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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Nov 26. 2021

작은 벌레의 몸부림

그 벌레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금요일 모더나 백신 3차 접종을 받고 주말 내내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지냈다. 3차는 백신 용량이 반으로 줄어 큰 부작용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많이 힘들었다. 다른 증상보다 두통이 심해서 “아이고 머리 아파, 아이고 눈 아파.”하며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평소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잘 눕지 않는 내가 주말 내내 꼬박 침대에 누워 축 쳐져 있었다. 머리와 눈이 아프니 브런치에 들어와 글을 읽을 수도 없었고 글을 쓸 수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한 곳을 보다가 몸을 뒤척거리길 무한 반복했다.        


아무 의미 없는 내 눈길이 책상 모퉁이에 닿았다. 이름 모를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게 보였다. 너무 얇고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그렇게 작은 벌레가 조용히 기어갔다. 평소 같으면 휴지 한 장 뽑아 들고 이미 손으로 냉큼 집었을 텐데 꼼짝하기 귀찮은 마음에 그냥 두고 봤다. 책상 모퉁이를 지나 가장자리로 살살 기어 왔다. 얇디얇은 몸이 파르르 떨리듯 움직였다. 그러다 갑자기 가던 길을 바꿔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 그 아래에는 서랍 틈이 있는데. 어떡해. 너 괜찮겠어? 얼른 올라 가.”     


내 말을 흘려들은 벌레는 결국 서랍 틈 사이에 매달려 올라가지도 내려오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것 봐라. 내가 내려오지 말고 가던 길 가라고 했잖아. 어떡할 거야.”     


작디작은 벌레는 다시 책상 위로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버둥버둥, 흔들흔들, 바동바동, 버둥버둥...’ 포기하지 않고 매달려 어떻게든 올라가 보려는 그 녀석을 도와줄 수가 없었다. 너무 작고 미미해서 내 손이 닿으면 생명이 다할 수밖에 없는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미미한 벌레가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올라가려는 몸부림을 한참 동안 보았다.      


“힘을 내. 올라 가. 얼른 올라 가. 올라가서 가던 길을 가.”           


벌레 한 마리를 위해 열심히 응원해줬다.


한쪽으로 돌아누운 머리가 아파 잠시 몸을 뒤척이다 다시 돌아봤다. 그새 벌레가 사라졌다. 책상 위를 살펴봐도 없고 책상 아래를 봐도 없다. 바닥에도 없다. ‘서랍 속으로 사라진 걸까.’ 궁금했지만 움직이기가 귀찮았다. 왠지 마음이 측은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어쩌면 나도 그 작은 벌레의 모습으로 사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요즘 학교일 때문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른 학기보다 더 많은 수업을 맡게 되어서 일상의 여유가 별로 없다. 작년 초 처음 온라인 수업을 할 때보다는 훨씬 안정된 수업을 하고 있지만 끊임없는 업데이트가 필요하고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꿔 새로운 시도를 해 보며 수업을 이끌어 가야 한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에는 원고지에 논문을 써서 제출했었다. 지금 나는 갓 스무 살의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에 최적화되어 있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능숙하게 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라테’ 선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고 시도해 봐야 한다. 어쩌면 나도 서랍 틈새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는 벌레 신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이웃에 사는 언니를 만나 요즘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ㅇㅇ 엄마, 그렇게 사는 거 행복해? 나는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하겠네. ㅇㅇ 아빠도 돈을 버는데 뭘 그렇게 아등바등 살려고 그래. 그냥 편하게 살아.”     


‘그냥 편하게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안다. 앞으로도 나는 이러고 살 거라는 걸.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살 것이라는 걸. 어쩌면 중간중간 버둥거리며 몸부림치다 나아갈지도 또 떨어져 버릴지도 모르지만.


이름 모를 벌레는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음 날도 그 어디에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책상 위로 올라갔다면 가던 길을 유유히 다시 갔을 테고 혹시라도 책상 서랍 속으로 떨어졌다면 새로운 길을 또 가 봤을 테다. 잠시 버둥거렸지만 분명 어딘가로 가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도 그렇다. ‘지금, 여기’ 잘 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곧 12월에 방학이 온다. 방학 동안 내가 제일 해 보고 싶은 것은 노트북 하나 챙겨서 카페에서 글 쓰는 것이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보면서 정말 해 보고 싶었던 일이다. ‘뎀시 힐(Demsey Hill)’에 가서 여기저기 커피 맛을 보면서 사진도 찍고 글도 쓰는 여유를 즐기고 싶다. 일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여유를 기다리고 제대로 즐기기 위함 아닐까. 이 밤이 지나 내일 아침이 오면 다시 작은 벌레의 몸부림 속으로 들어갈 지라도 지금 이 밤의 여유를 즐기는 것처럼.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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