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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Dec 24. 2022

싱가포르, 크리스마스 원더랜드 2022

딸과 함께 한 밤나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정원으로 유명한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딸과 함께 크리스마스 빛의 축제를 구경하러 갔다. 싱가포르에는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과 조명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바로 슈퍼트리 그로브(나무 모양의 대형 구조물)가 있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이다. 이곳에서는 지금 ‘크리스마스 원더랜드' 빛의 축제가 한창 열리고 있다. 티켓값은 $8(7,500원)에서 $12(11,000원)이고 6시 반, 7시 반, 8시 반, 9시 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딸과 나는 평일 저녁 7시 반을 선택하고 미리 일기예보를 확인한 후 날짜도 선택했다. 조금 일찍 예매한 덕분에 가장 싼 가격인 $8(7,500원)에 예매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내가 티켓을 예매한 날은 오후에 비가 온 후 그쳐서 다른 날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더웠다. 집에서 조금 여유 있게 출발한 덕분에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제시간에 도착했다. 딸과 나는 크리스마스 원더랜드로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섰다. 워낙 인기 있는 축제여서 그런지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붐볐고 기다리는 줄도 길었다. 핸드폰에 미리 다운로드 놓은 모바일 티켓 QR코드를 스캔하고 입장을 했다.    


Christmas Wonderland 홈페이지에서 스크린숏 함


크리스마스 원더랜드는 모두 6개의 테마존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존마다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었다. 딸과 나는 제일 먼저 크리스마스 원더랜드의 하이라이트인 스펠리에라를 구경하러 갔다. 21미터 높이(2층 버스 5대 높이)의 웅장한 스펠리에라는 먼 곳에서도 눈에 띄었다. 이 조형물은 일곱 명의 이탈리아 장인들이 30일 동안 수작업으로 만든 것으로 103,000개의 LED 전구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각양각색의 전구로 정교하게 만든 조형물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딸과 나는 “와, 예쁘다. 정말 예쁘다.”라고 감탄하며 조형물을 따라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다양한 패턴이 서로 잘 어우러져 있고 세련된 색감이 멋스럽게 느껴졌다. 딸과 나는 조형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모두 보석을 박아 놓은 듯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마치 아름다운 왕관 안에 있는 듯 황홀하게 느껴졌다. 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떻게 찍어도 예쁜 딸과 달리 나는 눈을 감거나 눈을 부릅뜨고 있어서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찍어야만 했다. 스펠리에라 안에서 한참 구경을 한 후 밖으로 나왔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스펠리에라


길을 걷다 보니 산타클로스와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대 조명이 예뻐서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았다. 딸과 나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서 다른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걸 잠시 구경하기로 했다. 주로 어린아이들과 같이 온 가족들이 많았다. 어른들도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 듯 밝은 표정을 하고 있어서 참 보기 좋았다. 쉴 새 없이 포즈를 취하는 산타할아버지를 바라보다 보니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 나는 민소매 옷을 입고도 높은 습도 때문에 후덥지근하게 느껴지는데 산타 복장을 하고 뜨거운 조명 아래 앉아 있으면 얼마나 더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안쓰러웠다. 산타할아버지한테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외쳐 주고 내년에는 부디 추운 나라로 배정받으시길 바랐다.        


산타할아버지와 사진을 찍는 대가족


슬슬 걸어 메리 레인으로 갔다. 줄지어 서 있는 장난감 병정들을 지나면 분수처럼 인공눈을 뿌려 주는 스노랜드가 나왔다. 인공눈은 하얀색이었지만 포슬포슬하지 않고 비눗방울처럼 미끈해서 몸에 닿는 느낌이 좋지는 않았다. 팔에 묻은 인공눈을 얼른 닦아냈지만 잠시나마 눈을 맞는 기분을 느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메리 레인 입구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병정들


분수처럼 뿌려주는 인공눈


메리 레인 옆에는 2층으로 된 회전목마가 있었다. 티켓 가격은 한 사람당 $10(9,300원)이었는데 12살 미만의 아이들은 $5(4,600원)이었다. 아빠와 딸이 회전목마를 같이 타는 모습을 보니 나도 옛 생각이 났다. 에버랜드에서 남편과 내가 한 아이씩 앞에 앉혀 회전목마를 타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때 세 살 많은 오빠 앞에 앉아 회전목마를 타면서 밖에서 기다리시던 부모님께 손을 흔들었던 기억도 났다. 회전목마가 돌고 돌아가는 걸 보고 있으니 나의 어린 시절부터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까지 좋았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성인이 된 딸과 다시 한번 같이 타고 싶었으나 기다리는 줄이 너무나도 길었다. 30분 이상 기다리기에는 날씨가 너무 더웠다.      


베네치아풍 회전목마


회전목마 옆에는 10미터 높이의 황금빛 풍차가 있었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밤하늘 아래 반짝였다. 풍차 앞쪽으로는 지팡이처럼 생긴 크리스마스 사탕 캔디케인이 여기저기에 무수히 꽂혀 있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안에 내가 있는 것 같았다. 딸과 함께 황금빛 풍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빨갛고 하얀 캔디케인 사이에 서서 딸과 나의 즐거운 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란한 불빛을 마음껏 즐긴 후 게임 빌리지로 갔다. 물고기 장난감을 건져 올리는 낚시게임, 피라미드로 쌓아 놓은 캔을 쓰러뜨리는 피라미드 스매시 게임, 유리병에 고리를 던져서 거는 고리 던지기 게임 등 전통 카니발 게임들이 많이 있었다. 딸과 나는 커다란 개구리 인형을 상품으로 주는 고리 던지기 게임을 했다. 즐비하게 놓여 있는 수많은 병에 단 하나의 고리만 걸어도 인형을 받을 수 있었는데 40개의 고리를 던지고도 딸과 나는 유리병에 고리를 걸지 못했다. 딸의 실망이 컸지만 개구리 인형을 돈으로 살 수도 없었다. 아쉬워하는 딸에게 반짝반짝 빛이 나서 예쁜 LED 풍선 하나를 사 주었다.


윔시컬 풍차와 캔디케인



고리 던지기 게임


시계를 보니 어느새 밤 10시가 지났다.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서 반짝이는 불빛을 마음에 남겨 두었다. 딸은 내 손을 잡고 걸었다. 스무 살이 된 딸의 손에는 풍선이 들려 있었다. 잠시 옛 생각에 젖어 가슴이 뭉클해졌다.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출구에 다다랐다. 크리스마스 원더랜드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고 딸과 나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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