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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Sep 08. 2022

3년 만에 한국에 왔다

핑크빛 여행의 시작

       

오랜만에 비행기를 탔다. 새벽 1시 잠이 쏟아지는 시간임에도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시간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방학을 맞아 한 달간의 꿈같은 휴가를 즐기러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침 남편도 한국 출장을 가게 되어서 나와 같은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딸아이 혼자 3주일을 지내야 하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이제 스무 살이 되었으니 믿고 맡겨 두기로 했다. 탑승을 하고 남편의 옆자리에 앉은 나는 설레는 마음에 남편의 손을 살며시 잡아 보았다. 3년 만에 가는 한국 여행이어서 가슴이 벅차기도 했고 남편과 단둘이 떠나는 여행이어서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비행기가 이륙을 한 후 영화를 보려고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고개를 돌려 남편을 보니 남편은 이미 곤히 자고 있었다. 나도 안대를 하고 의자를 뉘었다. 일어날 무렵에는 한국에 훨씬 더 가까이 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몇 시간이 흘렀을까. 어둡던 기내에 조금씩 불이 켜지고 아침 식사가 제공되었다. 간단하게 죽과 과일을 먹었다. 비행기가 한 시간 후에 인천공항에 착륙한다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예정대로 오전 8시에 착륙했다. 인천공항은 바뀐 게 하나도 없었다. 수화물을 찾는 곳도 화장실도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짐을 찾은 후 남편이 예약해 둔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한국에 도착하면 늘 시댁으로 바로 가다가 결혼한 후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고속터미널에 있는 어느 호텔로 왔다.     

 

남편과 일주일 동안 묵을 객실


30층에 위치한 객실은 쾌적하고 모던다. 넓고 크게 난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 멀리 남산타워도 보이고 한강도 보다. 짐을 풀어놓고 남편과 나는 호텔과 연결된 신세계 백화점에 구경을 하러 갔다. 지하 식품관에는 없는 게 없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순대, 족발, 떡볶이, 만두, 김밥, 돈가스, 어묵, 빵, 떡 등 한국에 산다면 특별히 감동적이 아닐 음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배가 출출한 밤에 야식으로 한번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길을 옮겼다.


식품관 옆에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접시와 그릇 세트를 할인하여 판매하는 특별 코너가 있었다. 노란 테두리가 예쁜 머그컵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남편은 옷에 잘 싸서 가면 되니까 사고 싶으면 몇 개 사라고 했다. 욕심껏 사려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남편과 내가 사용할 커플용 머그컵 두 개만 샀다. 늘 아이들 것까지 같이 사다가 둘만 사용할 컵을 사고 나니 마치 뭐든 두 개씩만 사던 신혼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점심은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와준 동생과 같이 막국수를 먹었다.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소스가 입에 착 감겼다. 정말 그립던 맛이었다. 싱가포르에서는 간혹 냉면을 먹기는 했지만 막국수를 먹어 본 적은 없었다. 반갑고도 기분 좋은 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 점심을 먹은 후 동생과 함께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를 둘러보았다. 가져온 옷들이 모두 얇은 반팔이어서 카디건과 긴팔 니트 몇 벌을 샀다. 가격이 모두 만 원대에서 이만 원대로 아주 저렴했다. 디자인도 예쁘고 질도 좋은 물건을 그렇게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를 한 바퀴 다 돌아본 후 호텔로 돌아왔다. 몸이 노곤해지며 피곤함이 밀려왔다. 호텔 라운지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객실에서 보이는 야경


아이들 없이 남편과 둘이 방에 있으니 좋기도 하고 뭔가 살짝 어색하기도 하다. 여행을 가면 킹사이즈 침대가 두 개 있는 방에 아이들과 같이 지냈는데 침대가 달랑 하나만 있는 방에 둘만 있으니 허전한 느낌도 든다. 큰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늘 이렇게 둘만 있었데 지난 20여 년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둘만 있는 공간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이 참 예쁘다. 커튼을 모두 열고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니 옛 생각이 난다.


결혼 전 몇 년 간 반포 3단지에 전세를 얻어 살았다. 지금은 재건축이 되어 고층 아파트로 바뀌었지만 내가 살던 때는 5층짜리 주공아파트였다. 다니던 회사가 집 근처에 있어서 출퇴근을 하기도 편했고 부모님이 계신 대구에 가기에도 교통이 편리한 곳이었다. 그곳은 무엇보다 남편과 내가 나눈 달달한 데이트의 추억을 품은  곳이기도 했다. 잠깐의 이별 후에 남편이 다시 만나자며 매일 장미꽃 한 송이를 집 앞에 놓고 가기도 했던 곳이고 결혼을 하자며 10장의 손 편지를 써서 우편함에 넣고 가기도 했던 곳이었다. 나에게 반포는 그렇게 남편과 내가 썸을 타고 결혼을 하기까지의 달콤한 추억을 가득 품고 있는 곳이었다. 남편도 나도 20대였던 그때 우리가 이렇게 결혼을 해서 아이 둘을 낳고 싱가포르에서 살 거라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추억의 반포에서 남편과 단둘이 호텔에 있으니 마음이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이제 일주일 동안 울 곳곳의 맛집과 볼거리를 다니려고 한다. 여의도에도 가고 강남에도 가고 청계천에도 갈 생각이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서울의 모습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과거의 추억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게 될 서울이 기대된다. 남편과 나 우리 둘만의 즐거운 여행이 너무나도 기대된다. 이제 꿈같은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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