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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Oct 23. 2021

싱가포르 학생들이 준비한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

잊지 못할 생일 파티

한국어 강사로서 첫 학기를 마치고 두 번째 학기로 초급 2반 수업을 맡았을 때였다. 그때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했기에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교실이 꽉 찼던 토요반과 달리 그 학기 주중반에는 6명의 학생들, 은퇴를 앞두고 선교사로서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던 50대 부부, 30대 회사원 3명 그리고 트럼펫 연주자 1명 있었다.


학생들은 초급 1반에서 한글을 떼고 기본적인 한국어의 문장 구조를 익히고 올라와서 초급 2반에서는 시간, 날짜, 요일, 불규칙 동사, 과거형 등을 배웠다. 학기 시작 후 2주가 지난 그날 수업은 요일과 날짜를 배우는 수업이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일 월, 이 월, 삼 월, 사 월, 오 월, 유월, 칠 월, 팔 월, 구 월. 시월, 십일 월, 십이 월'

'일 일, 이 일, 삼 일, 사 일, 오 일, 육 일, 칠 일, 팔 일, 구 일, 십 일... 삼십일 일'


쉬운 것 같지만 연음 법칙을 적용하여 발음해야 하고 또 말려 들어가는 영어의 'r'을 펴서 한국어의 'ㄹ'를 발음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겐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단어들이었다.  발음이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진 후 "며칠이에요?" "오늘이 며칠이에요?" "생일이 며칠이에요?" "생일이 언제예요?"등과 같이 확장 연습을 시켰다.


“ ㅇㅇ 씨는 생일이 며칠이에요?”

생일에 뭐 해요?”     


“ ㅇㅇ 씨는 휴가가 언제예요?”

휴가에 뭐 해요?”     


나와 학생들과의 일대일 말하기 연습이 끝나면 학생들끼리 짝 활동을 하게 한 후 상대방의 생일이나 휴가에 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ㅇㅇ 씨 생일은 ㅇ월 ㅇ일이에요.”

생일에 친구하고 파티를 해요.”     


“ㅇㅇ 씨 휴가는 ㅇ월 ㅇ일이에요.”

휴가에 한국에 가요.”     


그렇게 학생들 발표가 다 끝나고 다음 문법으로 넘어가려는데 한 학생이 질문했다.  

 

“선생님은 생일이 언제예요?”

“선생님 생일은 ㅇ월 ㅇ일이에요.”     


‘음, 생일이 꼭 일주일 뒤네.' 잠깐 스쳐간 생각을 뒤로하고 다음 문법으로 넘어가서 그날도 열심히 수업을 하고 헤어졌다.     


일주일 뒤, 여느 때와 같이 일찌감치 학교에 도착해서 학습 자료를 복사하고 커피 한 잔을 들고 3층에 있는 교실로 올라갔다. 나는 늘 수업 시작 30분 전에는 교실에 들어가서 모든 세팅을 마치고 학생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빈 교실에서 조용히 앉아 수업할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했고 또 학생들이 오면 내가 기다렸다가 반갑게 맞아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늘 그러했듯 불 꺼진 교실문을 열었는데,     


“서프라이즈!”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교실 안을 보니 학생들이 모두 먼저 와서 불도 켜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트럼펫 연주자 학생은 트럼펫으로 “생일 축하합니다”를 연주해 주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서프라이즈에 깜짝 놀랐다. 학생들이 내 생일을 흘려듣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둔 것이었다. 일찍 학교에 오려면 학교 셔틀버스도 이용하지 못하고 택시를 타고 왔을 텐데 그 마음만으로도 너무 고마웠는데 교탁 앞에 가 보니 또 뭔가를 준비해 놓았다.     


책상에 예쁜 테이블보를 깔고 뜨끈뜨끈한 국수 한 그릇과 중국 차를 세팅해 놓았다. 중국 사람들이 생일에 장수를 기원하며 먹는 국수인데 닭고기 육수에 ‘미수아 (mee sua)'라는 얇은 면과 삶은 달걀 2개를 넣은 것이었다. 50대 선교사 부부가 직접 끓인 것을 따뜻한 뚝배기에 담아 주었다. 그리고 작은 꽃다발 하나와 생일 카드도 함께 주었다.      


“생일 축하해요, 선생닝!”

“생일을 축하하해요. 그러나 생일보다는 당신이 더 멋겨요.”

“진심으로 축하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


마음에 담은 말을 한국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워 번역기를 사용하여 옮겨 쓰다 보니 문법도 철자도 오류가 많았지만 한글로 쓴 생일 카드가 너무 고마웠다.


‘내가 뭐라고.. 학생들이 이렇게까지 해 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정말 뭉클해졌다.  

생일이라고 크게 다를 게 없는 그런 날이었는데 학생들이 내게 보여준 그 마음은 정말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늘 그랬다.

교실에 오면 서로의 마음을 꺼내어 교실 한 복판에 모아 두고 한마음으로 수업을 했다. 그렇지만 내 생일을 기억해 주고 그렇게까지 부지런을 떨며 정성껏 준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날 수업은 10여분 늦게 시작했지만 학생들은 다른 어느 날보다도 더 즐겁게 얼굴에 웃음을 가득가득 담고 나를 봤고 나는 또 학생들이 예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그렇게 가르쳤다.




서로 마음을 나눈다는 건 그런 것 같다.

그때 나는 겨우 발걸음을 뗀 초보 한국어 강사여서 능숙하게 문법을 설명하고 교실 활동을 이끌어가지도 못 했고 예상하지 못한 학생들의 질문에 진땀을 빼고 좌충우돌하는 그런 선생이었을 것이다. 그런 나의 부족한 부분을 짚어내기보다 내 마음을 읽어주고 고스란히 느껴준 학생들이 너무 고마웠고 힘이 되었다.


마음과 마음이 포개진 한 학기는 그렇게 지나갔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린 그때의 마음으로 안부를 전하며 살고 있다. 트럼펫 연주자인 학생은 연주회가 있을 때면 우리 모두를 초대했고 50대 선교사 학생들은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크리스마스엔 카드를 보내주고 있다. 30대 회사원이었던 학생들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나는 학생들이 내 수업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해 잘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통해 보이는 '한국 사람'이 좋은 이미지였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따뜻한 선생'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풀타임 학생들만 가르치는 지금, 나는 학생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심어주려고 한다. 내가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는 만큼 크게 성장하는 학생들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다른 전공 수업에서는 어떨지 모르나 내 수업에서 만큼은 나는 학생들에게 힘이 되는 긍정적인 말과 따뜻한 마음을 듬뿍 주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내 이름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 '따뜻했던' 느낌만은 오래 기억될 그런 선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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