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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Nov 06. 2021

노안, 별 거 아니야

안경을 쓰는 새로운 경험이 재미있다


나는 시력이 아주 좋은 편이다. 시력 검사를 하면 더 이상 읽을 글자가 없을 때까지 읽을  수가 있다. 안경을 쓰거나 콘택트렌즈를 껴 본 적이 없고 라식과 같은 수술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런 내 눈이 4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책을 볼 때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눈이 침침해져서 눈을 몇 번씩 깜빡거리거나 비벼가며 책을 읽었다. 대부분의 책은 전자책으로 폰트를 조절해서 읽기 시작했고 종이책으로 읽을 때는 손을 쭉쭉 뻗어서 책과 내 눈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읽었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나왔는데 이젠 작은 글씨를 읽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눈이 자주 피로했고 특히 밤에는 침침한 증상이 더 심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맞춰 온 안경을 써 봐도 그때보다 더 나빠진 탓인지 잘 맞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반찬이나 국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고 어릿어릿하게 보였다. 핸드폰 세팅도 글자 크기를 조절하여 읽기 쉽게 바꿨지만 메시지를 쓸 때는 여전히 불편함이 많았다. 친구들과 채팅을 할 땐 오타가 나면 오히려 서로의 눈을 탓하면서 웃을 때가 많았지만 일과 관련하여 메시지를 보낼 때 오타가 나면 그 찜찜한 느낌이 가시지가 않았다. 오타를 수정하기도 안 하기도 어색한 그런 상황이 잦았다.


올해 초 우체국에 갔다가 아주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한국에 국제특급우편으로 보낼 서류가 있어서 송장을 작성하려고 보니 깨알같이 쓰여 있는 글자를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손을 아무리 뻗어봐도 그 작은 글자들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핸드폰 카메라로 송장을 찍어서 확대해 가며 보는 방법,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송장을 써서 서류를 보내고 나서야 어르신들이 왜 돋보기안경을 갖고 다니는지 알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노안에 관련된 유튜브 동영상을 본격적으로 찾아봤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노안 자가진단 검사도 해 보았다. 결과는 노안 위험단계로 나왔다. ‘아, 이제는 안 되겠구나. 더 이상 버티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병원비 때문에 꼭 필요하지 않으면 안 가는 병원이지만 아무래도 안과 전문의를 만나서 한번 진료를 받아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마음먹은 김에 바로 안과에 예약해서 전문의를 만났다. 시력검사와 굴절검사를 받았다. 황반변성이나 녹내장과 같은 안질환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노안의 원인인 수정체의 노화는 진행 중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노안교정술을 권했지만 별로 내키지 않았다. 노안교정술을 권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술보다는 돋보기안경을 선택한다면서 내 대답 또한 예상했다는 듯이 내게 맞는 돋보기안경 하나를 꺼내 주셨다. 바로 그... 노년의 대표적인 상징인... 알이 작고 직사각형의 플라스틱 돋보기안경이었다. 사실 웃픈 마음이 좀 들긴 했지만 아주 가벼워서 가지고 다니기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돋보기안경을 쓰고 종이책을 펼쳤다.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웃음이 나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너무나 웃음이 나왔다.


‘ㅎㅎㅎㅎㅋㅋㅋㅋ...’     



안경점에 갔다. 아무리 노안이 왔다 해도 스타일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온라인 수업하기 편하게 다초점 렌즈로 안경을 맞췄다. 열흘을 기다려 안경을 찾아왔다. 안경을 쓰고 수업을 해 보니 시선에 따라 초점거리가 바뀌는 렌즈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살짝 불편한 감도 있지만 책상 위에 책도 노트북의 모니터도 모두 잘 보여서 만족스러웠다. 오래전 학창 시절에 빨강 뿔테나 분홍 뿔테 안경을 낀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안경을 쓰면 왠지 공부 잘하는 학생 같이 보이고 또 뭔가 스타일리시한 것 같이 보여서 나도 안경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어두운 데서 공부도 해 보고 책을 가까이 대고 보기도 했지만 선천적으로 좋은 눈은 나빠지지가 않았다. 결국 그때는 친구들의 안경을 껴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제는 친구들의 안경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어쩌면 안경이 내 오랜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노안이 더 심해져서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안경을 써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가는 게 좋다. 새로운 걸 많이 경험해 보게 된다. 내가 안경을 쓰고 책을 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 했다. 시선에 따라 달리 보이는 렌즈가 신기하고 재미있다. 아직 해 보진 않았지만 안경을 쓰고 밥을 먹으면 반찬 속 다진 마늘도 양파도 깨도 다 보일 것 같다. 자세히 보고 싶을 땐 안경을 쓰면 되고 안 보고 싶을 땐 안경을 벗으면 된다. 내게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하나 더 생긴 거다. 노안은 조금 불편한 거지 안경의 도움을 받으면 괜찮다. 하지만 눈 건강을 잃으면 큰 문제가 된다. 눈 질환 때문에 고생하던 지인들은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었다. 아직은 한창 일할 나이인 50대에 말이다. 우리 속담에 '몸 천 냥에 눈이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다. 눈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먼 곳에 있는 사물을 잘 볼 수 있고 글자를 척척 읽어내는 내 눈에게 고맙다. 거울에 비친 내 눈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밝고 맑은 인생길로 나를 이끌어 주길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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