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단 한 번도 꿈꿔보지 않았던 장래희망은 바로 선생님이었다. 교사로서 품위를 유지하며 학생들을 올바르게 이끄는 일은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교복 및 두발 자율화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나는, 교칙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성 있는 헤어스타일과 색다른 옷차림을 즐겼다. 줄무늬 공책 대신 무지 공책만 사용했고, 교과서나 워크북에 자를 대고 선을 긋지 않았다. 겉으로는 공부도 잘하고 반장도 맡은 모범생이었지만, 내면은 항상 정해진 틀을 벗어나고픈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교대나 사범대로의 진학은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나는 초·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도 아니고, 대학에서 전공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도 아니다. 교양 과목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시간강사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
학생들을 잘 이해하려면,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목적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K-POP이나 드라마, 한국 문화나 음식, 유학이나 여행, 역사에 대한 관심 등 이유는 다양하다. 학습 능력도 천차만별이다. 모범생도 있고, 성실하지만 언어 감각이 부족한 학생, 설렁설렁 공부하지만 성적이 좋은 학생, 불성실하고 성적도 좋지 않아 속을 썩이는 학생도 있다.
이런 다양한 학생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칭찬과 격려,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나는 늘 학교에 일찍 가서 바로 교실로 들어가는 편이다. 수업 준비를 하며 교실에 들어오는 학생들과 인사를 하고,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유튜브로 멜론 인기 가요나 드라마 OST 동영상을 틀어둔다. 이렇게 수업 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짧게나마 동영상에 나오는 음악이나 드라마에 관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수업 전 상호작용을 할 수 있어 좋다.
요즘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수업을 하고 있다. 기존의 교실과 다른 스마트 클래스룸을 배정받아 연수를 받고 사용법을 익혔다. 학기 초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조금 익숙해지니 교실에 설치된 여러 대의 스마트 칠판 사용도 어렵지 않게 되었다. 매주 실시간 화상 수업과 대면 수업에 PPT 및 모둠 활동 자료를 새로 제작하거나 기존 자료를 수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학생들이 교실이나 온라인에서 내가 준비한 자료와 활동을 통해 재미있게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면, 내가 쏟은 노력과 시간, 정성이 전혀 아깝지 않다.
스무 살 내외의 학생들과는 30여 년의 나이 차이가 있다. 아날로그 세대인 나와 디지털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된 Z세대 학생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요즘 유행하는 가수나 유머, 유튜브나 틱톡 영상 등 화젯거리를 적극적으로 찾아본다. 이를 수업에 반영해 학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의도한 대로 수업이 잘 마무리되었을 때 느끼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학교는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강의실로 천천히 걸어가는 길이 여유롭다. 지붕이 설치된 길도 있지만, 나는 꽃을 보며 갈 수 있는 길이 좋아서 햇살을 맞으며 걷는다. 길을 걷다가 잠시 멈춰 꽃을 보고, 사진으로 남기기도 한다. 노트북과 수업 자료가 든 배낭이 무겁다. 게임 후 상품으로 줄 과자가 든 쇼핑백도 있다. 무겁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평소 즐겨 입는 밑단이풀린 청바지와 민소매 티셔츠를 입지 못하고 정장 바지와 셔츠를 입고, 로퍼를 신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하늘은 푸르고, 멀리 보이는 강의동은 햇살에 반짝인다.
이 학교에서 언제까지 수업할지는 모른다. 당장 이번 학기가 끝나고 내가 그만둬도 문제 될 게 없고, 다음 학기에 수업이 배정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해야 한다. 전임교원들에게는 오늘의 수업이 다음 학기에도, 그다음 학기에도 이어지겠지만, 나에게는 오늘의 수업이 이 학교에서 몇 번 남지 않은 수업이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 뒤돌아 봤을 때, 오늘 내가 한 수업에 후회나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때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래서 어떤 미련도 남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