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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Aug 09. 2022

하숙집 아저씨와 천연사이다

열아홉 살의 추억


얼마 전 집 근처 상가에 한인마트가 생겼다. 작은 가게지만 한국에서 수입한 웬만한 식료품을 살 수 있어서 아주 편리해졌다. 저녁을 먹은 후 바람도 쐴 겸 한인마트에 갔다. 과자와 라면, 냉장·냉동식품을 쭉 구경한 후 아이스크림 하나를 골라서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 옆에는 작은 음료 냉장고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복숭아 맛 음료도 있고 추억의 오란씨도 있었다. 그때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끈 건 오란씨 옆에 있 천연사이다였다. 내가 기억하는 천연사이다는 초록색병에 하얀 로고 찍혀 있 건 음료 냉장고 안에 있는 천연사이다에는 파란색 캔에 하얀 로고가 찍혀 있었다. 초정리 광천수로 만들었다는 문구를 보니 같은  브랜드라는 확신이 들었다. 싱가포르에 온 후에 천연사이다를 본 건 처음아주 반가웠다. 오랜만에 그것도 해외에서 마셔 본 천연사이다는 특유의 달짝지근한 맛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천연사이다를 보는 순간 마음 한 편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던 얼굴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1989년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 품을 떠나 혼자 서울에 살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첫 학기에는 기숙사에 입사하지 못해서 학교 근처 아파트에 방을 얻어서 살았다. 집주인 부부는 원래 방만 세놓을 생각이었는데 하숙비를 조금 더 받고 식사도 제공해 주기로 했다. 집은 32평 신축 아파트였고 방 세 개, 화장실 하나, 부엌과 거실이 있었다. 내 방은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있는 작고 아담한 방이었다. 가족은 모두 네 명이었는데 충청도가 고향인 아저씨와 아주머니, 유치원생 큰딸 그리고 작은딸이 있었다. 지하철공사에 다니신다는 아저씨는 얼굴이 동그랗고 쌍꺼풀이 짙은 눈에 인상이 아주 좋셨다. 아주머니는 웃는 얼굴이 참 순수해 보이는 분이셨다. 무엇보다 딸 둘이 어찌나 귀여운지 “언니, 언니.”하며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전혀 귀찮게 여겨지지 않았다. 특히 막내딸은 곱슬머리에 볼이 터지도록 볼록해서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왔다. 이사하기 전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밝은 집안 분위기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화장실이 하나여서 조금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아저씨의 출퇴근 시간과 내 등하교 시간이 겹치지 않아서 괜찮았다. 아주머니는 식사 때가 되면 둥근 상에 밥을 차려 내 방으로 갖다 주셨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혼자 밥을 먹었고 다 먹고 난 후에 상을 갖다 드렸다. 나를 잘 따르던 아이들은 내가 밥을 먹고 있으면 나와 같이 밥을 먹겠다고 떼를 쓰며 내 밥상에 둘러앉았고 아주머니는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느라 애를 쓰셨다. 며칠 후 아저씨가 같이 식탁에서 밥을 먹자고 제안하셨고 나도 아주머니의 수고도 덜어드릴 겸 그렇게 하기로 했다. 주방에는 4인용 옥색 식탁이 있었다. 작은 의자를 하나 더 가져와서 아이들을 앉히고 식구처럼 나도 같이 앉아서 밥을 먹었다. 충청도 음식은 담백한 걸 좋아하는 내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아주머니의 손맛이 담긴 소박하고도 수수한 음식은 장이 예민한 내 몸에 안성맞춤이었고 속이 편안해서 소화도 잘 되었다. 아주머니는 늘 맛있는 반찬을 내 앞으로 놓아주시고 많이 먹으라며 나를 챙겨주셨다.      


식탁에서 밥을 먹은 첫날 내 눈길을 끈 건 바로 부엌 냉장고 옆에 놓여 있던 천연사이다 한 박스였다. 아파트 융자금을 갚느라 생활비를 최대한 아껴 쓰시는 분들이 꼭 필요한 식료품이 아닌 사이다 한 박스를 사 두신 게 궁금했다. 두 분은 술을 드시지도 않고 콜라보다는 사이다를 좋아하시는데 특히 아저씨가 천연사이다를 아주 좋아하신다고 했다. 아저씨는 천연사이다가 초정약수로 만든 것이어서 맛도 좋고 조금 마시면 식후에 소화도 잘된다고 하셨다. 또 충청도 사람이니까 충청도에서 생산된 음료를 많이 팔아주고 싶다고 하셨다. 밥을 먹고 난 후에 소화제처럼 사이다 한 병을 따서 셋이서 나눠 마셨다. 하숙집에서 처음 마셔 본 천연사이다는 색다른 맛이 났다. 이전에 마시던 사이다보다 단맛과 톡 쏘는 탄산 맛더 강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나도 천연사이다 맛에 흠뻑 빠져버렸다. 사이다를 마시면서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연애 이야기도 듣고 앞으로 만나게 될 사회생활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셋이서 마시다 보면 사이다 한 박스가 금세 동이 났다. 다 마신 빈병은 슈퍼에서 가져오신 플라스틱 상자에 꽂아 두었다가 반납을 하시고 다시 사이다를 한 상자 담아오셨다. 그렇게 냉장고 옆에는 늘 초록색병 천연사이다가 있었고 사이다 한 병을 세 컵에 나눠서 맥주 마시듯 건배도 하며 재미나게 마셨다.     


아저씨네 가족은 주말이면 늘 본가가 있는 천안에 가서 하룻밤을 주무시고 오셨다. 가시기 전에 아주머니는 내가 이틀 동안 먹을 반찬을 다 준비해 놓고 가셨다. 정작 두 분은 돈을 아끼느라 안 사 드시면서 내게 줄 비싼 딸기를 사서 씻어두고 가셨다. 오늘 낮에는 김밥을 먹고 저녁에는 반찬과 국을 먹고 내일은 이렇게 먹으라고 하시면서 직접 못 차려줘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음식만 챙겨주신 게 아니었다. 내가 아플 때는 옆에서 정성껏 간호해 주시고 내가 늦게 집에 돌아올 때는 마중도 나오셨다. 부모님과 전화한 후 그리운 마음에 울고 있으면 나를 위로해 주시고 막내 동생처럼 예뻐해 주셨다. 


한 학기 하숙집에서 지 후 다음 학기 거처를 고민하다가 학교 기숙사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하숙집에 더 있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공부에 좀 더 집중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정든 하숙집을 떠날 때 섭섭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언니, 언니.”하며 나를 잘 따르던 아이들이 내가 떠난 후에 찾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이사 가는 날 아주머니와 친하게 지내시던 아래층 위층 아주머니들도 모두 오셔서 나를 배웅해 주셨다. 19살이었던 나는 그분들께 고마운 마음은 많이 들었지만 살림을 하면서 하숙생에게 그런 마음과 친절과 사랑을 베푼다는 게 얼마나 큰 마음인 줄 그때는 헤아리지 못했다. 밤에 누워 그분들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맺혔다. 천연사이다 때문에 마음속에 보고픈 사람들이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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