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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Jun 22. 2022

30년 만에 시곗바늘이 멈췄다

시계 안에 내 인생이 있다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바지 주머니에 시계를 넣은 채로 빨래를 했다. 그것도 30년이나 나와 함께 한 시계를 세탁기에 넣고 시원하게 돌렸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입고 외출 옷은 다시 입지 않고 바로 빨래를 하는 편이다. 며칠 전 유방암 검진을 하러 병원에 다녀온 후에도 입고 나간 청바지와 티셔츠를 벗어서 바로 세탁기에 돌렸다. 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세탁은 다 되었고 아들에게 옷을 널어달라고 했다. 그때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이거 엄마 시계 아니에요? 시계가 세탁기 안에 있었어요.” 아들이 세탁기에서 옷을 꺼내다가 땡그랑하는 소리가 나서 세탁기 안을 들여다보니 내 시계가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내 시계? 어디 봐봐.” 하던 일을 중단하고 황급히 시계를 받아 보니 바로 몇 시간 전에도 차고 나간 내가 제일 아끼는 시계였다. “아, 어떡하지? 이게 왜 바지 주머니 안에 들어있었지? 아, 어떡해. 이거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시계인데.” 아들도 내가 그 시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는 터라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물기를 잔뜩 머금은 시계를 손에 꼭 쥐고 멍하게 서 있었다. 가만히 되짚어 보니 집에 돌아와서 손을 씻으려고 시계를 풀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바지를 세탁기에 넣어 돌려버린 것이다. 30년을 나와 함께 한 시계인데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보낸다고 생각하니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이 시계를 선물 받은 건 1992년 내가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엄마가 하와이에 다녀오시면서 면세점에서 사다 주셨다. 알록달록한 걸 유난히 좋아하던 나는 색색의 링을 바꿔가며 끼울 수 있는 이 시계가 마음에 꼭 들었다. 시곗줄을 살짝 느슨하게 하면 팔찌처럼 살짝살짝 움직였는데 그 느낌도 좋았다. 외출하기 전 옷을 입고 액세서리를 한 후에 시계를 차고 옷과 액세서리에 잘 어울리는 색의 링을 골라 끼웠다. 옷과 액세서리와 시계가 조화롭게 잘 어울려 꾸민 듯 안 꾸민 듯 센스가 돋보일 때 기분이 아주 좋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외국계 의류 회사에 취직을 했다. 윗분들께서 출장을 다녀오시면 그 당시 국내에서는 살 수 없었던 힙한 시계를 종종 사다 주셨다. 재미있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브랜드였지만 나는 그 시계들보다는 링 시계를 더 많이 찼다.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에 공부를 하러 갔을 때도 링 시계는 나와 함께 했고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취직을 하고 첫 해외 출장을 갔을 때도 링 시계는 나와 함께 했다. 홍콩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면세점에 들러 링 몇 개를 더 사 왔다. 링을 쭉 펼쳐놓으면 마치 색연필을 펼쳐놓은 듯 예뻤다. 나는 옷이나 액세서리에 맞춰 링을 고르기도 했지만 내 기분에 따라서 링을 고르기도 했다. 차분한 마음이 필요한 날에는 와인색을 골랐고 설레는 마음이 드는 날에는 핑크색을 골랐다. 마음이 불안정한 날에는 초록색을 골랐고 에너지가 필요한 날에는 빨간색을 골랐다.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에는 파란색을 골랐고 정장을 입는 날에는 검은색을 골랐다. 링의 색은 곧 그날의 내 마음이기도 했고 또 그날 나에게 필요한 에너지이기도 했다.      


결혼을 하면서 예물 시계를 받았지만 왠지 고가의 시계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캐주얼을 즐겨 입던 내게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도 들었다. 예물 시계는 다시 서랍장 안에 넣어 두고 링 시계를 찼다. 미국에서 큰아이를 낳 때도 작은아이를 낳을 때도 링 시계를 차고 병원에 갔다. 아이들에게 이유식을 먹일 때도 이 시계를 보며 시간에 맞춰 이유식을 먹였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도 이 시계를 보며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싱가포르에 와서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이 시계를 보며 아이들을 챙겼다. 나이가 들면서 예물 시계도 또 남편이 결혼기념일에 사준 시계도 차기 시작했지만 엄마가 사 준 링 시계만큼 애착이 가지는 않는다. 가끔 링 시계 배터리를 교체하러 서비스센터에 가면 오래된 시계를 잘 관리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 시계는 2004년에 단종된 모델이어서 지금은 살 수가 없으니 가치 있는 시계라고 한다. 나에겐 단종된 시계가치보다는 내 인생의 반 이상을 나와 같이 함께 한 시계라는 것에 그 가치가 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시계를 침대에 얹어 놓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돈이 얼마가 들어도 고칠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서비스센터에 가기 전에 시계를 잘 건조시켜서 가지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서랍장 위에 시계를 잘 펼쳐놓고 시곗바늘을 10시 10분에 맞춰 두었다. 며칠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주 시계를 들여다보았지만 시곗바늘은 꼼짝하지 않았다. 시계를 쥐고 너무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잘 펼쳐두길 반복했다. 나흘 뒤 시계를 쥐고 자세히 보는데 시곗바늘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가슴이 쿵쾅쿵쾅거렸다. 시곗바늘을 제시간에 맞춰 놓고 기다렸다. 왠지 기적같이 시계가 다시 살아날 것만 같았다. 시계는 내 간절한 소망에 답을 하듯 세제 거품 가득한 세탁기 안에서 거친 물살을 이겨내고 잠시 숨을 고른 후 내게 다시 돌아왔다. 나는 시계를 두 손으로 잡고 볼에도 비비고 가슴에도 댔다. 마음이 울컥하여 눈물이 맺혔다.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끼워져 있던 파란 링을 빼서 빨간 링으로 끼워줬다. 나에게 에너지가 필요할 때면 늘 빨간 링을 끼웠듯이 험난한 시간을 견뎌온 내 시계에도 무한한 에너지를 주고 싶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지고 있던 링들은 조금씩 낡기도 하고 부러져서 못 쓰게 되기도 했지만 시계만큼은 고운 금빛 자태를 잃지 않았다. 온갖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내게 돌아와 준 시계를 차니 내 인생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나 또한 잘 견뎌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을 품은 시계와 나는 이제 영원한 친구로 힘찬 인생을 함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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