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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Jan 09. 2022

그림 한 점을 사고 싶다

마음 가득 꽃을 품은 할머니


사고 싶은 것이 하나 생겼다. 생활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나를 치장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행복해지는 따뜻한 그림 한 점이다.     


어느 날 그림을 소재로 글을 쓰시는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책 속에 담겨있는 그림 몇 장과 글을 잘 소개해 주신 작가님 덕분에 책이 너무 궁금해졌다. 구독하고 있는 밀리의 서재 앱에서 전자책을 다운로드했다. 책에는 12년 전 빈 종이에 사과 하나를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94세의 연세에 작가로 살아가는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가 있었다.


그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책을 읽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책을 읽은 후에 여운이 길게 남았다. 그림을 보고 또 봤다. 따뜻하고 행복했다. 전자책으로 보기아쉬워 종이책을 주문했다. 전자책이 주는 느낌과 또 다른 따스한 느낌이 있었다.      


고된 인생을 사신 할머니 세대는 거친 세월을 견뎌오느라 마음에 맑은 빛이 없는 줄 알았다. 굳세고 단단한 마음만 있는 줄 알았다. 사느라고 바빠서 오로지 오늘을 살아내고 자식을 키워내느라 마음의 색채는 없는 줄 알았다. 마른 가슴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 니. 다. 모두 틀렸다. 그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예쁘고 아름다웠다. 행복하고 희망찼다. 빛났다.


할머니의 본성이 그러했나 보다. 주위를 둘러싼 어두운 환경에도 변하지 않는 따스한 햇살을 품고 있었나 보다. 내가 만약 그 세월을 살았다면  할머니와 같은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을, 동물을, 사물을 볼 수 없었을 것 같다. 할머니의 그림은 색이 아주 밝다. 튀지만 하나도 모나지 않게 튀고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게 튄다. 할머니의 그림에는 강한 색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잘 어울려 있어 다 같이 빛을 발한다.     


나는 튀는 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빨간색이나 분홍색 옷은 거의 입지 않는다. 가끔 가방으로 포인트를 주기는 하지만 내 옷은 무채색이나 옅은 베이지색, 하늘색, 옅은 파란색이 대부분이다. 채도가 높은 색은 내 강한 성격을 더 짙게 만드는 것 같고, 채도가 낮은 색은 흐리지만 덩달아 나도 조금 낮아지는 것 같다. 나도 할머니의 그림을 닮아 여기저기에 둬도 어울릴 수 있는 유연한 강한 색이 되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할머니의 책을 책상 위에 두고 일을 하다가 잠시 펼쳐보고 침대에 누웠다가 잠시 펼쳐보곤 한다. 그림이 너무 좋다. 자꾸자꾸 봐도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기뻐진다. 꽃도 나무도 새도 닭도 강아지도 집도 사람도 심지어 차도 따뜻하다. 밝은 마음이 담뿍 담겨있어 그림을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할머니는 첫 그림으로 사과를 그렸다. 할머니 그림 중에 내가 제일 사고 싶은 그림을 내 색깔로 그려보고 싶다. 행복한 마음이, 꽃을 품고 살아가는 마음이 내게도 전해지 좋겠다. 나는 할머니의 모든 그림이 좋지만 그중에서도 ‘매화’가 제일 좋다. 바탕색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인 데다가 활짝 핀 매화에서 부드럽고도 은은한 향기가 느껴진다. 언젠가 갤러리에서 직접 그림을 보고 마음에 담을 날이 오면 좋겠다. 한 점 모셔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사진 촬영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P38 김두엽 지음 북로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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