩 띄우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대 앞에서 학생들을 기다리던 C 선생님이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젤라! 잘 지냈어요?” C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은 지난 2년 동안 나는 틈틈이 간단한 한국말을 가르쳐 드렸는데 다행히 잊어버리지 않으셨다. “네, 잘 지냈어요.” 반갑게 인사를 했다.       


C 선생님은 20대나 30대의 젊은 줌바 선생님이 아니다. 근육이 좀 있긴 하지만 팔뚝살이 조금 늘어진 여느 중년 여성의 몸과 크게 차이 없는 50대 중반이시다. 몇 해 전 C 선생님의 수업을 처음 들은 날, 나는 누가 선생님인지 학생인지 몰라서 두리번거렸다. ‘설마 저분인가.’하고 의아해하는데 “자, 이제 수업 시작합시다. “하고 C 선생님이 맨 앞에 자리를 잡아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첫날 수업 후 나는 C 선생님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누구보다 열정이 많고 몸이 유연하며 무엇보다 그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밝고 힘찬 긍정 에너지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어디에 설까?’ 둘러보다가 평소 잘 서지 않던 가운데 자리를 골랐다. 앞으로 수업은 자리 이동 없이 같은 자리에서만 설 수 있다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는 얼굴이 간혹 있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 더 많았다. 작년 1월까지만 해도 나는 화요일 오전 C 선생님 수업을 들었고 그 수업이 너무 즐거워서 내가 하는 학교 수업도 화요일은 피해서 맡을 정도였다. 수요일 저녁 C 선생님 수업은 처음이라 새로운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간단한 대화를 했다. 내가 대화를 시작하면 늘 그렇듯 억양이 다른 내 영어를 듣고 묻는다.      


“어, 싱가포르 사람 아니에요?  싱가포르 사람처럼 생겼는데.”하며 깜짝 놀란다. 

“아니요.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어머, 그래요? 정말 싱가포르 사람처럼 생겼어요.” 하며 주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

“싱가포르에 얼마나 살았어요?” 

“16년 살았어요.” 16년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놀란다.

"아이들은 싱가포르 로컬 학교를 다녀요? 국제학교를 다녀요? 중국말도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국에 가 봤다.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한국 노래를 좋아한다. 한국 화장품을 좋아한다. 한국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다. 특정 배우가 너무 잘생겼다 등등 끊임없는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내가 한국어 강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런 영어 표현’은 한국말로 어떻게 말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한다. 한국의 인기가 아주 많고 한국 사람인 내게 늘 호의적이어서 기분이 좋다.     


저녁 8시가 되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하는 수업이라 크게 튼 음악 소리에 이미 신이 났다. 거기다가 넓은 강당에서 하니 움직임에 제약 없이 크게 동작을 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전 C 선생님 수업은 워낙 인기가 좋아 등록 시작과 동시에 마감이 되었기 때문에 늘 댄스 스튜디오가 꽉 찬 채로 수업을 했었고 양옆으로 움직일 때는 어느 정도 동선에 신경을 써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넓은 강당에서 하니 오히려 그런 불편함은 사라졌다.      


C 선생님의 수업은 늘 그래 왔듯 처음 5분은 워밍업을 하고 15분가량 빠르고 정열적인 라틴음악으로 춤을 추듯 운동을 한다. 이후 양 손에 1kg짜리 덤벨을 들고 10분가량 너무 빠르지 않은 라틴음악에 맞춰 Toning 즉 근력 운동을 한다. 이렇게 한 번 더 반복하여 1시간을 운동한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숨이 많이 차고 운동량이 꽤 많은 편인데 나는 그 힘든 느낌이 아주 좋다. C 선생님의 몸은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댄스인 듯 운동인 듯 그 두 몸짓이 하나가 되어 힘차게 움직이는데 나는 몇 년을 했어도 따라 하기 급급하다. 역시 난 흥만 있는 몸치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오늘은 그냥 마음껏 흔들다 가자 생각했다.      


한참 신이 나서 댄스를 추는데 갑자기 오른쪽 신발 밑창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살살 움직이면서 보니 ‘아휴, 정말’ 운동화 밑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조각이 떨어지더니 점점 갈수록 넓적한 조각까지 계속 떨어져서 바닥에 떨어진 밑창을 줍느라 운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창피하기도 하고 모처럼 몸 좀 풀려고 왔는데 안 따라주는 신발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신발 밑창이 아예 다 떨어져서 미끄러질까 봐 살살 움직이느라 후반 30여분은 조신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싱가포르는 습기가 많기 때문에 아무리 제습제를 많이 넣어도 옷이나 신발, 가방 같은 것이 잘 상한다. 신발장 안에 넣어 둔 신발을 오랜만에 신고 나가서 밑창이 떨어져 낭패를 당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고 심지어 한 번은 학교 수업 중에 샌들 밑창이 ‘쩍’하고 반이 떨어져 걸을 수가 없어서 결국 맨발로 수업한 적도 있었다. 이 운동화도 줌바 수업할 때만 신었던 거라 1년 반 만에 신었더니 결국 밑창이 상해버린 것이다.      


잔뜩 기대했던 수업이었는데 신발 때문에 아쉬움이 컸지만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인 것만으로도 좋았다. C 선생님이 쿨다운으로 준비한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들으며 스트레칭을 하고 수업은 끝났다. C 선생님은 가끔 한국 노래로 안무를 짜 오시는데 한국 노래가 인기도 있지만 한국 사람인 나를 배려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더 좋다. 운동 후 쿨다운을 하면서 쭉쭉 풀어준 스트레칭으로 목과 어깨에 뭉친 근육이 한결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주에 보자.”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니 박하사탕을 먹은 듯 온몸이 시원하고 상쾌해졌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샤워 후에 느낄 이 상쾌한 기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뒤 나는 남편과 백화점에 가서 가볍고 예쁜 운동화 한 켤레를 샀다. 이제 신발도 준비가 되었고 내일 수업 시간이 빨리 오길 기다려진다. 새 운동화를 신고 밑창 떨어질 걱정 없이 마음껏 스텝을 밟고 운동을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한껏 좋아진다. 비싼 스포츠 센터에서 멋 부리고 하는 운동도 아니고 동네 주민자치센터에서 수강생도 선생님도 모두 50대 이상인 조금은 무거워진 몸에 제각각 편한 옷을 입고 하지만 그 수업은 늘 열정 넘치고 정답다. 내가 진정 싱글리시(Singlish)의 세계에 푹 빠져 ‘보통 싱가포르 사람’들과의 교류를 즐기는 시간이다


단 1시간의 수업으로 얻은 선생님의 긍정 에너지는 내가 한 주를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그 에너지가 소진될 때쯤 나는 또 선생님을 만나고 운동하며 온몸 가득 새 에너지를 받아 온다.    

   

불안한 시기, 물론 내가 있는 그룹에서 한 명이라도 코로나19에 걸리면 나머지 네 명은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19와 함께 New Normal로 향하는 싱가포르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줌바 토닝 수업에서 나는 잃어버린 소확행을 다시 찾아 기쁘고 정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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